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가장 좋은 인욕(서안스님)

운문사 | 2005.12.26 13:19 | 조회 2994
첫 철이 시작된 지 벌써 몇 주가 흘렀습니다.
치문반 스님들도 이 운문의 도량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가고 있겠지요. 목련꽃이 4년 만에 활짝 피어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불교는 진리를 깨달아 행복한 삶을 누리게끔 하는 종교입니다.
잘못된 깨달음은 옳고 그른 것에 대한 명료한 결택을 전제로 합니다. 하지만 불교는 성내지 않는 종교, 즉 평화의 종교입니다. 자신의 깨달음을 다른 사람이 공유하지 못했다고 그들을 질책하거나 무너뜨리지 않고, 넉넉히 받아들여 기다려 줄줄아는, 인욕과 관용의 종교입니다. 상대의 잘못을 일깨워주지만, 때로는 그 잘못을 감싸안아 주기도 하는 종교입니다. 예를 한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지나간 세상에 어떤 야차귀신이 추하고 나쁜 형상으로 제석천의 빈자리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33천의 하늘 신들은 그 귀신이 추하고 나쁜 형상으로 제석천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제각기 모두 크게 성을 내었습니다. 여러 하늘들이 이렇게 몹시 성을 내자 그 귀신은 그 성냄을 따라 점점 단정하게 변하게 되었습니다. 33천의 여러 하늘 신들은 제석천에게 나아가 아뢰었습니다.
"어떤 귀신이 추하고 나쁜 형상으로 천왕의 빈 자리위에 앉아 있습니다. 우리 하늘들은 그 귀신이 추하고 나쁜 형상으로 앉은 것을 보고 몹시 성을 내었나이다. 여러 하늘들이 성냄을 따라 그 귀신은 점점 단정하게 되었나이다."
제선천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성냄으로써 다스렸기 때문이다."
제석천은 친히 그 귀신에게로 가서 옷을 바로 하고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합장하고 자기 이름을 세 번 말하였습니다.
"나는 석제환인입니다. 나를 따라 이와 같이 공경하고 겸손하시오."
이렇게 세 번 말하자 그 귀신은 점점 추해지다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화를 내는 마음속엔 상대방을 격하시키고자 하는 마음, 격하시켜버린 마음이 깔려있습니다. 두 사람이 있을 때 한 사람은 화를 내고 있고, 또 한 사람은 그저 담담히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상대방이 거칠게 말함에도 불구하고 예를 잃지 않고 비굴하지 않으며 담담히 응한다면 사람들은 그 인격의 고상함에 존중하지 않을 수 가 없을 것입니다. 화를 내는 것은 곧 상대방만 더 좋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하여 이런 나쁜 놈이라든지, 저 사람은 별로 안 좋아, 라고 생각을 가진 사람은 그가 조금만 자기에게 잘못해도 이미 그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지라, 너그럽게 받아넘기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평상시에 그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면 설혹 그가 자기에게 서운하게 대하거나 거칠게 행동하더라도 '이 사람이 오늘은 왜 이럴까?' 하며 한 번 더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속상한 일, 화나는 일을 당하여 꾹 참는 것은 진정한 인욕의 길이라고 하기엔 어렵습니다. 그럴 경우 눌러 놓은 화는 자신의 마음을 병들게 하거나 나중에 튀어나오게 마련입니다. 가장 좋은 인욕의 길은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호의, 즉 자비심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은 화날만한 일을 당해서도 화를 내지 않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갖추게 될 것입니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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