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念, 지금 이 마음_고경스님

최고관리자 | 2014.03.10 10:42 | 조회 3727


念, 지금 이 마음

 

고 경 / 치문반

"여기 이 소리는 소리고 저 언덕 너머 저 소리는 소리가 아닌가!"

성철 큰스님께서 남기신 법문 한 자락에, 놓지 못하고 있던 속세의 인연을 끊고 '잘먹고 잘놀다 갑니다.'하고 삭발염의한 치문반 고경입니다. 누군가의 세월은 더디게 가고 누군가의 세월은 참으로 쏜살같이 지나갈 것입니다. 念생각염자를 풀어 今지금+心마음 지금 이 마음자리로, 두렵고 가슴 벅찬 차례법문을 열어봅니다.

대중스님 안녕하십니까? 지금 이 마음은 무엇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갈까요? 이 마음을 잠시 돌이켜봅니다. 출가하여 처음 접한 [초발심자경문]

"주인공아 여치인도호미 당여맹구우목이어늘 일생이 기하관대 불수해태요, 인생난득이요 불법난봉이라~ 광겁부모 무량무변하니 유시관지컨대 육도중생이 무비시여의 다생부모라 여시등류함몰 악취하야 일야에 수대고뇌하나니 약불증제면 하시출리리요 오호애재라 통전심부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먼 길을 다녀온 나그네처럼, 뭔지 모를 서러운 안도감으로 많이도 울었습니다. 출가하는 저를 쳐다보는 것조차도 미안하다며 말없이 먼 산만 쳐다보시던 저의 노모님 생각에, 더욱 더 가슴깊이 새기며 조금이나마 효를 대신하는 길이라 여기고 열심히 그 마음자리를 다듬었습니다.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요?

살얼음을 걷는 것처럼, 청풍료의 대중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그때의 마음을 돌이켜보면 입가에 미소가 머뭅니다. 그러나 즐거움은 잠깐 온 도량의 푸르름은 우리의 운력이요, 걸러지지 않는 이야기 소리는 우리의 걱정자리였습니다. 작은 일 하나에도 지대방은 서른 가지의 생각과 서른 가지의 소리로 가득 찹니다. 본 모양 본마음은 일그러지고 새파랗게 날이 솟아 다가설 수도 물러날 수도 없이 서로 상처를 남깁니다. 친소가 생기니 말이 많아지고, 말이 많으니 진실은 왜곡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니, 사소한 일에도 분별심이 일어 마음자리는 흙탕물이 되어버립니다. 이 작은 마음하나 고쳐먹기가 태산을 오르는 것보다 힘들고 서럽습니다.

어찌 억울한 일이 이것뿐이겠습니까

어찌 몇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 모습의 자신과 싸우며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 하나 남기며, 그렇게 또 다시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주어진 소임에 땀방울이 맺히고, 하나가 모두이고 모두가 하나이듯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닮아갑니다. 나의 손이 되어주고, 나의 눈이 되어 챙겨주고 감싸주며 보지 못하는 나의 머터로운 부분을 다듬어줍니다. 이렇게 물들어가는 모습이 각기 다르지만 모두 같은 모양입니다. 이 모양마저도 녹이고 녹여서 누군가가 가슴 아프게 견디어냈을 이 자리, 일보일배하는 마음 이 마음 이것이 절차탁마하는 마음이 아닐까요?

에오라지처럼 물들어진 이 마음에 눈 밝은 선지식 무주 영안선사의 한구절로 획을 그으며 차례법문을 마칠까 합니다.

"여능 단 비로계하면 절 관음비하며 고 문수목하며 절 보현경하며 쇄 유마좌하며 분 가섭의하야 여시수자인댄 황금으로 위와하고 백은으로 위벽이라도 여상감임이온 하황일당이리요"

성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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