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少慾知足 - 사교반 무이

최고관리자 | 2016.11.14 14:45 | 조회 1884

少慾知足

사교반 무이

붉게 익고 있는 감나무가 그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고 있는 운문사 도량에서 풍성한 가을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결실의 계절, 가을에 대중스님 여러분들의 마음도 풍성하신지요? 안녕하십니까? 소욕지족으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사교반 무이입니다.

스물한 살, 복잡한 머리를 식힐 겸 몇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운문사라는 땅을 처음 밟았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 때 서점에서 우연히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을 한 권 샀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고 돌아오는 버스 내내 그렇게 살리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진정한 무소유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말입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난 화분을 두 개 얻어 정성껏 기르던 중 그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것이 결국 집착임을 깨닫고 친구에서 난분을 줘버림으로써 마음이 홀가분해졌다는 것입니다. 대중스님들도 모두 한 번쯤은 이러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무소유 이야기는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물건을 갖지만 결국 그 물건에 얽매이게 되며 무엇이든 가지려 할 게 아니라 버림으로써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라는 말로 볼 수 있습니다.

출가자의 무소유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버리는 행위입니다. ‘三衣一鉢’, 그 뜻은 세 벌의 옷과 하나의 밥그릇으로 분소의와 함께 무소유의 삶을 형용하는 말로 널리 쓰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삼의일발(三衣一鉢) 이외에는 더 이상 소유하지 말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아 부처님의 제자들은 최소한의 물건을 소유하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은 모든 것은 다 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물건은 최소한으로 줄이되 부득이하게 많이 가졌을 때 그것을 집착하지 말고 나누라는 것입니다. 무소유는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것은 주어진 빈궁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선택한 청빈입니다. 이 청빈은 자신의 수입 범위 안에서 살면서 작고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소욕지족의 삶의 태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늘 소욕지족(小慾之足)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욕심을 줄이고 적은데서 만족하고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이 소유하는 것은 모두 죄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아함경에는 소욕지족에 관련해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이익을 구함이 많기 때문에 번뇌도 많지만 욕심이 적은 사람은 구함이 적기 때문에 번뇌가 적다. 욕심이 적은 사람은 남의 마음을 사기 위해 아첨하지 않으며 마음이 편안해서 아무런 두려움이 없고 하는 일에 여유가 있고 부족함이 없다. 이를 가리켜 少欲 이라 한다. 모든 고뇌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마땅히 만족할 줄 알라. 넉넉함을 알면 부유하고 즐거우며 평화롭다. 그런 사람은 비록 맨땅에 누워있을지라도 편안하고 즐겁지만 그렇지 못하면 천상에 있을지라도 흡족하지 않을 것이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한 듯하여도 사실은 부유하다. 이를 가리켜 知足이라 한다.’

유교경에서도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여덟 가지 덕목을 말씀하셨는데 그 중에 하나가 知足(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족하기 위해서는 少欲(스스로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출가한 지금. 치문, 사집을 거쳐 이제 사교. 저는 얼마나 무소유적 즉 소욕지족적인 삶을 살고 있는 지 돌이켜봅니다. 아직 세속적인 욕심이 남아 있어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님에도 도반 스님들이 필요한지 물어보면 갖가지로 필요한 이유를 끌어다 내 소유로 만들고 맙니다. 그리고 내 서랍 한 켠에 모셔두고 쓰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매년 봄철 관물장 검사를 할 때마다 내가 욕심내어 얻은 것들은 필요한 것들이 아니라 반통에 들어가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또한 받은 공양물을 어떻게 나누어 써야할 지 몰라 관물장에 켜켜히 쌓아 두다 보니 철마다 짐은 몇 박스씩 늘어갑니다. 무소유적인 삶을 살라고 하는데 그러한 삶은 어떻게 가능한 지 푸념하면서 관물장을 정리하고 또 정리합니다.

대중스님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한 번 자신의 물건들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물건들이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인지? 우리의 수행에 도움을 주는 것인지? 내 탐욕에 의해 소유하게 된 것이 아닌지? 아니면 세상 흐름에 맞춰 가져진 것인지?를 돌이켜 봐야 합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생활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많아지는 듯 하나 정작 그러한 것들은 없어도 되는 물건일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물건을 소유하는데 있어 깨어있지 않으면 부처님의 소욕지족의 청빈한 삶을 구현해내기 어렵지 않을까요? 풍족한 물질문명시대에 소욕지족의 삶은 매우 힘들지만 더욱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나의 탐욕을 버려나가는 하나의 수행으로서 물건을 소유하고 소욕지족하는 생활이 되기를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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