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일총스님)

운문사 | 2005.12.26 13:33 | 조회 2462

처음에는 먼저 자기 할 일을 살펴서

옳고 그름을 알아 거기 머물고,

그 다음에 마땅히 남을 가르쳐라.

거기는 다시 괴로운 일이 없나니.


남을 바르게 가르치듯이

마땅히 자기 몸을 바르게 닦아라.

다루기 어려운 자기를 닦지 않고

어떻게 남을 가르쳐 닦게 하랴.


만일 자기의 잘못은 숨기고

남의 잘못만 찾아내려 한다면

마음의 더러움은 더욱더 자라서

없어질 날이 없을 것이다.


이 글은 부처님의 말씀을 축약해 놓은 법구경의 인용구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나와 남의 관계에 대해 가르치신 부분입니다.

우리는 상당부분을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며 살고 있습니다. 내가 하지 못하는 부분을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채우고 있고, 남들 또한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이렇게 혼자서는 영위할 수 없는 삶을 살면서 우리는 자신을 살피기 보다는 남의 언행에 대해 시비하고 게다가 그것을 일삼아 얘기하기가 십상입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는 가르침을 매일 배우면서도 일상은 그렇게 접합시키지 못한 채 남의 잘못, 남의 실언, 남의 과오에 대해 극히 민감하게 반응하곤 합니다.

다른 사람의 편의와 평온을 도와주는 데는 미비하면서 작은 잘못 하나에도 너그럽지 못합니다.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자신의 현 존재를 생각하거나 행동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입장'이 어떤 것이라고 명백하게 세우지 않으면 아무리 정확한 관찰도 참된 관찰이 되지 못하고 늘 흔들리게 됩니다. 흔들리는 수면위에 비친 달을 보면 그 달과 물이 흔들리게 보이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야말로 자신의 속얼굴이 환히 드러나 보일 때까지 자문하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묻는 사람에게는 흔들리는 달과 수면이 보일 리가 없습니다.

내 안의 시시비비가 그대로 밖으로 나왔을 뿐입니다. 왜 남들한테는 보이지 않는 시비거리가 내 눈에만 띄겠습니까?


정말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이런 시비에 휩싸이지 않습니다. 남을 향한 시비보다는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각을 조율하는 것이 더 절박하기 때문입닏. 시시비비를 따지기 전에 맑고 고요한 눈으로 주위사람들을 대해 보십시오. 그들 역시 나처럼 성글기만 한 자신을 깎고 빚어내고 있는 부처님 대기자들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시비가 보일 때 이미 자신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신을 추스립니다. 남에게 많은 관심과 책망들 또한 자신에게 주의 집중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표명해주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기를 뛰어넘어 그 어떤 것들과도 조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발심했습니다. 자신의 무한을 시비로 인해 유한으로 만드는 과오를 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제,

부산히 바깥으로만 돌린 눈을 거두어 나 자신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져 봅시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부처님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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