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제자리_정현스님

최고관리자 | 2013.08.07 14:59 | 조회 3517



제자리

정 현 / 사미니과   

구름을 뚫고 나온 뜨거운 태양과 학인스님들의 구도를 향한 열정이 함께 타오르고 있는 여름철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치문반 정현입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여러분은 출가하고 나서 가장 크게 바뀌신 것이 무엇입니까? 누구나 보면 다 알 수 있는 외모는 빼고 말입니다. 다들 각가 하나씩은 바뀌신 것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생활습관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무신 정리, 옷매무새 정리, 가방정리, 물건정리, 짐정리, 정리, 정리, 정리...... 여러분들도 늘 부딪히는 상황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정리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정리란 있어야 할 곳에 제대로 자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 주위 사람들을 뇌롭게 하고 생각지 못한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많은 대중이 모여 사는 곳에는 더없이 필요한 일이지요. 어른 스님들께서 항상 말씀하시듯 여러 사람들이 모인 대중에 살아도 한 사람이 사는 것처럼 살아야 혼란이 없을 것입니다.

저는 여름철 반장소임을 살면서 정리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지대방 정리는 반장, 부반장의 일입니다. 반 스님들 하나씩만 어질러 놓아도...... 굳이 더이상 말씀 안 드려도 다들 잘 아실 것입니다. 하루는 지대방을 정리하다 대중에서 소임 사는 것도 정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물건이 각자의 자리에 있어야 하듯 자기가 맡은 소임 자리에 충실해야 모두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마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럼 정리를 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째, 잘 버려야 합니다. 필요 없는 것, 잘 안 쓰는 것은 미련 없이 놓아서 더 쓸모 있는 곳으로 보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겠죠. 또한 필요하더라도 너무 많아서 관리할 수 없다면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버린다는 것, 다르게 말하면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요? 참고로 전 돈을 잘 버립니다. 땅에 버리는 것이 아니라 쇼핑을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 중에는 “복에 겨운 소리를 한다.” 또는 “복을 아낄 줄 모른다.”고 할지 모르지만 저는 필요한 것에 제대로 투자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넉넉한 것을 다른 이에게 선물을 해서 잘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저의 기쁨은 두 배가 됩니다. 부처님은 부자가 되는 방법을 항상 말씀하십니다. 인색하지 말고 보시하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친절함을 베풀면 친절함이 돌아오고, 인색함을 베풀면 인색함으로 돌아옵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둘째, 게으르지 않아야 합니다. 아무리 잘 정리를 했더라도 게으르면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무엇하나 나태해서 되는 것은 없습니다. 정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집착 없이 방일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살림살이인 수행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으름은 쓰레기니라, 계속되는 게으름은 쓰레기니라......” 숫타니파타의 한 구절입니다. 종교를 떠나 게으른 사람은 어느 곳에 가던 환영받지 못합니다. 만약 우리가 성공의 길을 걷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게으른 마음을 내는 일일 것입니다.

만약 나이가 많아 일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걱정 듣는 순간 자존심이 상해 힘들다고 제가 조금이라도 나태하게 생각한다면, 저 하나 뿐 아니라 치문반, 나아가 전 대중을 힘들게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숨을 참아봐야 공기의 소중함을 알 듯,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소임이라도 그 자리가 비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도 각각 이곳에 없어서는 안 되는 귀한 자리임을 생각하고 자부심을 갖고 소임에 임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 없습니다. 작은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도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 다만,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면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이 되는 것이지요. 아무리 쓰레기라도 재활용 공장에 가면 소중한 자원이고, 누구도 먹지 않는 음식찌꺼기도 밭에 가면 훌륭한 퇴비가 될 수 있습니다. 예전에 회주스님께서 자주 하셨다는 말씀인 “物物各得基所물물각득기소-아무리 사소한 물건이라도 제자리에 있으면 그 역할을 다해낼 수 있다.”를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봅니다.

함께 어울려 사는 대중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만 있다면, 그것 또한 제자리 잘 찾는 것입니다. 아직은 도량이 낯설고 모든 일에 서툴러 ‘강원을 온 것이 잘못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잠시 심호흡을 하고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감자를 깎을 때, 큰 통 속에 한꺼번에 넣고 흔들면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양의 감자껍질을 벗길 수 있듯이 서로서로가 수행의 동반자임을 잘 인식하고 스스로를 믿으며 이겨낸다면 뽀얀 살결의 감자와 같이 우리도 맑은 본성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여러분의 수행이 날로 향상되기를 바라며 차례법문을 마치겠습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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