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기도하는 마음 (혜정스님)

운문사 | 2005.12.26 13:42 | 조회 2930

사집반 혜정입니다.

행자시절 염불 외우기를 마치고 초발심을 배우던 어느날 은사스님께서 부르셨습니다.

“목표 없는 수행은 돛대 없는 배와 같다. 목표를 세우고 수행해야 어떤 경계에도 흔들리지 않고 여일하게 정진할 수 있다”

고 하시면서 저의 10년 후의 수행목표가 무엇인지를 물으셨습니다. 그 때 저는 자경문 가운데


人我山崩處에 無爲道自成하나니

凡有下心者는 萬福이 自歸依니라

인상 아상의 산이 무너지는 곳에 함없는 도가 저절로 이루어지나니

무릇 하심 하는 자에게 만복이 스스로 귀의하니라


라는 글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있던 차라 아주 큰 소리로 당당하게

“저의 모든 相을 여의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후 행자생활, 노스님 시봉, 강원입학, 바쁘고 힘든 시간 속에서도 相을 여의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염두에 두었습니다. 장애가 있고 시비분별이 생길 때마다 전체를 보려하고, 나름대로 기도도 해보고 부처님 경전을 독송하면서 깨어있는 ‘나’가 되고자 애썼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면밀하지 못해서 건성건성 흘려버리고, 차분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반응을 보이다 보니 화내는 일이 잦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주장을 강하게 드러내어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나를 발견하게 되자 기도를 통해 단점을 고쳐 보고픈 간절함이 더욱 커졌습니다. 경계에 걸리는 것이 모두 저의 相에서 나옴을 알았고 겸손히 하심下心할 수 없는 수행자는 공부가 익어질 수 없다는 말씀이 가슴 깊이 와닿았습니다.


대중스님들도 절을 한다거나 기도 또는 간경, 주력 등을 통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쓰신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나름대로 절과 자비도량참법 기도를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제 삶에 대해 진참회를 하게 되므로 下心의 중요성을 알았고, 출가승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흔들림 없는 결단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저를 위해 기도를 시작했지만, 나 아닌 모든 유정, 무정을 향해 눈뜰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이제 강원 생활에서도 아주 깊게 뿌리 내린 나라는 相이 스스로를 묶어 경계에 끄달리게 함을 보면서 下心하는 者가 되기를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 어리석고 자비롭지 못한 것의 근원을 뽑아내어 제 마음이 촉착보리(觸着菩提), 즉 어느것 하나 보리 아닌 것이 없다는 말씀과 같이 되어지길 발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정성스럽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순간순간을 보내고

“깨달음은 설거지를 하거나 채소를 기르는 일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라는 틱낫한 스님의 말씀처럼 일상이 곧 수행임을 바로 알고 살고자 합니다.

부족하지만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이 마음을 돌려서 대중스님을 부처님처럼 존중하면서, 육신이 아플 때는 그 경계가 스승이라 여기고, 마음이 혼란하면 그렇기에 더욱 정진하고, 진심이 생기면 참을 인(忍)자를 떠올려서, 10년 후를 맞이하려 합니다. 이렇게 살다보면 무위도無爲道에 이르를 것이며, 부처와 제가 둘이 아닌 때가 올 것을 믿습니다.


대중스님,

스님의 10년 후 수행목표는 무엇입니까?

역경계와 순경계에도 흔들림 없이 정진하는 수행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부지런히 공부하라

날마다 하루 종일 누굴 위해 바쁠 건가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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