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불화이야기 (현성스님)

운문사 | 2005.12.26 16:22 | 조회 2820

내 마음에 부처님을 그린 것이 벌써 세 철이 지나가고 하얀 겨울철로 접어들어 벌써 차례법문을 하게 된 치문반 현성입니다.

초등학교 어린시절에 부처님께 예불을 모시다가 문득 부처님의 모습을 직접 그려봤으면 하고 생각하게 되어 그 다음날 도화지와 연필, 지우개를 준비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그렸는데, 생각처럼 그리 쉽게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학교에서는 저보고 그림을 곧잘 그린다고들 하였는데, 부처님의 모습은 마음만큼 그리 쉽게 그려지질 않더군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비로소 13년이 지나서야 원하던대로 부처님을 그릴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이때부터 저는 불화에 대한 모든 것을 비유기 위해 제 나름대로 열심히 뛰어 다니면서 공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동안 이론과 실기 배운 것이 대중스님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불화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신수대장경 47 율부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최초의 불교 사찰인 기원정사를 보시한 급고독장자에게 “장자여 문의 양쪽에는 집장약차를 그리고 그 옆의 한 벽면에 대신통변을, 또 한 벽면에는 오취생사의 수레바퀴를, 처마의 벽면에는 본생사를 그리며 불전의 문 옆에는 지만야차, 강당에는 음식을 든 야차, 창고문에는 보배를 가진 집보야차, 안수당에는 여래가 몸소 병을 간호하는 상을 그리고, 대소행처에는 시체의 모습을, 방안에는 마땅히 흰 뼈와 해골을 그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불교초기에는 어떤 형태이거나 장식적이고 교훈적인 그림이 있었으며, 기원전 2~3세기경부터 인도의 각 사찰에 벽화가 그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불교가 서역에서 중국을 통하여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일본에까지 전해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이 시기는 중국 문화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하고, 인도의 불교 문화도 같이 전파되어 아시아 전역의 문화가 활발히 접촉, 교류하였고, 이때에 미술문화도 빈번한 교류가 이루어져 인도의 기법과 중국의 양식이 우리의 수법과 서로 교류, 혼합하여 모든 사물이 원근과 대소가 분명하지 않은 관념적이며 상징적인 그림이 많이 그려져 내려왔습니다.


삼국시대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쳐 내려오는 동안 우리 민족의 감성에 맞는 고유의 색채와 문양들이 개발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고려 때는 국가적이고 귀족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불화들이 매우 발달하여 불화의 극치를 이루었습니다. 이 때는 섬세하고 중후한 불화들이 다량으로 제작되어 인근 여러나라에 고려불화의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 대신 유교가 성행하였고 도덕이나 윤리를 내세우는 성리학의 성격대로 소박하고 정교하면서도 은은하고 잔잔한 기풍을 띠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왜군의 공격을 받아 사찰이 피폐해지고, 불화가 많이 없어지고 불교미술품은 약탈 당하고 불에 태워져서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러한 사찰들이 다시 중건 또는 복원되는 과정에서 불교 미술이 다시 일어났으며, 이때에는 민간 차원의 많은 불화들이 그려졌고, 조선 초기보다 훨씬 밝고 명랑한 중간 채색을 많이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다음은 불화의 색 구조와 습화법을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불화의 채색은 오채로부터 시작하는데, 오채는 음양오행사상에 기본을 둔 것으로 음양은 일월성신의 운행과 자연현상을 인간 생활에 연관시키고 음양에 두 기가 있다 하여 천지만물의 화성은 이 두 기의 사라짐과 생김으로 이루어진다 합니다. 오행은 색채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金, 木, 水, 火, 土의 다섯 원소는 각각 백, 청, 흑, 적, 황으로 상징되고 계절과 방위도 색채도 표현되는데, 천문지리의 사상을 구현하여 방위와 절기 등을 색상에 부합시킨 것으로 한 가지 색에 자연과 철학, 역학사상 등이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습화법은 불화를 처음 대하시는 분은 필력을 키우기 위하여 선을 긋는 연습을 하는데, 이것을 습화 또는 초등듯기, 초뜨기라 하며 습화를 보통 몇 천 장을 연습하여도 선이 곱고, 고르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많은 노력과 끈기를 필요로 하는 작업입니다.

불화를 완성하려면, 밑바탕 그림인 습화를 하고, 배접하고 아교포수한 다음 채색이 들어가는 과정들이 아주 복잡하고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작업입니다. 그렇지만, 작업할 때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습화이며, 선의 필력에 따라서 그림이 죽거나 살고, 마무리는 금선으로 문양을 섬세하고 세밀하게 함으로써 화려해집니다.

제가 습화를 연습할 때 느낀 것은 선禪을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느낌은 붓 끝에 집중을 안하면 곧 선이 흐트러지고 고르지 못한 것이 망상으로 인해 정신과 호흡이 흐트러지는 것과 같더군요. 아마도 서예를 해보신 대중스님들께서는 동감하시리라 생각됩니다.


불화를 만드는 재료는 나무, 흙벽, 종이, 금속, 돌, 베가 있고, 베에는 삼베, 모시, 면, 노방, 비단 등 어느 것이나 사용할 수 있는데, 이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주로 베와 종이이고, 색채로는 안료, 석채, 분채, 금박, 금분 등 여러 가지가 있으며, 화학물감인 동양화 물감과 자연에서 추출하여 염료로써 채색을 만듭니다.

불화를 완성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림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불전에 사용하는 크기로는 빨리는 석달에서 길게는 다섯 달 정도를 거쳐야만 성스러운 불화가 완성됩니다.


마지막으로 문양에는 전통적인 기법의 문양과 개인의 창작적인 문양이 있습니다. 불화는 자신이 그리고 싶다 해서 그리고, 그리기 싫다 해서 안그리는 그런 경지가 아니고 어떤 큰 힘에 이끌려 그리는 것 같습니다.

불교경전에는 “부처님을 손가락 크기만하게 그려 모셔도 내세에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제왕이 되게 하리라”고 쓰여 있는데 열심히 부처님을 그리고 또 그리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경지가 어디 있을런지요?


장엄하게 그려 모신 불화속에 관세음보살님의 미소를 보면 절로 희열을 느낍니다. 그러나 불화를 공부하는 과정은 너무나 많은 인내와 끈기를 필요로 합니다. 필력을 익히기 위하여 같은 불화 초를 수천 장 그려야 하고, 방바닥에 엎드려 오랜 시간을 작업해야 하는데 그것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자세가 아니고 마음속에 불심을 담고 정진하는 구도자의 자세여야 합니다.

부처님 앞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려 모셔진 불화가 향에 의해서 까맣게 그을려 있을 때나 잘 보전되지 못했을 때, 또는 우리들의 귀중한 문화재인 고려불화가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아직도 일본에 남아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서글픈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우리의 것을 잘 알며 아끼고 사랑할 때에 전통불화의 가치를 잘 알 수 있으며, 또 참여함으로써 우리의 전통 불화를 발전시키고 계승할 수 있습니다.

성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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