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소중한 인연...... (도일스님)

운문사 | 2005.12.26 16:12 | 조회 2764
2500여년전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 앉으시어 자연의 소리를 들으시며 깨달음을 얻으셨다면, 오늘 우리들은 법당의 푸른 단청을 보리수삼아 자연과 하나가 된 사물의 소리를 들으며 깨달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겠지요.

화엄반 도일입니다.
옷깃만 스쳐도 안연이라는 말 다 아시죠?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대중스님들은 몇 겁 동안이나 몇 번의 옷깃을 스치고 스쳤길래 청정도량 운문사에 모였을까 하고 새삼 생각해 봅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을 수 있다‘라는 것이 인연, 연기법의 기본 골격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인연과 함께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 실생활에서 필요한 물건들, 우리의 몸을 바삐 움직이게 하는 일들… 이런 물질도 인연에 의해 일어나고 정신도 인연에 의해 일어납니다. 인연을 떠나서는 어떠한 것도 존재할 수 없는, 그래서 우리가 맺고 있는 인연 하나하나가 소중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많은 연을 맺다보면 정이라는 감정에 묻혀서 좋아하는 마음, 싫어하는 마음 등 분별심을 내게 됩니다.
저의 경우 아주 끔찍이 싫어하는 게 하나 있는데, 바로 애벌레입니다. 강원 오기 전 노스님께서 걱정거리가 두 가지 있었는데요, 하나는 새벽 3시에 어찌 일어날까, 또 하나는 농사를 어찌 지을까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집 때 농사지으며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살찐 애벌레와 기다란 지렁이를 볼 때마다, 기겁을 하고 호미를 집어 던지며 도망가는 게 허다했습니다.
그래서 가을철에 배추벌레 잡는 운력은 저에게 최악의 운력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애벌레의 모습을 벗고 하늘 위로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t상이 참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 징그럽기 짝이 없는 애벌레가 아름다운 나비로 변화되는 걸 어린시절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두 가지 모습을 다 좋아하기란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이렇듯 꿈틀거리는 애벌레가 없다면 아름다운 나비를 볼 수 없고, 갖가지 꽃들도 볼 수 없을 것이며, 그러다보면 우리의 마음과 세상은 메마른 사막과 같아지겠지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옆에 있는 도반 스님 얼굴을 보십시요. 그리고 이렇게 말해 보세요.
‘스님이 없으면 내가 있을 수 없고, 내가 없으면 스님 또한 있을 수 없으니, 2500여년전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구하지 않으셨다면 우린 이 자리에서 만날 수 없었겠지요’
하지만 우린 살아가면서 칡넝쿨처럼 서로 얼키고 설키는 가운데 교만과 아만을 내세워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내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게 됩니다. 뒤돌아보면 상처줄 일도 아파할 일도 아닌데, 실타래의 매듭이 꼬이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꼬이고 꼬여 결국 그 원인을 찾을 수 없어 포기하게 되고 무관심하게 됩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연을 맺는 순간 그것을 얼마나 소중하게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는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운문사 4년 살면서 많은 이들과 만나고 만날 때마다, 제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수없이 던져보고 비춰봐도 객관적으로 저 자신을 바라본다는 게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라도 하찮게 여기지 않고 내 몸의 살점처럼 소중히 여긴다면 헐뜯고, 무시하고 상처 주는 일은 없겠지요.

청명한 가을입니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낙엽은 나무와 이별하는 것이 슬픈게 아니라, 다시 만나기 위한 희망을 품고 흙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이 풍성한 가을이 지나고 코끝 시린 겨울이 오면 매년 그렇듯이 졸업을 하고 헤어지지만, 헤어짐과 동시에 새로운 만남의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인연 맺으며 다 같이 성불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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