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열심히 하는 마음 (명주스님)

운문사 | 2005.12.26 17:35 | 조회 2725

화엄반 명주입니다.

대중스님께서는 항상 마음속에 부모님의 은혜나 은사스님께 감사함을 생각하고 계신지요. 저의 경우는 솔직히 그렇게 뼈저리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스님이 해 주시는 것도 당연하듯이 생각하는 저에게 저를 깨우쳐 줄만한 일이 생겼습니다.


제가 운문사에 오기 전 은사스님을 시봉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11월 겨울이었습니다. 스님하고 제가 방에 있을 때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하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계속 들렸습니다. 그 소리는 아기 울음소리였습니다. 놀라서 스님하고 밖에 나가보니 마당에 하얀 물체가 있었습니다. 문득 TV에서만 보던 대문 앞에 버려진 아이가 실제로 제 눈앞에 현실로 나타나니 놀라웠습니다. 들어와 보니 아기는 18개월 정도, 생년월일과 이름이 적힌 쪽지, 반쯤 남은 우유병, 기저귀가 몇 개 있었습니다.


그 후로 그 아기는 우리 집의 한식구가 되었습니다. 다른 스님들이나 신도님들은 업둥이(충청도 사투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며 신기해 하셨습니다. 그 반면 저에겐 문득 커다란 짐이 되었습니다. 그 때 공양주도 없었고, 그리고 학교 다니는 아이들, 이 아기를 돌볼 사람은 저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아기가 저를 잘 따르지 않는 거였습니다. 우유를 줘도 울고 업어 줘도 울고 우는 아기를 안고 저는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먹여주고, 재워주고, 씻겨주고 하는 사람이 이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되었나 봅니다. 점점 정이 들고 아기가 말고 하고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잠깐 혼자 있거나 좀 조용하다 싶으면 언제나 일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서랍에 있는 물건 다 엎어놓고 화장품도 쏟아 놓기가 일쑤였습니다. 한시라도 마음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청소할 때나 빨래할 때 공양 차릴 때 등 항상 옆에 데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점점 힘들어지는 마음에 부모님의 낳아주신 은혜나 은사스님의 노고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자식이 어디에 있든 항상 걱정되는 마음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어느덧 저도 그런 마음이 되었습니다. 이 아기가 옆에 없으면 너무도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출타할 때도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지만 저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강원에도 가야하는데 은사스님 때문이 아니고 오히려 이 아기 때문에 1년 더 있다 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은 제법 많이 큰 그 아이를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게도 생각되어집니다. 운문사에 와서 생활하다 보니 무엇보다 은사스님이 가장 생각났습니다. 내 행동 하나하나에도 조심스러워지고 그나마 게을러지는 마음 다시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런 부모님의 사랑도 저버리고 출가해서, 또 출가해서 은사스님의 감사함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공부 뿐 아니라 뭐든지 열심히 하는 수행자가 되어야 되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더운 여름날, 울력도 많고 날씨고 점점 더워지고 해태해지는 마음 다잡고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수행자가 됩시다. 성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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