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부모은중경 (지원下스님)

운문사 | 2005.12.26 17:21 | 조회 2668

가령 어떤 사람이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모시고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모시고서

수미산을 백천 번 돌아

피부가 닳아서 뼈가 드러나고 골수가 드러나더라도

부모의 깊은 은혜는 마침내 다 갚지 못하느니라.

나무 아미타불

대중스님, 오늘도 정진여일 하십니까?

사집반 지원입니다.

울긋불긋한 꽃무늬도 없고, 화려한 디자인도 아닌, 똑같은 모양의 옷을 입고, 무명초를 싹둑 자르고서도 가슴 한 켠에 고이 간직한 응어리를 대중스님과 함께 풀어보고자 조심스레 효에 대한 법문을 준비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들려드린 구절은 『부모은중경』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입니다. 참으로 부모님의 은혜를 갚기가 어려움을 간절하게 드러낸 구절입니다.

이 경은 부처님과 아난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부모님의 은혜, 특히 어머니의 낳고 기르신 은혜가 깊고도 지중함을 설하고 있습니다.

길거리에 버려진 마른 뼈 한 무더기에도 다생의 나의 부모라 여기시고, 오체를 땅에 붙이시어 정중히 절을 하신 부처님이십니다.

대중스님!

과연 스님들께서는 이 무명초를 자르기 전, 전생, 전전생은 그만두고, 현생의 부모님에겐 어떤 자녀이셨습니까?

경에 이르시대,


여자가 한 번 아기를 낳음에

서말 서대나 되는 엉킨 피를 흘리며,

아기는 어머니의 흰 젖을 여덟 섬 너 말이나 먹느니라.

그런 까닭에 뼈가 검고 가벼우니라.

저는 1남 6녀 중 여섯째, 농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첫째가 아들이며, 그 아래로 주옥 딸 여섯을 두신 어머니. 외아들 이셨던 아버지에게 열 여덟에 시집오셔서 아들을 여럿 두시려고 다산을 하셨습니다.

딸 여섯 중 다섯째인 저와 저의 여동생은 하마터면 세상을 구경하지 못할 뻔했답니다. 미리 딸인줄 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차마 자라는 생명을 지우지 못하셨다 합니다.

서말 서되, 아니 스물 서말 한 되의 엉킨 피를 쏟으시고, 오십 여덟 말의 흰 젖을 자식들에게 먹이신 어머니… 지아비 섬기시고, 층층시하인 시어머니, 시할머니 시봉 하시고, 자식들 키워 학교 보내시고, 그러면서도 장정 두 몫의 농사일을 해내시는 억척스러운 우리 어머니… 오래 편찮으셨던 아버지 뒷 수발. 이제는 홀로 계신 어머니… 이제는 홀로 계신 어머니….


대중스님!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 한 켠이 아려옵니다. 때때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립고, 홀로 계신 어머니가 보고 싶습니다. 출가 전에는 왜 미리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고 효도하지 못했는지, 불효하면서 불효인지 조차도 몰랐는지…

가슴을 치고 또 쳐보지만 어떻게 다 참회할 수 있겠습니까. 낳고 길러주신 은혜가 한량 없음에 감사하고 감사하지만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하며, 이미 삭발염의 했으니 어떻게 갚을 길이 있겠습니까?

부모님의 낳고 길러주신 은혜가 지중하니, 아기를 배어서 수호해 주시고, 해산에 임하여 고통을 받으신 은혜, 입에 쓴 것은 삼키고 단것은 뱉아서 먹이신 은혜, 마른 자리는 아기에게 돌리시고 스스로 젖은 자리에 나아가신 은혜, 부정한 것을 깨끗이 씻어주신 은혜, 자식이 먼길 떠나면 염려하고 생각하신 은혜, 자식을 위해 나쁜 일을 감히 하시는 은혜.

이렇듯 한결같이 높고 크신 부모님의 은혜를 자식들은 너무도 당연히 받아들이며,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또한 불효를 저지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모님의 초라한 모습이 남의 눈에 뜨일까 낱낱이 밝혀 놓았으니,

자식이 드디어 장성한 뒤에는 도리어 효도를 다하지 않느니라.

존친들과 더불어 이야기함에도 그 응대함이 불공스럽고

심지어 눈 흘기고 눈알을 부라리며,

부모를 속이고 업신여기며,

어머니가 홀로 되어 혼자서 빈방을 지키게 되면

마치 손님이 남의 집에 붙어 있는 것처럼

부모가 있는 곳에 들어가

문안하거나 보살피는 일이 없기도 하느니라.

이렇게 되니 부모는 밤낮으로

항상 탄식하고 슬퍼하게 되느니라.

저는 이 구절을 읽고 참으로 이것이 저의 모습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대중스님들께서는 삭발 염의 하기전에 자식된 도리로서 부모님께 효순하고 형제간에 신의 있고 홀로 계신 부모님 방이 따스한지 추운지 잘 보살펴 드렸는지요. 이제 부처님께서 불효의 과보를 밝혀 놓았으니,

경에 이르시대,

불효한 자식은 몸이 허물어져 죽게 되면 무간지옥에 떨어지느니라.

여기에서는 끓는 구리와 무쇠물을 죄인의 입에 부어 넣으며,

무쇠로 된 흰 뱀과 구리로 된 개가 연신 연기와 불꽃을 토하면서

죄인을 들볶고 지지고 구워서 살이 타고 기름이 끓어

그 고통은 참기 어렵고 견디기 어려우니라.

이와 같이 고통받기를 겁을 지내도록 끊일 사이가 없느니라.

대중스님!

이와 같은 고통스러운 모습이 저의 미래가 아니라고 어찌 단정할 수 있겠습니까? 삭발염의 했다고 어찌 피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님의 은혜는 참으로 깊고 넓고 지중한데 이 한 몸 희생으로 어떻게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이제는 출가 수행자가 되었으니 가까이 하기도 어렵고 효도를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적은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비록 직접 뵙지 못한다해도 자신이 처한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현재 운문사에 몸을 담고 있으니, 경을 보는 데 힘쓰고, 반 스님들과 화합하는 가운데 주어진 일들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야, 졸업한 후에 포교를 하든 참선을 하든 경학을 하든 또 그곳에서 충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수처작주(隨處作主)하는 수행자로 살아가면서 삼보께 공양하고 참회하며 산다면, 높고 큰 부모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입산(入山)하던 날 아침, 어머니께서는 손수 찰밥 한 그릇과 미역국 한 그릇을 차려 주셨습니다. 어머니 당신께서는 자식의 새 출발을 이렇듯 축복해 주셨습니다. 옷을 따뜻하게 입고 가라 하시며 애써 태연한 척 하셨습니다. 떠날 준비가 다 되자, 끝내 한 줄기 눈물을 감추지 못하시고는 방을 먼저 나가버리셨습니다. 그게 마지막 이었습니다. 아니, 저의 떠나는 뒷모습을 집 모퉁이 어딘가에서 지켜보셨을 겁니다.

‘부처님, 이 아이를 부처님께 보내오니 부디 큰 스님되게 해 주십시요.’ 하고 두 손 모아 빌면서…


대중스님!

지옥문이 코앞에 있습니다.

항상 정진 또 정진하십시요.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