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삭 발 (종법스님)

운문사 | 2005.12.26 13:30 | 조회 3696

출가는 참으로 거룩한 것입니다.

싯다르타 태자도 출가하여 삼계의 대도사이며 사생의 자부가 되고 사바세계의 법왕이 되셨습니다. 인도의 용수·마명, 중국의 달마· 혜능, 한국의 원효·보조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출가 삭발하고 고해에서 헤매는 중생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그들 모두 흙이 되어 중생의 의지처가 되고, 물이 되어 메마름을 적셔주었고 더러움을 씻어 주었으며, 불이 되어 따뜻하게 감싸주고, 바람이 되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도 또한 이들과 같은 길을 가고자 출가하여 삭발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대중스님들과 함께 삭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원래 인도에서는 머리카락 자르는 것을 가장 큰 치욕으로 생각하여 큰 죄를 지은 죄인에게 내리는 형벌의 하나로 시행하였다고 합니다.

삭발에 대해 사전에는 "체발, 락발, 축발, 체두라고도 하며 수염과 머리털을 깎아서 세속의 인연을 끊고 출가한 모습, 교만을 버리게 하고 외도의 출가와 다름을 보이기 위한 제도, 처음 출가할 때 득도식의 의식에 따라 깎고 그 뒤에는 보름마다 한번씩 깎는 것을 통례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삭발에 대해 「과거현재인과경」에서는 머리카락과 번뇌를 연결시키고 있고, 「비니모경」에서는 머리를 깎는 이유는 교만을 제거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믿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석문의범」에는 문수삭발일과


삭발게송 - 체도빈발 당원중생 원리번뇌 구경열반

삭발진언 - 옴 싯전도 만다라 발다야 사바하


를 명시해 놓았습니다.

삭발일에 먹는 찰밥은 기를 강화시키는 작용이 있어서 머리를 깎음으로써 생겨나는 상기현상을 조절한다고 합니다.


대중스님!

대중스님들은 삭발을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저는 행자교육에서의 첫 삭발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런 사전 교육도 없이 대중 목욕탕에 포로들 풀어놓듯 "1시간 안에 옷 다빨고 삭발하고 목욕하고 나오세요. 5분전까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칼날을 밟아서 피투성이가 된 행자님, 머리에 나는 피들, 뒤부터 깎는 행자님, 정수리부분을 바가지처럼 깎아 내리는 행자님… 한동안 넋이 나갔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삭발을 법답게 하는 것이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이 저에게 남아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삭발이라는 주제로 삭발할 때의 마음의 자세와 삭발하는 순서, 주의할 점 등을 대중스님과 함께 공감하면서 이 법문을 계기로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삭발하는 날을 맞이하게 되길 바랍니다.


먼저 삭발하는 순서는, 정수리에서부터 좌, 우, 앞, 뒤 순으로 합니다. 삭발할 때에는 동쪽을 향하는 것이 좋고 삭발해주는 사람은 삭발하는 사람을 은사스님과 같이 대해야 합니다. 그래서 머리를 손가락으로 찍으며 숙여라! 방향을 바꿔라! 자리를 옮기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삭발 그릇은 이동시키지 말아야 하며 삭발 그릇의 물은 적은 양을 사용하고 삭도기를 허공에서 쓸데없이 휘젖지 말고 물에서는 한 번만 살짝 털어내야 합니다. 삭발한 무명초는 말려서 태워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운문사를 비롯해 많은 사찰에서 땅에 묻거나 하수구로 흘려보낸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한창 환경오염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우리 승가에서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아닐지요.


부처님 멸도후 2500여년이 지난 현대를 사는 우리들.

얼마나 부처님의 뜻에 부합하며 살고 있을까요. 우리는 삭발을 그냥 지나치는 일상처럼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저에게는 삭발할 때마다 크게 가슴속에 자리하는 분이 계십니다. 출가전에 불교인이 아니었던 속가의 어머니입니다. 저의 출가를 간절하게 너무나도 간절하게 만류하셨습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저를 설득하셨는데, 밤새 한순가도 쉬지않고 울먹이던 어머니께서 새벽녘에 차선의 방법으로 출가시키는 조건을 제시하셨습니다. 그건 삭발은 않고 출가하여 사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절이 있는데 여행가서 보니 엄청나게 큰절이더라."

그것은 천태종 구인사입니다.

"거기는 머리 안 깎고 중인지 뭔지 한다고 하던데 거기서 스님하다가…"

하고 말끝을 흐리셨습니다. 그건 우선 제가 돌아가고 싶어도 머리 때문에 한 순간이라도 포기하고 싶은 맘 내는 그 때에 돌아갈 수 없을까 염려하는 마음이셨던 것 같습니다. 출가하여 스님이 된다는 것보다 더 가슴 아프게 했던 것이 삭발하는 것이었나 봅니다. 우리의 삭발은 우리가 두고온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을 출가한다는 말 만큼이나 더 아프게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중스님!

삭발은 그냥 일상처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수행 일상을 점검하고 경책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합니다.

탐·진·치의 마음이 일어나면 먼저 자기 머리를 만져보십시오.

처음 부처님께서 삭발하시면서 가지셨던 마음을 닮고 부처님의 뜻을 잊고자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늘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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