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인연받아들이기(대경스님)

운문사 | 2006.03.20 11:04 | 조회 3411

우리의 인생은 갖가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하는데 그 셀 수 없는 만남 속에는 결코 쉽게 잊을 수 없는 만남과 이별이 있는가 하면 또 그렇지 않는 만남과 이별도 있을 것입니다. 오는 이 짧은 만남이지만 여러분과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특별한 만남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보며 법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화엄반 대경입니다.

이 세상은 인연 따라 만들어지고 인연 따라 소멸하는 인연 생기의 법칙에 따라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움직이는 법칙이 바로 인연과보의 법칙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인연을 거스를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인연을 거스른다고 해도 그것은 거스른 것이 아니고 또 거스르고 싶다고 해도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노릇이지요.

이 세상 유정 무정 어느 존재도 인연의 법칙에서 벗어나는 존재는 없기 마련입니다. 내 앞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인연도 내가 스스로 만들었고 또 스스로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 것이 아니라고 부정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런 생각 한 번쯤은 해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나도 저 스님처럼 뭐든지 잘 했으면 ……"

"나도 저 스님처럼 장애 없이 수행정진 잘 했으면 ……"

전 이런저런 생각, 아니 망상에 더 가까운데… 해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연을 탓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내 인연 따라 내 스스로가 받은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 스스로가 인연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은사스님과의 인연, 도반스님과의 인연, 모든 인연들. 지금 나의 삶의 환경들은 나에게 주어진 내 인연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느 하나 버리고 탓할 것이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 하나, 눈송이 하나조차도 정확히 떨어져야 할 그 곳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만큼 자신의 인연은 정확히 그 자리에 있다는 말이겠죠?


그런데 사람들은 그 인연에 내 잣대를 가지고 온갖 좋고 싫은 분별을 일으킵니다. 좋은 인연을 만나면 애착하여 더 잡으려 애쓰고 싫은 인연을 만나면 애써 버리려고들 합니다. 싫고 좋은 분별은 집착을 가져오고 그로 인해 우리는 몸과 입, 뜻으로 업을 짓게 되는 것이지요. 인연은 만날 때가 가장 그 인연 풀기 좋은 때인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거부해 버리면 또 다음 어느 생에 어떤 인연으로 다시 만날지 어찌 알겠습니까?

인연은 한 치의 오차도 없다 합니다. 나타나야 할 가장 정확한 그 때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이지요. 어찌 어리석은 우리의 잣대를 가지고 부처님의 인연을 재고 거스르겠습니까? 인연은 어느 하나하나 다 소중합니다. 그렇다고 집착하고 애착을 가지라는 건 아닙니다. 우리의 업에 비교해 보면 업이 원인이 되어 과보를 맺고 사라지면 그만인 것이지 거기에 무슨 실체가 또 있겠습니까? 그러니 좋은 인연이라고 애착 말고, 싫은 인연이라 미운 마음에 버려서도 아니 된다는 것이지요. 즉 일체 모든 존재는 결코 집착하여 얽매일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인연법이니 인연 따라 잠시 오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하지 않아 무상하고, 거기에 무슨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무아라 하며, 무상하고 무아이므로 일체는 고, 즉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인연을 받아들일 때 이전에 지어 놓았던 업인을 녹일 수 있게 되고, 집착을 놓았을 때 더 이상 어리석은 업을 짓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집착을 놓고 인연을 받아들이는 그 밝은 실천의 자리. 나의 자성 부처님의 지혜가 밝게 비출 것입니다.


누구나 좋은 도반을 갖길 원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인생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인생의 전부라 할 수 있는 도반이 몇이나 될까요? 오늘 잠들기 전에 도반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면 어떨런지요. 날마다 좋은 인연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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