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회향, 진심으로 돌이키기 - 화엄반 덕인

가람지기 | 2017.04.19 12:49 | 조회 1654

대중스님 여러분 안녕 하십니까. ‘회향이라는 주제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대교과 덕인입니다.

 

서투르기만 하던 치문을 지나 어느덧 화엄의 끝에 접어들었습니다. 소중한 강원 생활의 마지막 철을 보내고 있는 요즘, 저는 문득 이 길의 시작점에 들어선 것도 중요하지만 이 길의 끝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강원의 4년간 보고들은 큰 가르침들을 되새겨 보면서 회향이라는 큰 줄기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장보살님은 모든 중생을 다 구제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광대한 원을 세우셨습니다. 중생을 구제하는 것은 대승의 관점으로 볼 때 최고의 회향 방법에 속합니다. 그렇다면 지장보살님의 원력과 회향의 힘을 알고 있는 우리들은 보다 가까이 회향의 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한자를 풀이해 보면 돌아갈 회. 향할 향자로 회향은 자기가 닦은 선근 공덕을 다른 중생이나 또는 자신의 불과에 돌려 향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혼자만의 독점이 아닌 함께하는 일인 대승의 이치를 다 담고 있는 이 한 단어로 부처님 가르침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러한 뜻은 어떤 기도나 공부를 해도 마지막 종점이자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에 저는 순환이라고도 표현해보고 싶습니다. 회향과 순환으로 단어만 따로 갈라섰을 뿐이지 온통 부처님 법이고 결국에는 모두 하나의 뜻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제가 법문의 주제를 회향으로 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모두 이해하셨습니까?

 

깨달음을 성취한 아라한들에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전법선언을 하셨습니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속박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이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나아가라. 그러나 같은 길을 두 사람이 함께 가지는 말아라.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한 법을 설하라. 이 세상에 때가 덜 묻은 사람들이 훌륭한 법문을 듣게 되면 곧 깨달아 아라한의 지위에 오르리라.” 2600년 전 전법의 시작이었을 회향이라는 길은 처음에는 작은 한 걸음 이었지만 곧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갔습니다. 그 나비효과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결국에는 우리들도 만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수승한 일인가요. 내 옆의 도반이 원수요 상반은 얄밉고 하반은 머터로워서 안쓰럽다고 잠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출가 수행자로써 마음공부를 트게 한 인연입니다. 매일 보는 경전의 가르침들 속에서 이처럼 귀한 인연을 만난 자신만의 회향 방법을 찾아 펼쳐보는 것도 우리들의 큰 공부중 하나입니다.

 

화엄경에 이해하기 쉬운 여러 가지 비유들로 높은 보살의 회향법을 설명하였습니다.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인 52위 가운데 제 31위에서부터 제 40위까지의 열 가지의 회향 공덕을 가리켜 십회향 이라고 하는데 십회향 품을 들여다보면

불자야. 보살 마하살이 다시 생각하되, 해가 일체를 비추어도 은혜 갚기를 원하지 않는 것과 같아서 중생들이 악함이 있더라도 다 능히 용납해 받으며, 다만 선근을 닦아 회향하여 넓게 중생을 안락하게 하며, 만일 선근이 있더라도 일체 중생에게 이익하지 않으면 회향이 아니거니와. 적은 선근이라도 중생을 위하여 반연하면 회향이라고 이름 하니라.” 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는 보살이 널리 중생에게 돌리는 것으로 나와 남을 동시에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의 이념도 함께 합니다. 최고의 회향은 선근 회향이고 이는 전법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모두가 깨어 돌아가는 자리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불교를 잘 모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욕락의 고통은 더 많아 졌습니다. 이들 속에서 어렵지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느끼도록 이끌어 내는 것이 결국엔 회향에 부합하는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서투름이 허물이 아닌 노력의 산물이 되는 초발심의 학인. 이 귀한 때를 운문사가 아니었다면 과연 어디서 빛낼 수 있었을까요? 여러분들, 지금은 믿기지 않으시겠죠? 하지만 입학과 동시에 세운 여러분의 원력과 회향은 이미 실천되고 있다는 것을 아셨으면 합니다. 운문사에서의 웃고 울었던 나날들은 모두 지금 이 자리에서 선근회향하기 위함입니다. 설령 조금 서러운 일이 있더라도 인연 따라 돌아가는 질서정연한 불교의 이치로 생각해 보면, 이 어렵다고 여겨지는 현실은 선근회향을 위한 원력의 재정비로 돌이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도량을 감싼 호거산과 대웅보전의 향내음 까지 이 모든 만물이 아직 제가 운문사에 있음을 말해 줌과 동시에 수고했다라고 다독이는 것 같아 정말 졸업할 때가 되었음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화엄행자 26명이 이렇게 선근 회향 할 수 있도록 4년 동안 사랑해주시고 도와주신 회주스님, 선재동자가 곧 나 자신임을 실감하도록 재미있게 연결시키며 화엄경을 볼 수 있게 이끌어 주시는 학장스님, 주지스님을 비롯한 모든 어른스님들, 지난 상반 스님들과 여법하게 발우를 피며 살 수 있게 해준 고마운 하반 스님들, 4년 동안 즐겁게 공부하며 지내온 도반스님들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차례법문을 마치겠습니다. 무위적정 대중 스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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