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사집을 보내며 - 사집반 자민

최고관리자 | 2016.01.26 15:29 | 조회 2317

사집을 보내며.

사집반 자민

 

대중스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두달이면 화엄반 스님은 운문사를 떠나고, 사교반 스님과 사집반 스님은 한 반을 올라가게 되고, 또 치문반 스님은 처음으로 아랫 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대중스님들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내년을 맞이 하고자 하십니까?

 

저는 사집 첫철을 보내고서야 겨우 치문을 졸업하고, 아랫밭과 윗밭을 오가며 고추따기와 자비송으로 여름철과 가을철을 보냈습니다. 그 시간동안 저에게 자라난 것은, 바른 신심과 대자비심이 아니라, 겨우겨우 하루를 보내는 마음과 주변 모두를 사량계교하는 마음으로, 지금 닥쳐온 것과 주어진 것을 밀쳐내고 여기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이었습니다. 이렇게 삐뚤어진 마음이지만, 아직 이자리에 있는 이유는, 다행히도, 문제는 밖이 아니라 저 자신에게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서장의 증시랑 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보지 못했습니까? 선재동자가 문수보살로부터 발심하여 점차 남쪽으로 가서, 백십성을 지나 53선지식을 찾아뵙고, 마지막에 미륵이 한번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이제까지 여러 선지식에게서 얻은 법문을 한꺼번에 잊어버리고서, 다시 미륵의 가르침에 따라 문수보살을 만나 뵙고자 하였습니다. 그러자 문수가 멀리서 오른손을 펴서 110유순을 지나 선재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만약 믿음의 뿌리가 깊지 않았더라면 마음이 나약하고 근심하고 후회하며, 공덕을 닦는 행이 완전하지 못하며, 정성을 다하는 부지런한 마음을 잃어버리며, 하나의 선근에 안주할 마음을 내고, 조그마한 공덕으로 곧 흡족히 여기며, 능히 좋은 방편의 행원(行願)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며, 선지식이 이끌어주시고 보호해주시는 바도 받지 못했을 것이며 이러한 법의 성품, 이러한 이치, 이러한 법문, 이러한 수행, 이러한 경계를 알지 못했을 것이며, 이러한 주변지(周徧知)와 종종지(種種知)와 진원지(盡源底)와 분명하게 이해함과 취입(趣入)과 해탈(解說)과 분별함과 증득하여 앎과 이러한 구경의 果位(과위)를 얻음이 모두 불가능했을 것이니라.”

 

증시랑이 공부한 것 없이 노년에 이른 것을 걱정하며, 어떻게 일상에서 공부해야 하는지를 여쭈자 대혜스님께서 화엄경 입법계품을 인용하시면서, 이미 지나버린 것은 놓아버리고 다시금 부처님전에 무상정등보리를 구하려는 큰 서원을 세우고 오래오래 하되 깊이 믿는 마음을 내라고 하십니다.

 

믿는 마음. 선재동자에게 깊이 믿는 마음이 없었다면, 문수보살에서 부터 그 많은 선지식을 만나면서 배운 것들을 한순간에 잊어버리게 되었을 때, 하나도 화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하는 마음을 낼 수 있었을까요. 여러분께서는 다시 치문을 살라면 사시겠습니까?

 

익숙해 진다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서툴어서 했던 실수를 하지 않으니 일이 순조롭지만, 이제 알아버렸기 때문에 거기에는 번뇌 때가 끼어 꾀가 나고 불만의 한 소리가 나오게 되어 오히려 장애가 됩니다. 저에게 사집의 시간은 낯설었던 환경과 사람들이 익숙해지면서 지루함을 비롯한 많은 번뇌가 일어난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강원 4년 중 어쩌면 가장 자유롭고 즐거울 수도 있었을 시간. 선가귀감과 서장과 도서를 배우고, 고요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이켜 보았더라면 한 도를 이루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거룩한 비구 천이백오십 명과 함께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공양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걸식하고자 사위대성에 들어가셨습니다. 성 안에서 차례로 걸식을 하신 후 본래의 처소로 돌아와 공양을 드신 뒤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습니다. ’

 

금강경 법회인유품입니다. 금강경에서는 부처님의 한결같은 일상을 그려내는 것으로 경을 열고 있습니다. 깨달은 그 분께서는 깨달았기 때문에 높은 자리에 편안히 앉아서 가져다 주는 공양을 받아 드시지 않으셨고 전과같이 몸소 탁발을 다니셨으며, 깨달은 그 분께서는 깨달았기 때문에 남들처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전과 같이 자리를 펴고 앉으셨습니다. 이어지는 깨달음의 이치를 설명하기에 앞서, 그분께서는 깨달음이 지금을 떠나 있지 않고, 이곳을 떠나 있지도 않으며, 함께한 이를 떠나 있지 않음을 몸소 보여주고 계십니다.

 

좋았다 싫었다 변덕스런 마음에 매번 이럴까 저럴까 끄달려서, 이 마음 밖에 다른 것을 구하려 밖으로 튀어봐도 여전히 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실은 재미도 없고 맛도 없는 이 일상에 깨어있는 것 그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년이면 경반이 됩니다. 이 겨울 흩어진 마음을 쓸어 모아 지금 여기에 충실 해야겠습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자신의 서원을 점검하며 재발심하는 겨울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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