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승가공동체 (영휴스님)

운문사 | 2005.12.26 13:32 | 조회 2648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영휴입니다.

대중스님들께서는 아마 '공동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꿈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농촌으로 돌아가 직접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귀농공동체부터 아이들의 교육문제를 고심한 끝에 대안가정이나 대안학교를 일궈나가는 육아공동체, 교육공동체, 또 생태공동체 등 세간에서도 가지가지 당면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노력이 각종 공동체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저 역시 출가전에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기 때문에 세간에서의 이런 모습들이 과연 무엇을 모델로 한 걸일까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미 부처님 당시 정사가 건립되고 부터 공동체 생활을 해왔던 오랜 전통의 승가 공동체. 이것이 바로 현실의 공동체 운동을 일궈 나가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큰 모델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 승가공동체에 대해 대중스님들과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이 공동체 생활이 과연 어떠한 기능과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함께 먹고 자는 것 외에 이 승가공동체의 한 사람임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먼저 인도불교사를 통해 유행, 편력의 생활이 정사에 정주하는 생활로 전환되는 과정을 거치며 확립된 승가의 기능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승가는 수행자의 생활공동체입니다.

생활을 함께 할 뿐만 아니라 승으로서의 수행·행위·규범 등 생활문화 전반을 공부하고 전달하는 곳입니다.

둘째, 승가는 교법을 전수하는 곳입니다.

열반과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과 그 전수도 승가가 있음으로써 가능하고, 승으로서의 청정성을 지킬수 있는 것도 승가의 덕입니다.

셋째, 승가는 재가 신자가 공덕을 쌓는 매체, 즉 공덕·복덕을 낳는 밭, 복전의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승가공동체는 수행자가 생활을 함께 하면서 서로에게 배우고, 가르치고, 깨달음을 향해 나가는 그런 곳입니다. 수행자의 든든한 울타리이자 부처님의 혜명을 잇는 근본역할을 하는 곳이지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승가의 한 사람이면서도 승가를 나와는 거리가 먼 무엇으로 생각하거나 막연히 종단을 떠올리거나 하지는 않습니까.


저는 오늘, 대중스님들께서 승가를 너무 광범위하게 생각하지 말고 현전승가, 지금 우리가 속한 운문승가공동체를 생각하면서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곳에서 자신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되짚어 보면서 말입니다.


대중스님.

저는 최근에 승가에 대한 글 한편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글을 쓴 분은 틱냨한 스님이신데요,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에게 뒷받침이 되어주고 북돋아주는 승가가 있으면 보리심을 키우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이해해주는 이가 없으면 여러분의 수행의지가 시들 수 있어요. 여러분의 승가·도반은 흙이고 여러분은 씨앗입니다. 씨앗이 아무리 튼실해도 흙이 부실해서 양분이 없으면 그 씨앗은 죽고 말지요.

좋은 승가는 수행에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부처님·다르마·승가 이 셋은 불교의 보물인데요,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가입니다. 승가에는 부처님과 다르마가 모두 들어있지요.

승가에 귀의한다는 것은 승가공동체를 믿고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그 속에 있으면 노력하지 않아도 변화가 이루어지고,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도 건강한 승가 안에서 함께 살면 그냥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이루어지거든요.


대중스님.

우리가 서로에게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그런 승가공동체의 한사람, 한사람일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이곳에 함께 사는 것만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변화되고, 문제가 있는 사람도 변화될 수 있는 그런 건강한 승가, 그런 승가의 구체적 한 사람 한 사람인 나 그리고 도반, 이곳에 사는 우리가 승가공동체에 대해 고민하고, 반성하고, 수행하면서 이곳부터 '좋은 승가'를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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