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역경계에 대처하는 자세_진서스님

가람지기 | 2012.03.30 14:04 | 조회 3819



역경계에 대처하는 자세


사교반 진서

매화향을 가슴으로 느낀 본 적이 있으십니까? 매서운 겨울 칼바람을 견뎌야 하는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서야 맞은 봄, 봄의 선두에서 그윽한 향을 내뿜는 매화, 차마 미물이라 가벼이 여길 수 없습니다. 세상 천지만물이 다 스승 아님이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운문사에서 세 번째 봄을 맞은 사교반 진서입니다.
오늘 저의 법문 주제는 역경계에 대처하는 자세에 대한 것입니다.

“스님, 왜 출가를 하셨어요?”
출가 후 지금까지도 가끔 듣는 질문이지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의 생각은 잠시 과거로 돌아가곤 합니다.
자식 중 한 명을 출가시키고자 하셨던 아버지의 큰 발원과 어릴 적부터 한옥에서 살고 싶었던 저의 작은 발원이 제 출가의 작은 씨앗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아버지께서는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저와 동생에게 불법을 들려주셨고, 특히 여동생에게 출가를 강력히 권하셔서 저와 여동생은 한동안 그런 아버지를 피해다니기도 했습니다.
저도 남들처럼 조금 더 좋은 직장과 더 좋은 집, 좋은 차 등등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 앞만 보고 달렸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지나온 길을 뒤돌아볼 시간이 주어졌고 헛깨비만 좇아왔다는 생각에 갑자기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얼마간 그렇게 헤매이다 아버지를 찾게 되었고 그렇게 저는 출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출가 결심 후에 제게 여러 가지 장애가 끊이질 않고 일어났습니다.
행자시절, 저의 레테르는 ‘무릎 아픈 행자’였습니다. 결제철, 선방스님이 계시는 대중에서의 행자생활은 너무도 신심 나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아프던 무릎이 단 10분도 앉아있기 힘들만큼 아프게 되었습니다. 결국 병원에서 “스님, 집에 가셔야겠습니다. 무릎이 엉망입니다.”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행자생활을 견뎌냈고, 행자교육 기간 내도록 수백 배의 절을 해야 하는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무사히 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새스님으로 본사에서 생활하면서 무릎이 좋아지고 거의 1년 반이 넘도록 별 탈없이 잘 생활을 했었습니다. 저의 본사는 밭농사를 꽤 짓습니다. 봄이면 거름을 풀어 고랑을 만들고, 모종을 심고, 여름이면 풀과 씨름하며 가을엔 수확까지 나름 바쁘고 힘들지만 처음 경험한 농사일이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또다시 제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운문사에 오기 몇 달 전에 허리를 다치게 된 것입니다. 수확한 들깨 한 포대를 들다가 허리를 다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전엔 허리가 아팠던 경험이 없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병원을 한두 번 다녀와서는 통증이 있으면 진통제를 먹고 파스를 붙이며 계속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날 무렵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두 달 동안 여러가지 치료를 받았고 다행히 나아져서 운문사에 방부를 들이게 되었습니다.

운문사에 방부들인 후 한 달 정도는 괜찮았습니다. 사실 걱정스러웠지만 도반과 함께 할 수 있는 운문사에서의 생활이 너무 좋았고 대중이 모여 함께 예불하는 것만 보아도 절로 신심이 났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 번 허리를 다치면서 재발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재발한 이후 수술까지 하고서도 지금까지 허리통증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병을 앓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엔 완쾌를 하고야 말리라 욕심도 내어보았습니다. 치문 겨울철엔 도저히 이렇게 대중생활을 할 수 없다 여겨 휴학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민폐만 끼치는 대중생활이 너무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난 예전에 허리가 아팠던 적이 없었어….’어리석은 말입니다. 이 모든 고통이 다 저의 반연인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치문 겨울 방학 때 은사스님께
“스님, 저 대중스님 눈치 보고 살기가 힘듭니다.” 고 하니 은사 스님 말씀하시길
“아니 지금 50년 다되어가는 내 법납에도 대중 눈치 보고 산다. 하물며 니가 대중 눈치도 안보고 살라고 그랬냐”
“누구나 다 아프다. 그러니 아프면 고치면서 살아가자.”
그렇게 몇 번의 장기출타로 간신히 치문, 사집을 살고 이제 사교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무상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고통도 끝이 있겠지. 다만 고통 속에서 매몰되어 나 자신까지 잃지는 말아야지.’
긴 병고에 찌든 제 생활을 돌아보며 다시 한 번 신심을 내어 참회하고 기도하며 원력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어느 순간 자연스레 이 병이 제게로 온 인연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이건 아니야, 왜 내가 이런 상황에서 고통을 받는가’하는 생각은 인과를 아는 수행자로서의 자세도 아닐 뿐더러 병이 나아지는 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법화경 방편품에 있는 십여시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거역치 않고 그대로(如如)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여시(如是)입니다. 병이 왔을 때 병을 좋은 기운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 기운이 바뀌면 병이 화두가 되고 화두는 다시 인격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역경이 돌아왔을 때 영혼의 맑은 씨앗을 심은 것 그것이 바로 ‘여시’라는 것입니다. 모든 고통은 사람을 성장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심수만경전(心隨萬境傳)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
이 구절은 마노라 존자가 학륵나 존자에게 설하여 오백 마리의 학을 제도한 게송이라 합니다.
즉, 마음은 대상에 의해 움직이는데 시시각각 다른 경계가 오면 그대로 용납하면서도 그 마음자리가 유연하다면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 역경계에서 좌절하거나 퇴굴심을 내지만 않는다면 조금씩 더디게나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젠 도반 같은 제 허리병과 잘 타협하면서 남은 운문사 생활을 잘 해 나갈 것입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고 어느 곳에서나 주인된 삶을 살면 그것이 참된 것이라는데 자신의 문제에 매몰되어 주변 돌아볼 여유 없이 살아온 제 자신을 반성하며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 사교반 도반스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부족한 저를 지금까지‘도반’이라는 이름으로 감싸주고 지켜봐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대중 스님 여러분 수행과정에 찾아오는 모든 경계를 수순하시는 훌륭한 수행자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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