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화엄반-감응스님

최고관리자 | 2015.01.19 12:43 | 조회 2839

아픔이여 안녕!?

감응/ 화엄반

 

차가운 밤공기가 별빛을 더욱 빛나게 하고, 캄캄한 밤 초승달의 향기가 온몸으로 다가와 어느 계절보다 내면을 들여다보기 좋은 겨울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대교반 감응입니다.

작년 한해 유난히 젊은 친구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고가 많았습니다. 경주 리조트 강당 붕괴 사고, 누구나 눈물 흘렸을 세월호 침몰, 군대 총기 난사, 구타 사고 등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많았습니다.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 전에 생존여부가 중요했던 일들입니다. 이런 사고 이후 안녕한지, 잘 다녀왔는지 인사가 소중하게 느껴졌던 한해였습니다. 저 또한 개인적으로 주변에 아픈분들이 많습니다. 밤새 무탈하셨는지, 하루하루가 안녕한지 묻는 것이 일과 중에 하나입니다. 그분들에게 안녕을 바라며 차례법문을 시작하겠습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정말로 안녕하십니까?

걱정과 아무 탈 없이 편안한 것을 안녕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안녕이라는 말을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매일매일 사용하고 있습니다. 거의 무의식중에 사용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미우나 고우나 주변사람들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우린 어디 한구석이라도 안녕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먼저 몸이 관심 가져달라고 신호를 보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곳이 없습니다. 몸은 쉬어주고 병원 가서 치료하면 회복되고, 또 몸은 원래 부정하다 배웠다고 하지만 마음은 어떠한가요? 내가 이렇게 아프고 속상한데 아프다고 말할 데가 없고, 나에게 덮어씌운 무게가 견딜 수 없을 만큼인데 얼마나 힘드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마음 아픈 것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하나 천천히 나를 되돌아보면 내가 보고 싶어 해서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맛있는 것만 먹었는데 행복하지 않습니다. 찝찝하고 근심만 더욱 늘어납니다. 도대체 나는 누굴 위해 살았는지 의심이 되면서 진짜 나를 찾아가게 됩니다. 나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아물지 못한 상처를 발견합니다. 이 아픔은 진통제 같은 위로가 필요 한 게 아닙니다. 안녕하게 만들지 못하는 이 아픔은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는 왜 아파야 하는지 본질적인 문제에 다가가야 합니다.

아마 아픔이 아니였으면 이 길을 걸을 수 도 없었겠지만, 다행스럽게 우리는 출가라는 것으로 아픔을 해결하는 문을 열었습니다. 운문사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이렇게 사는게 아닌 거 같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면 우리가 온몸으로 배워가고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 개개인이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머리로 마음으로 배웁니다. 우리가 잠시 잊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경전 속에 아상을 없애고 하심’, ‘인욕하라고 배웁니다. 하심은 가려져 있던 진짜 나를 바로 보라는 것이였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또 생활 속에서는 나를 보는 많은 눈과 내가 보는 상대방의 모습을 통해, 우주 속에서 너무나 작은 나와 우주를 꽉 채울 만큼의 수많은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나쁜 기억, 좋은 기억 또한 정리하고 잘못은 참회하고 새로이 발심하는 것이 아픔을 치유시킵니다. 내가 만든 아픔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며,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영혼을 성숙시켜주는 계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부처님이라는 인물을 만나면서 현재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이젠 아픔과 충분히 안녕하고 인사할 수 있겠지요.

 

어느덧 1월 중순입니다. 작년 봄과 여름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는데 성급한 가을이 지나고 새해를 맞아 새로이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요즘 시간 지나가는 것도 LTE급입니다. 치문부터 화엄까지 4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운문사에서의 생활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디서도 쉽게 겪을 수 없는 일들을 통해 많은걸 배우고 느꼈습니다. 이 높고 험한 많은 산을 넘기도 벅찬데 굴절된 시선까지 견뎌야 했던 27명의 도반스님들에게 우리 정말 잘 참아왔다고, 정말 고맙고, 정말 그리울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 시인의 책 구절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그들과 함께 부대끼며

그들처럼 살면서도 그들과 다른 무늬의

노을을 그려낼 수 있는 것은

나를 나 되게 하는 무엇이

내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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