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문제가 답을 결정한다 (범지스님)

운문사 | 2005.12.26 17:33 | 조회 2977

설현당 앞 청매화 가지에서 꽃몽오리가 활짝 기지개를 펴려고 빗방울을 흠뻑 머금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화엄반 범지 입니다.

우리는 지난날 수학시간을 통해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건너기"라는 문제를 배웠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는 옛 프러시아의 수도이며 지금은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 라는 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세계적인 철학자 칸트와 수학자 힐버트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곳인데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칸트의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칸트는 평생 쾨니히스베르크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고 이도시의 대학교수가 된 후에도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걸어 다녔기 때문에 이 도시의 주민들은 칸트를 보고 시계를 맞추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칸트의 이야기처럼 이도시에는 많은 일화가 있는데, 그 중에서 특히 수학에서 유명한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건너기"문제입니다.

쾨니히스베르크시의 한 가운데는 프레골라강이 흐르고 있고 여기에는 가운데 섬들과 연결되어 있는 일곱 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어떠한 방법으로 이 일곱 개의 다리들을 한번씩만 차례로 모두 건널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수학자 오일러는 처음 이 문제를 질문받고 잠시 침묵한 뒤 즉석에서 "이문제는 불가능하다"고 명쾌하게 단언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 다리 건너기 문제에 한붓그리기 성질을 이용한 것입니다 . 한붓그리기 성질이란 종이위에서 펜을 한번도 떼지 않고 한번에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아마 대중스님들도 누구나 한번씩은 해보셨을 겁니다.

강으로 분활되는 네지역을 점으로 나타내고 다리들을 네점을 연결하는 선으로 보았을 때 점과 연결된 선의 개수가 홀수인가 짝수인가를 살펴본 후 답이 나올 수 있는 가능한 문제인가, 아니면 불가능한 문제인가를 결정한 것입니다.

이 지적 호기심에 의한 문제는 현재 우리 생활 속에서 컴퓨터, 그래픽, 교통 등 다양한 기초 수학의 범위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의 훌륭한 선각자들은 어떠한 문제에 있어 문제를 살펴본 후 답을 결정하였습니다.

사실 답이 먼저 나와 있는 문제라면, 우리는 그 문제를 풀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훌륭한 공식이 앞에 펼쳐져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문제의 요점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 공식들은 필요없는 번거로움일 뿐입니다.


우리는 한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 습니다.

부처님은 경전을 통해 우리들에게 공식을 밝히셨고, 우리는 강원생활속에서 팔만사천개의 법문 중 자신과 개합되는 공식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막상 문제에 부딪혔을 때 심리적인 방어와 무의식을 통해 너무 많은 고통과 고민을 느끼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합니다. 그리고 가끔 단순히 문제자체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으려는 아주 원시적인 방어적 심리가 작용하기도 합니다.

이 윤회라는 무한한 궤도속에서 주어진 문제에 대해 등한시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면 결코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달라이라마는 말합니다.


"근본적인 문제의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그 문제를 받아들이는데 큰 도움이 되며, 해답을 결정할 수 있는 올바른 시각을 갖게 해 주는 가치있는 방법이다."

라구요.

문제에 집중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답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대중스님, 오늘

그가 말하는 영원의 자유를 얻어보심은 어떠신지요.

계속되는 문제제기만이 그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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