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깊은 삶으로의 초대 - 사교과 지안中

가람지기 | 2017.10.02 19:54 | 조회 1610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대중스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깊은 삶으로의 초대> 라는 주제로 여름철 차례법문을 하게 된 사교반 지안입니다. 앞서 읽어드린 글은 한창 감수성 예민하던 학창시절,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한 구절입니다. 이 소설 속에는 아직 미숙한 내 모습과도 같았던 주인공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려져 있습니다. 어딘지 신비스럽고 자유로우며 항상 고요히 내면에 닿아 있는 듯한 데미안의 모습은 저에게도 동경과 갈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지금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그를 마치 선정에 든 수행자의 모습으로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제 마음 속의 나침반은 언제나 무언가 더 심오하고 근원에 닿아있는 삶을 향하여 움직였습니다. 그 오랜 갈망은 마침내 저를 출가의 길로 이끌었고, 더 깊은 삶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문제는 여전히 저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최근 사회적으로 관심을 끄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인 몰입(flow)’에 관한 여러가지 연구들은 매우 반갑고 흥미롭습니다. 심리학 관점에서 몰입이라고 표현하는 여러 가지 설명들은 우리가 지향하는 더 깊고 심오한 삶을 위한 고민들과 매우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 몰입 이론을 널리 대중화시킨 황농문 교수는 몰입에 이르는 방법을 참선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는 쉬지 않고 오로지 풀고자 하는 문제 하나만을 생각하면 3일 째에는 의식 속에 문제와 나만이 존재하는 완전한 몰입 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화두를 끊임없이 생각하다보면 나중에는 의식 속에 화두와 자신만이 존재하는 삼매에 들게 되는 참선의 과정과 유사합니다. 그는 이렇게 72시간만 온전히 몰두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답을 저절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마치 조사스님들께서 말씀하신 화두 타파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실 모든 형태의 수행에서 바르게 집중하는 상태는 진리의 길을 열어나가는 핵심적인 열쇠로 여겨지는 만큼, 우리는 수행자로서 몰입의 중요성을 더욱 크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몰입하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우리는 방금 전까지 이것저것을 클릭하며 신나게 인터넷을 즐겼다가도 마음만 먹으면집중모드로 돌아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운동선수들이 평소 생활 속에서부터 몸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집중력도 일상 속에서의 꾸준한 노력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특히 SNS나 스마트폰 등 산만하고 유혹적인 자극제들에 항상 의존하며 익숙해진 사람들은 그 두뇌의 상태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 뇌가 주어진 과제와 무관한 다른 부위를 계속 자극받아 작동시키다 보면 정작 집중해야할 뇌 부위는 무력해지고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정보와 불필요한 정보를 구분해내지 못하게 되어서, 결국 깊은 집중에 이르지 못하는 뇌로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깊이 있는 심오한 삶을 지향하는 수행자로서, 우리의 몰입을 방해하는 주위의 요소들에 대해서 더 철저히 이해하고 자각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몰입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사실 우리들에게 낯선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2600년 전 부처님께서는 이 최상의 지름길에 대한 가르침을 이미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불교의 가장 기본이 되는 가르침, ‘(), (), () - 삼학(三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먼저 를 잘 지킬 것 , 감각기관을 잘 다스리며 욕구를 현명하게 통제하고, 작은 죄라도 두렵게 여겨 피하고 선한 행동을 하고자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산란함을 떠나 마음을 집중하고 안정시키는 선정을 얻을 수 있으며, 이렇게 얻은 깊고 고요한 선정 안에서 모든 미혹을 끊고 근원의 지혜가 떠올라 마침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사교반이 되어 매일 공부하는 금강경과 원각경, 그리고 대승기신론과 능엄경에서도 부처님의 말씀은 번뇌를 멈추고 고요히 하는 지()와 이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진리인 실상을 바르게 관찰하는 관()을 닦는 가르침으로 일관되게 향하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에 일시적인 만족을 주는 무분별한 욕구들을 적절히 다스리는 의도적인 노력 바로 몰입하는 뇌를 위한 조건이자, ‘선정에 이르는 길입니다. 몰입상태에서 느낄 수 있다는 지극한 행복감은 선정 속에서의 법열(法悅)을 연상시킵니다. 몰입을 통해 난제(難題)를 풀어내는 신비는 정()을 통해 지혜가 환히 열리는 이치와도 같습니다.

 

이렇듯 부처님 법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미 깊고 심오한 삶의 실천을 매일 경험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체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진정으로 깊은 곳에 닿아 있을 때,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깊은 안정감과 편안함, 충만함을 느낍니다. 반면 사소한 일에 집착하고 산만한 자극들에 의식을 빼앗겨버리면 마음은 날뛰는 원숭이처럼 분주하고 시끄러우며 불안하고 피곤함을 느낍니다. 결국 우리는 무엇을하느냐 보다는 어떻게하느냐가 더 핵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식을 충분히 깊은 상태에서 고요히 통합되도록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공양간에서 밥을 짓는 일이든, 밭에서 감자를 캐는 일이든, 모든 순간이 빛나고 경이로운 진리의 체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강원에서의 현실은 자주 바쁘고 때로는 힘들고 지치기도 합니다. 이상과는 다른 현실의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잡다한 일들에 마음을 빼앗겨, 본연의 목적을 잊고 파도치는 물결 위를 휩쓸리며 이리저리 표류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진리 안에 사는 삶, 깊고 심오한 진리 그 자체인 삶, 이런 말들은 여전히 우리들의 가슴을 크게 두드리며 설레게 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찬란히 아름다운 두근거림, 바로 이것임을 잊지 말고 언제 어디서 어떤 일들에 마주하더라도 늘 깊은 삶을 통한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수행자로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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