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살림살이공개 - 사미니과 수진

가람지기 | 2017.12.16 18:51 | 조회 1839

입학 후 습의로 정신없었던 봄철을 지나 더위와 가뭄으로 힘들었지만 방학 때 집에 갈수 있어 좋았던 여름이 지나고, 길고긴 조금씩 익숙해진 가을도 지나서 어느덧 치문의 마지막 겨울철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철만 지나면 괜찮다고, 긴 가을철만 되면 진짜 괜찮다고.... 이번 겨울철은 정말 괜찮다고 합니다. 그리고 치문만 지나면 또 괜찮다고 합니다.

정말 괜찮은 치문을 잘 마무리 하고 사집을 준비해야 하는 치문반 수진입니다.

 

차례법문의 주제는 팔일성해탈문입니다. 해탈에 이르는 성스런 여덟 가지 수행의 방편 중에 제가 알고 경험한 것이 예불과, 염불, 지계와 간경. 네 가지입니다. 좌선과 참선과 설법과 득오는 경험하지 못했기에 말씀드릴수 없으니 주제는 제가 출가하여 지금까지 수행한 제 살림살이 전부를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치문반 수진의 살림살이 공개입니다

 

팔일성해탈문

 

예불자는 공불지덕야요. 예불자는 부처님의 덕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예불이란 부처님께 공경의 예를 올리는 것입니다 출가해서 처음 한 것은 마을에서 입고 온 옷을 벗고 절집의 낡은 옷을 입고 예불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뜻도 모르는 한문을 따라하는 것도 힘들지만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캄캄한 경내를 지나 법당에 가서 절을 하는 그 자체가 고통이었습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나 머리를 깎고 똑같은 일상을 하고 있을 때 은사스님께서 중노릇 하겠나?” 뭐가 제일 힘드냐?“ 고 물어보셨습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새벽 3시에 일어나는 게 힘듭니다.” 라고 대답하니 은사스님께서 나도 그건 아직도 힘들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새벽에 일어나서 예불 가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자신의 변화도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절을 할 때 손을 모으고 발끝을 모으고 귀찮은 마음보다는 지금 이곳에 있는 순간에 감사합니다. 믿고 기다려주시는 부처님께 감사합니다. 예불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옆에 도반스님이 있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머리를 깎아주신 것만으로 감사한 또 한분의 부처님 나의 은사스님을 생각하는 것으로 눈물이 날 만큼 감사합니다.

 

염불자는 감불지은야요.

예불을 하는데 염불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겠지요. 행자 때부터 강을 바치고 다라니를 몇 번을 하는데 강을 바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외우는 것은 힘들지 않았지만 염불을 하는 게 힘들었습니다. 어려워하는 저에게 우리 절의 원주스님께서 행자님은 이것이 업인가 봅니다. 이 단계를 지나면 큰 힘을 얻을 거예요. 그리고 행자님은 스님 될 사람이예요. 스님될 사람은 못하는게 있으면 안돼요..” 그 때는 이 말을 몰랐습니다. 지금은 알 듯 합니다. 연습하고 또 하는 것이 나의 수행이고 이곳 운문사에서 생활해야하는 치문반의 위치입니다. 사물의 운판을 잘못 쳐서 금당으로 세 번이나 연속으로 참회를 갔지만 다시 기회를 주는 이곳! 내가 새로 태어나고 또 태어나고,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곳입니다.

지계자는 행불지행야요. 부처님의 계행을 지키는 것입니다.

계를 지니는 자는 부처님의 행을 따르는 것입니다.

착하게 살고 싶어서 출가한 내 첫 발심은 부처님 법대로 살고 싶다는 원을 세우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겠다는 소극적인 마음을 넘어서서 우리 같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변했습니다. 행동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내가 계를 지킴으로서 절집과 강원의 규칙을 새롭게 배우고 익히면서 라는 생각보다는 새로 태어난 아이의 마음이 되어 절로 하심하며, 나의 몸을 조복하게 되었습니다.

 

간경자는 명불지리야요. 간경자는 부처님의 이치를 밝히는 것입니다.

서산대사께서는 간경하되 자기의 본래면목을 향하여 공부를 지어가지 않으면 비록 만권의 경전을 보더라도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서산대사께서 공부는 지어가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은 하나하나가 모여서 전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생각 합니다.

 

좌선자는 행불지경야요, 참선자는 합불지심야요. 좌선자는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가는 것이요, 참선자는 부처님의 마음에 합하려는 것입니다.

예불과 염불과 지계와 간경을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면, 이제 선정에 들어 자신이 본래부터 갖추고 있었던 부처의 성품 즉 청정한 자기의 본래면목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해탈의 길로 대자유의 경지로 가기 위해 깨달았다면 부처님께서 하셨듯이 이제 법을 설해야 것입니다.

 

득오자는 증불지도야요, 설법자는 만불지원야니, 득오하는 것은 부처님의 도를 증득하는 것이요, 설법하는 것은 부처님의 원을 만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초전법륜이 없었다면 우리가 있는 이곳 승가는 없었을 것이며, 아직도 왜 태어났으며, 어떻게 살 것인가. 왜 죽는가를 고민하거나 진리가 무엇인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우리는 수행의 방법을 알았고 부처님의 종지를 잇는 것이 이 일이 어찌 작은 일이라 하겠습니까? 이제 부처님의 제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답게 부처님의 법대로 위의를 갖추고자 운문사에 제대로 배워서 제대로 된 스님의 모습으로 바꿔 가겠습니다.

저랑 같이 살림살이 마련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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