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자비관 (동암스님)

운문사 | 2005.12.26 13:36 | 조회 2956

사집 사리암 소임을 갔을 때,

저는 저희 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감사와 참회의 마음으로 삼배씩 절을 하였습니다.

백씨스님부터 막내스님까지 정성들여 절을 하면서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제 마음에 편안한 사람보다는 무언가 망상을 일으키게 하는 사람이 더 많았던 것입니다.

순간순간 사람들에 대하여 마음을 일으킬 때는 틀림없이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저의 정당함을 내세워 확실한 방법으로 저의 감정을 전했었는데 그런 마음들이 모여 어느새 제 마음 한 구석에 부정적인 성향을 심어놓았던 것입니다. 영원하지 않은 한 순간에 속아넘어가, 하루하루 허덕이고 있을 때 부처님께서 설하신 자비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많은 대중 속에 살면서 마음이 들뜨거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지칠 때 제게 조금이나마 안정감을 갖게 해주었던 자비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부처님 당시 오지 마을에 청정한 수행승들이 오자 마을 사람들은 반가워하며 스님들이 편안히 수행할 수 있도록 극진히 모셨습니다. 그러나 이 수행승들이 생각보다 오래 머물자 마을 사람들은 차츰 스님들을 귀찮아하였고 그늘을 잘 만들어 주었던 나무 신들도 화를 내며 재앙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한 수행승들은 부처님을 찾아가 해결방법을 묻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자비경을 설하시어 암송하게 하고 그 깊은 의미를 음미하면서 명상하게 했습니다. 수행승들이 그것을 외우며 마을로 가자 자비의 기운이 전달되면서 그들의 마음이 풀려 수행승들은 더 이상 방해받지 않고 모두 아라한과를 이루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자비관을 설하신 인연입니다.


이제 자비수행의 방법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대중스님들께서도 함께 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고요한 장소에서 편안한 자세로 정좌합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자비’를 몇 번 되풀이 발음하면서 마음속에 그 뜻을 떠올립니다. 자비. 자비. 자비…


<자식을 위해 온갖 고난을 감내하는 어머니의 마음, 증오,원한,성냄을 떠나 남들의 행복과 안녕을 증진시키는 선의의 동정>,


그 다음 행복감으로 빛나는 자기 자신의 환한 얼굴을 눈앞에 그립니다.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든지 행복한 미래를 생각하셔도 됩니다. 푸른 잔디, 상쾌한 솔밭을 생각하셔도 되고요, 평상시에도 거울을 볼 때마다 행복한 기분을 느껴보고 명상하는 동안에도 줄곧 그런 기분에 잠깁니다.

그 다음,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가득 채웁니다.


내가 적의에서 벗어나기를.

내가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내가 번뇌에서 벗어나기를.

내가 행복하기를.


이런 방법으로 가까운 사람부터 이웃, 민족, 세계, 우주, 유정, 무정들을 향해 자비의 기운을 보냅니다. 이때 혹시 주위에 일시적인 오해나 다툼이 있는 사람에겐 그 불쾌한 사건을 회상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마지막에 그 사람을 관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대상에 대해서는


나는 그에게 아무런 적의가 없다.

그도 나에게 적대감이 없기를.

그가 행복하기를.


하면서 진심으로 관합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을 눈앞에 떠올려 가는 동안 좋고 싫고 애착하고 증오하는데 기인한 장벽들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이처럼 자비관은 마음이 열리지 않는 사람에게 자비경을 외워 그 내용을 영상화시키고 받아들여서 그 마음이 나와 다른 사람에게 퍼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치문 때는 자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내세우며 아웅다웅 부딪치며 살고, 사집 때는 포기할 사람은 포기하고 시시비비가 싫어 자기와 맞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가끔은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주의를 뇌롭게 하기도 합니다. 사교,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무관심도 아닌 좋고 싫은 것도 아닌 모든 사람들과 평온해지기를 바랍니다.

제가 모든 사람들에게 이 자비관의 가르침처럼 싫고 좋음 없이 한결같을 수 있다면 강원 4년에 있어서의 가장 큰 소득이 될 것입니다. 갈수록 파괴적 성향들에 직면하고 있는 지금, 이 사회적 성향을 떠나 자비문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비를 중요시하는 이 안에서도 우리는 철저한 자기 수행이라는 이름 하에 갈수록 메말라 가고 있습니다.

이 때 자기의 모든 번뇌 망상의 기운들을 자비로움으로 바꾸는 수행을 한다면 좀 더 부드럽고 평온한 수행환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자비관을 법문주제로 정하면서 대중스님께는 물론 무엇보다도 제 자신에게 부끄러웠습니다. 과연 지금까지 저의 마음에 진정한 자비가 얼마나 흐르고 있었는지,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얼만큼 자비의 기운을 보내왔는지…….


대중스님들께서도 이 법문을 인연으로 하루 한 번만이라도 자비관을 수행하신다면 우리의 삶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불행의 원인, 우리의 강력한 적은 바깥의 그 어떤 경계도 아닌, 스스로의 마음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진심의 불길을 꺼뜨리는 가장 강력한 단어는 다름 아닌 ‘자비’입니다. 자기 자신부터 주위사람, 나아가 반 스님들, 운문사 전체의 대중들에게 보내는 자비의 염은, 그대로 여러분 자신에게로 되돌아 올 것입니다.

대중스님!

하루 한 번 기억하십시오. ‘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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