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믿음_법광스님

최고관리자 | 2012.11.21 14:50 | 조회 3179


믿음

법광/사미니과  

다들 늦었다는 이 나이에 법을 만나 복전의 도량인 이 곳 강원에 와서 공부를 할 수 있게 해 주신 부처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치문반 법광입니다. 저는 오늘 믿음이라는 주제로 어른 스님들과 대중스님들께 설법하고자 합니다.

중국 명나라 때 강백달이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15세에 문둥병에 걸렸고 병이 차츰 심하여져서 진물이 흐르고 악취를 풍기자 부모 형제까지 기피했습니다. 가족들은 논의 끝에 동네에서 떨어진 깊은 산중에 움막을 지어 강백달을 버렸습니다. 모두가 싫어하는 문둥병에다 가족까지 자기를 버렸으니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16세의 강백달이 죽기만을 기다리며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던 어느 날 한 스님이 지나가다가 혀를 차며 말했습니다.

“한참 혈기 왕성한 나이인데 무슨 업으로 모진 병을 얻어 고생을 하는고? 그래 너는 살고 싶으냐?”
“네, 살고 싶습니다.”
“살고 싶으면 병이 나아야 하는데...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병이 낫고 다시 살 수 있을 텐데.”
“스님,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꼭 내가 시키는 대로 할 수 있겠느냐?”
“병이 나아 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스님은 강백달에게 금강경 사구게를 적어 주었습니다.

‘무릇 있는바 상은 다 헛되고 망령된 것이다. 만약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보면 곧 바로 부처님을 보게 되느니라.’
“이 구절을 잊지 말고 부지런히 외우면 틀림없이 병이 나으리라.”
“이것만 외우면 됩니까? 이렇게 쉽습니까?”
“그래. 하지만 정성껏 마음을 모아야 하느니라.”

강백달은 사구게를 병을 낫게 해 주는 주문으로 생각하고 부지런히 외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휙 하는 소리가 나더니 커다란 호랑이가 앞에 마주 앉는 것이었습니다. 눈에서는 파란 불을 내 뿜으며...아이쿠 이제는 죽었구나, 도망칠 수도 피할 수도 없게 된 강백달은 눈을 꼭 감고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만 죽어라고 외웠습니다. 그리고 호랑이가 다가와 몸을 혓바닥으로 핥는 것을 느끼는 순간 삼매에 들었습니다. 얼마 뒤 눈을 떴을 때 호랑이는 간 데 없었고 문둥병은 완전히 나아 있었습니다. 너무나 좋아 집으로 달려가자 부모님과 형제들은 기겁을 했습니다. 저것이 가족을 원망하고 저주하다가 죽어 귀신이 되어 원한을 갚으러 왔구나, 강백달이 자초지종을 이야기 해주자 가족이 모두 참회를 하였고 이 사실이 동네에 전해지자 온 동네 사람들이 금강경 사구게를 위워 재앙을 면하였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의 내용을 완전히 요달해야만 무량복덕이 생긴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믿는 마음을 내어 거역하지 않고 확실히 믿어 비방을 하지 않고 비평만 하지 않아도 무량공덕을 얻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수보리야,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아침에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를 하고 낮에 다시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를 하고 저녁에 또한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믿는 마음으로 거역하지 아니 하였다면 그 복덕이 저 몸을 보시한 복덕보다 수승하나니라.’

또한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친견하면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110고을을 힘들게, 힘들게 찾아갔고 그 선지식들이 일러 주시는 가르침을 체득하기 위해 고행을 쌓고 또 쌓았으나 지칠 줄을 몰랐습니다. 한결같은 구도의 정신으로 일관한 선재동자는 마지막으로 문수보살의 수기를 받고 보현보살과 함께 부처님의 부사의한 경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감사한 시간 속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칠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광명진언 오천 번, 지장경 한 독, 그리고 삼일동안 구천배를 칠 개월 정도를 했으며 또 삼천배는 수시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하기 싫기도 하고 꾀가 나기도 했지만 그런 마음이 올 때마다 꼭 해야 하는 숙제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발음도 잘 안 되는 광명진언이 점차 외워지고 지장경의 그 수없는 지옥들이 업에 의한 과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업장을 녹이는데 좋다고 해서 멋모르고 하다보니 수없이 많은 가피를 받게 되고 부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생명의 연장도 불가능이 아님을 속가의 모친으로 인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5년 전에 저승문이 열렸는데 생존하고 있는 것은 보살님의 기도 덕분이라고 하는 말씀을 듣고 현실에 부딪혀가며 조금씩 깨쳐 가면서 믿음으로 한발짝 한발짝 다가설 수 있었던 소중하고 고마운 시간들! 직장 다니며 기도를 하도 보니 어떤 날은 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졸기도 하고, 직장 동료들이 다크써클이 발목까지 왔다고 놀리기도 했지만 그 시간이 모여 이렇게 공부할 수 있는 인연이 지어진 것 같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강백달은 금강경 전체를 독송한 것도 아니며 사구게 하나만을 확고히 믿고 외웠습니다. 이처럼 ‘나’라는 상을 여읜 정성어린 행으로 의심 없이 믿는 마음을 바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덕을 얻고자 시작을 했든 약간의 믿음으로 시작했든 그것이 점차로 믿음을 향해 발심하고 또 발심하는 주춧돌이 된다면 장차 향하고자 하는 원대한 서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도량에서 수행할 수 있게 해 주신 불보살님께 감사드리며 어른스님들과 대중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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