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반사(反射)와 반성(反省) - 사미니과 승혜

가람지기 | 2017.12.02 09:52 | 조회 1583

안녕하십니까? 치문반 승혜입니다. 치열했던 여름, 물러설 것 같지 않던 더위도 사그라들어, 어느새 서늘한 바람이 부는 ‘생각하기 딱 좋은 계절’ 가을이 되었습니다.

이 좋은 계절, 대중스님들께서는 어떤 사유의 시간을 보내고 계신지요?

 

‘뭘 좀 아는 게 있은 후에, 조금 더 익어진 다음’에 이처럼 귀한 법문의 자리에 섰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는 이번 차례법문에서 ‘반사(反射)와 반성(反省)’을 주제로 수행자로서의 자세를 짚어보려 합니다.

 

대중스님들께서는 거울을 갖고 놀아본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화장대 거울 앞에서 다른 작은 거울로 ‘거울에 비춰진 제 모습’을 비춰본 적이 있습니다. 경험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신기하고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거울 속 거울에, 거울을 든 내 모습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모습이었죠.

 

‘반사’에 대한 또 다른 추억은, 학창시절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상대방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하거나 엄청난 화를 쏟아낼 때 듣고 있던 이가 “반사” 하며 그의 말을 되돌려 줍니다. 단 한 마디로 상황종료.

당시 그 발상이 참 신선하고 기발하다고 여겨 친구들 사이에서 반사 놀이를 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상사의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말과 행동에 속으로 ‘반사’ 하면서 소극적으로 항거하는 저 나름의 방편이 됐습니다. 그 말을 하면 승자가 된 듯한 기분에 의기양양해지고, 괜스레 위안이 되기도 했죠.

 

저는 왜 귀중한 제 생의 첫 법문 주제를 정하려 할 때 이 거울의 이미지가 주는 반사에 주목하게 됐을까요? 그것은 바로 밖으로 향한 거울을 안으로 되돌린 순간 일어난 변화 때문입니다. 외부로의 반사는 영원한 반복일 뿐이며, 성찰 없는 되비침은 소모적이란 것을요.

 

오랫동안 혼자서 생활하고 혼자 일하고 노는데 익숙했던 저는 단체생활에서 오는 불편함과, 또 타인을 배려하는 등의 측면에서 너무나 많이 부족했고, 이해할 수 없는 승가의 규칙과 수직적 인간관계 등에 화가 많이 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이 힘들다기 보다는 단순하고, 반복되는 일상과 한정된 공간, 한정된 인간관계 안에서 점차 지쳐갔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순간 ‘반사’를 되풀이 했더랬습니다.

그러다 알게 됐죠. 반복된 습의와 경책은 ‘하심(下心)’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는 것을, ‘반복’은 수행의 훌륭한 방편이란 것을요.

 

맛지마 니까야 마하순냐따경에서 부처님께서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반복하여 조언한다. 나는 옹기장이가 아직 굽지 않은 젖은 점토를 다루듯이 그대들을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반복해서 타이르고 또 반복해서 타이를 것이다. 반복하여 잘못을 제거하고 또 반복하여 잘못을 제거할 것이다. 착실한 사람은 이런 수련을 견디어 낼 것이다.

 

이제 반사가 아닌 반성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밖으로 ‘되돌리기’보다는 내면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성찰을 하려 합니다. ‘무엇을 반성할까, 어떻게 반성할까’ 막연하지 않습니다. 앙굿따라 니까야에서 부처님께서는 ‘자신을 성찰’하기 위한 조목을 자세히 일러주십니다.

 

“만일 다른 사람의 마음의 작용을 아는데 능숙하지 못하다면, 적어도 ‘나는 내 마음의 작용을 아는 데는 능숙할 것이다.’라고 단련하여야 한다. 어떻게 자기 자신의 마음의 작용을 아는데 능숙하게 되는가? 그것은 마치 장식을 좋아하는 여자나 남자 또는 젊은이들이 깨끗한 거울이나 깨끗한 물에 그들의 얼굴을 비추어보고 흠이나 얼룩을 보면 그것을 지우기 위하여 애쓰게 된다. 만일 흠이나 얼룩이 없으면 기쁘고 만족하여 ‘좋구나, 나는 깨끗하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를 성찰하는 것은 훌륭한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매우 도움이 된다.

 

나는 일반적으로 탐욕스러운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

나는 일반적으로 마음속에 악의를 품고 있는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

나는 일반적으로 게으름과 무기력에 빠져 있는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

나는 일반적으로 마음이 들떠있는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

나는 일반적으로 화를 잘 내는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

나는 일반적으로 나쁜 생각에 쉽게 물드는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

나는 일반적으로 게으른가 아니면 활력이 넘치는가?

나는 일반적으로 주의집중에 머무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만일 이와 같은 성찰에서 자신이 그렇지 않은 점을 발견했다면,

마치 ‘머리에 불이 붙은 사람’이 그 불을 끄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고

마음챙김으로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열성과 힘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이와 마찬가지로 그대들도 이롭지 못하고 악한 성향을 제거하기 위하여 마음챙김에 머물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최선의 열성과 힘과 노력을 기울여 분발하여야 한다.

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부처님의 당부는 우리가 매일같이 외우는 입선 게송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당근정진호대 여구두연하고 단념무상하야 신물방일이로다.

 

입선이 곧 일상의 마음챙김임을 알아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