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여성 성불문제에 관하여(지행스님)

운문사 | 2006.03.20 11:10 | 조회 2981

뜨거운 여름입니다.

이런 날이면 이열치열로 뜨거운 칼국수나 수제비 한 그릇이면 더운 여름 견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지행입니다.

저는 오늘 여성도 성불할 수 있나 하는 의문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제가 행자시절 어느 처사님으로부터 “왜 조계종엔 큰 비구스님만 있습니까? 비구니 스님 중엔 큰 스님이 없나요? 하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질문이라 순간 멍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큰스님을 키가 커서 큰스님이라 하는지 아니면 법랍이 많은 스님을 큰스님이라 하는지 모르겠더군요. 내가 알고 있는 비구니 스님은 우리 노스님과 은사스님과 사숙님들뿐인데······.

그리고 몰래 몰래 훔쳐보던 불교신문에서도 거의 다가 비구스님 뿐이었습니다. 늘 한구석엔 그 의문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객 비구스님이 오셨습니다. 떨어진 누더기 두루마기에 걸망을 맸지만 어딘가 모르게 거들먹거리는 행동거지, 그러나 노스님은 깍듯이 1배로 맞절을 하셨습니다. 그 날 저녁 투덜거리던 제게 노스님은 처음으로 팔경법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백세 비구니 예 초하 비구 족" 백 살 먹은 비구니도 처음 출가한 비구 발에 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날 밤 처음으로 출가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가벼운 전율, 정말 이런 것들을 수용해야만 여성에게 계를 주셨을까?


그러나 지금 팔경법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 이 시대에 비구니 스님의 위상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얼마 전 봉녕사 강사이신 탁연스님이 조계종 총무원에 첫 번째 여성 문화부장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지 1600여년이나 지금까지 종단의 요직에는 비구니 스님이 한 명도 임명된 적이 없었습니다. 불교 내부에서는 종무원법에 "총무원 부 · 실장은 대덕이상의 법계를 품수한 자"라고 정해 있고 대덕은 비구의 법계이므로 비구니 스님의 문화부장 임명은 위법이 아닌가 하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합니다. 그러나 조계종 측은 위법이 아님을 선포했고 이는 종단 운영에 비구니 참여가 확대되는 혁신적인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 보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틱낫한 스님이 저술한 "힘"이란 책에서 팔경법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비구들은 거의가 평민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최초의 비구니들은 자신의 이모이자 계모인 마하파자파티 왕비가 이끄는 비교적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비구니들이 높은 신분과 지위를 이용해 종단을 좌지우지하려 하는 것을 막고 종단의 화합도 꾀할 겸 비구들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비구니들이 비구들보다 지켜야 할 계가 더 많아진 것도 혼자서 나갔던 비구니가 욕을 볼 뻔한 사건이 있은 후 그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만든 것이지 그들이 더 열등하기 때문은 아니다 라고 쓰고 있습니다.

유마경 관중생품에 '부처님이 비야리성 암마나무 절에 계실 때 유마힐 장자가 병이 났다'는 말을 들으시고 문수보살을 보내어 병문안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때에 팔천 보살과 오백 명의 성문과 백 천의 하늘 사람들이 따라가서 법문을 토론하였습니다. 그 자리에 한 하늘 아가씨가 있다가 하늘 꽃으로 여러 보살들과 큰 제자들에게 흩었습니다. 보살들에게 흩은 것은 곧 땅에 떨어졌으나 큰 제자들에게 붙은 꽃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큰 제자들은 몸에 붙은 꽃이 법답지 못하다 하여 신통력으로 떨어뜨리려 하나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늘 아가씨가 말하기를,

"이 꽃이 분별이 없건만은 스님네가 스스로 분별하는 마음을 낸 것입니다. 부처님 법에 출가한 이로서 분별을 내는 것은 법답지 못한 것이고 분별이 없으면 그것이 법다운 것입니다. 번뇌 습기가 끝나지 못한 이는 꽃이 몸에 붙지만 번뇌 습기가 없어진 이에게는 꽃이 몸에 붙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은 하늘 아가씨의 신통력과 불가사의한 법문을 듣고 왜 여인에 몸으로 바꾸지 않느냐 묻습니다. 하늘 아가씨는,

"마치 요술하는 사람이 요술로 여인을 만들었는데 어떤 사람이 묻기를 어찌하여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느냐 한다면 이 사람의 묻는 것이 옳지 않습니다. 요술로 만든 사람은 일정한 모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길,

"모든 법이 남자도 아니요. 여인도 아니다."

하시며 여자다 남자다 하는 것은 허망한 것이요. 그것은 분별이다 하셨습니다.


곧 굳이 일체가 둘이 아니듯이 수행이나 성불에 있어서 남자니 여자니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본래부터의 원력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처음 제가 가진 의문은 여자라는 분별에서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대답할까요. 우리 비구니 스님들도 키는 비록 작고 연약해 보이지만 큰스님이 많습니다. 근대 비구니 선맥의 중흥조인 법희스님, 대성암에 최초의 비구니 선방을 개설한 만성스님, 한국 비구니계 최대 문중을 형성한 선객 본공스님, 신여성 운동을 주도하다 불문에 귀의한 일엽스님 등등······. 당신은 스님이지 큰스님이 아니라고 하시지만 지금 이곳에도 여러 어른 스님이 계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구냐 비구니냐 큰스님이냐 아니냐 하는 이런 것들이 다 분별 그자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결코 이 시대에 비구, 비구니란 분별이 없습니다. 각각 그 자리에서 제 위치에서 자기의 마음가지를 챙길 뿐입니다. 다만 지금 여기서 어떻게 수행해야 하고 어떻게 부처님을 닮아 가느냐가 문제입니다.


대중스님!!

처음 발심한 마음 그대로 정진여일 하셔서 부디 성불하시길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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