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생사(生死)는 한 조각 뜬 구름_입선스님

최고관리자 | 2012.07.26 11:15 | 조회 11453



생사(生死)는 한 조각 뜬 구름


대교과/입선

안녕하십니까? 대교반 입선입니다.

空手來空手去是人生  공수래공수거시인생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여

   生從何處來         생종하처래       어느 곳을 쫓아 태어나고
   死向何處去         사향하처거       어느 곳을 향해 죽는가
   生也一片浮雲起     생야일편부운기   생은 한 조각 뜬구름 일어남이요
   死也一片浮雲滅     사야일편부운멸   사는 한 조각 뜬구름 사라짐일세.
   浮雲自體本無實     부운자체본무실   모든 구름 자체는 본래 실체가 없나니
   生死去來亦如然     생사거래역여연   나고 죽는 것 또한 이와 같아라 ”

서산대사의 게송 중 중생의 생사가 무상함을 일깨워주는 구절입니다. 태어나고 죽는 일을 반복하며 육도를 윤회하는 중생들은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적 질서 속에서 자기 자성을 깨닫지 못하고 고통 받고 있습니다. 한 조각의 뜬구름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는 한 줄기 바람에 흩어지고 마는 허상입니다. 뜬구름은 실체가 없어 흩어졌다가 모였다가 할 뿐이라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몸을 받아 태어나서 살아간다는 것이 지금 이 순간처럼 영원할 것 같지만 무상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어떤 때는 인간의 몸을 받고, 어떤 때는 동물의 몸을 받거나 미생물의 몸을 받기도 합니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그렇게 육도를 돌아다니는 것이 한 조각의 뜬구름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겁니다. 인간의 육신은 구름같이 실체가 없으니 그 근본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아는 중요한 지름길이 무상의 도리를 깨치는 일이요, 본분사를 깨닫는 일입니다.

우주는 두 가지 자연법칙에 의해 변합니다. 우주만물은 성주괴공(成住壞空)의 법칙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고 있으며 모든 생명은 생주이멸(生住異滅)의 섭리로 인해 생성을 되풀이합니다. 그래서 삼세(三世)가 영원하지 않으며 인간은 생노병사 법칙의 생멸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욕지전생사(欲知前生事), 자기의 전생을 알고자 하면 금생수작시(今生受作時),금생에 자신이 어떤 업보를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현재에 살고 있을 뿐입니다. 현재의 이 모습이 과거를 인연으로 생겼고 이 모습이 그대로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겁니다. 그러니 일순간의 일에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집착하는 순간 우리에겐 불행과 고통이 따릅니다. 집착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상이 무상함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무상이란 시시각각 변화하며 떳떳함이 없는 것, 바로 영원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세상에 아무리 권세있는 지위나 부귀를 가졌다해도 죽음 앞에선 한낱 꿈이요, 풀잎 위에 이슬인 것입니다.

과거라는 것도, 현재라는 것도, 미래라는 것도 결국에는 집착이 낳은 한 조각 뜬구름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이것을 알면 생사의 덧없음을 한탄하지 않고 이 무상한 윤회의 길에서 인간의 몸을 받은 동안에 열심히 정진하여 성불의 인연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또 3생과 생사의 무상함이 현재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우치고 나면 집착과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보다 행복한 강원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산 사람은 죽음을 맞아서도 평온하고 자유로울 것입니다. 그래서 선 수행을 닦은 스님들은 죽음을 맞아 한 편의 열반송으로 생사를 뛰어 넘은 경지를 드러냈습니다. 고려말의 고승 나옹선사는 중국의 스승 지공화상이 입적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 수의 시를 지었습니다.

태어나실 때는 한 줄기 바람처럼 일어나고
가실 때에는 저 연못에 달그림자 잠기듯 가네
나고 죽고 가고 옴에 걸림이 없어
중생에게 보인 그 몸속에 참 마음 있네
참 마음은 없어지지 않거니 이때를 놓치면 또 어느 곳에서 찾으리

한 줄기 바람이 이는 것 같이 태어나고 연못에 달그림자 잠기듯 죽는 것이 생사입니다. 문제는 이 생사의 주인은 누구냐 하는 겁니다.
나옹스님의 시에서는 바로 그 주인을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습니다. 중생이 보인 몸이란 바로 무상의 실체인 육신을 말하는 것이고 그 속에 참마음이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마음이 바로 이 허상을 끌고 다니는 주인이며 생명의 근원이고 부처와 중생을 이루는 본원인 것입니다.
대중스님여러분 우리 모두 마음을 밝혀 생사를 뛰어넘는 그 날까지!
애쓰고 또 애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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