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不二門 (천연스님)

운문사 | 2005.12.26 17:20 | 조회 2618

가는 것도 참선이요 앉는 것도 참선이니

어묵과 동정이 안연하여 하나일세

나무 아미타불

살아가면서 혹 참 아름답다, 잠깐 머물러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언제일까요?

무엇을 대할 때 나도 저것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시인의 이름과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나지만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을 때나 말을 할 때

혹은 시간에 이스트를 넣고 있을 때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라는 구절의 시를 본 적이 있는데요, 저는 본분사에 충실하는 사람을 보면 참 아름다운 풍경이란 생각을 합니다.

학생이 공부하는 모습, 농부가 밭을 갈고 씨 뿌리는 모습, 또는 스님이 앉아서 삼매에 든 모습 등은 인간이 그려낼 수 있는 가장 멋진 풍경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소임을 사는 스님들이 자기 소임에 충실하는 모습들도 참 보기 좋습니다. 비록 중소임은 아닐지라도 성실하게 한결같이 사는 걸 보면 그 소임이 참 커 보이고 그 스님 조차도 커 보입니다.


지난 날 저는 제 자신의 본분사가 무엇인지를 몰라 그것을 찾는 데 아주 많은 시간을 방황하면서 보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일을 찾아 그 일속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고, 일을 하는동안 행복하고, 다시 태어나도 그 일을 하고 싶다는 사람을 보면 무엇보다 좋아 보였습니다. 이것이 내 천직이다 믿고 빠질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그런 일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본분사?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니 제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제가 도대체 누구인지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으로 바다로 여기 저기 돌아 다니면서 생각하고 여러 가지 책 속에서 찾아 보기도 했지만 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제 자신이 마치 깜깜한 동굴에 갇힌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도 없고, 어디로 가면 된다고 이끌어 주는 사람도 없이 다만 혼자서 그 깜깜한 동굴 속을 손으로 벽을 더듬어 가면서 길을 찾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길로 가면 반드시 빛이 보이리라는 확신, 출구가 나오리라는 확신만 있다면 얼마든지 갈 수 있을텐데 그 믿음이 없으니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고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너무나도 간절히 선지식이 필요했지만 누구도 힘이 되어줄 수가 없었습니다.

공자님이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셨듯이 저도 그 어둠을 깨뜨리고 확 트인 출구로 나갈 수 있는 그것이라면 평생을 바쳐서,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릴지라도 그것을 얻고 싶었습니다.


안주처를 찾지 못하고 헤매던 어느 날 마침내 제게 한 줄기 빛이 보였는데, 바로 부처님과의 만남입니다. 부처님과 6조 혜능 스님의 말씀을 통해서 마침내 제가 가야할 길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진경佛眞經 12부가 종횡으로 보리에 이르는 길을 지시한다는 말처럼, 부처님과 조사 스님들의 간절하고 친절한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환희와 감동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그렇게도 찾아 다녔던 본분사, 저의 모든 것을 바쳐서 하고자 했던 일, 그것은 다른게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서 내가 직면한 문제, 그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방황은 방황 그 자체로써, 고뇌는 고뇌 그 자체로써 또한 그 당시 저의 본분사였던 것입니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인간은 노력하는 한 헤매이게 마련"이라고 했습니다. 과거의 방황이나 괴로움은 도약을 위한 움츠림이 었고 오직 일념 진실한 그대로 당시 제가 감당해야 할 저의 몫이었습니다.


제가 운문사에 오기전의 일인데요, 절 마당의 낙엽을 쓸고 있을 때 일주문 밖에서 신혼부부가 야외촬영을 하면서 즐거워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무척 행복한 것처럼 보였지만 제게는 아이들의 소꿉장난만 같아 보였습니다. 마당쓸고 청소하는 저의 일상이 오히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일로 느껴졌습니다. 지금 이 운문사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반스님들과 같이 운력하고 청소하고 함께 공부하고, 예불, 입선, 가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일, 이 모든 일상의 소소한 일이 저의 본분사이고 저의 수행입니다. 다시 따로 특별한 어떤 나만의 일을 꿈꾸지 않습니다. 차라리 이 일상의 일에 충실하고, 그것을 한결같이 지켜갈 수 있는 것이 특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사께서, "진리를 궁구함은 현실에 있고 현실을 깨달으면 곧 진리이다. 현실과 진리가 융합하여 속 마음이 저절로 밝아진다" 고 하셨습니다. 현실과 진리가 둘이 아니고, 일과 삶이 둘이 아니듯이, 저의 공부와 실천의 삶도 또한 둘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운력을 할 때나 이목소에서 양치를 하고 일어섰을 때, 아니면 도량 청소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에 잠깐 고개들어 우리의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더하고 뺄 것 없이 그대로 모두 갖추었다는 생각을 할 겁니다.


겨울 하늘, 차갑지만 청명한 그 아래 진리의 길을 알고, 진리를 기뻐하며, 진리에 머물러 진리에 따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지요,

법은 설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설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했듯이,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모든 것이 法門아닌 것이 없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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