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마음_정헌스님

최고관리자 | 2013.03.14 13:33 | 조회 3248



마 음

정 헌/ 사집과   

안녕 하십니까? 사집 반 정헌입니다.
계절의 끝인 듯한 겨울은 지나온 시간을 마무리 하는 것 같지만, 설경의 깊은 맛 때문인지 무엇인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이제 사집의 끝을 달리는 시간은 더디게 가는 듯 했지만 빛처럼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습니다.너무나 각기 다른 알록달록한 특성의 스물아홉 동업중생들이 모여서 강원의 4년 기간중 벌써 절반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소중한 도반스님들과 지난 여름방학 때 도량 안과 밖에서 풀을 메고 고추를 따고 대중의 밥상을 준비하면서 참 많은 웃음과 눈물을 같이 했습니다. 영양분을 주는 것도 아니고 사랑을 주는 것도 아닌데, 무럭무럭 커가는 구석구석의 풀을 보면서 원망도 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압력솥에 공양 준비를 하면서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밥 나와라 사바하’를 외쳐대기도 했고, 석차례 인데 늦잠을 자서 동방에 수한 가사를 망토처럼 휘날리며 뛰어가서 겨우 도량의 단잠을 깨우기도 했습니다.
또 경상을 마주 대하기만 하면 눈은 스르르 감겨오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근에 스치는 인연으로 봉사가 문고리를 잡듯이 조금씩 한문이라는 외계인 세계에 빠져듭니다.

마치 소가 뱃속에 들어있는 풀을 되새김질 하듯이 읽고 또 읽다보니 조금 친한 사이인 것 같기도 하고 읽을수록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주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어떤 스님께서 강원에서는 본인의 원력이나 서원이 없으면 힘들다고 하시면서 수업시간에 학습한 것 중에서 다섯줄이라도 수지 독송하면서 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대혜 스님께서는 허사리 에게 보낸 편지에 다만 신심만 갖출 뿐 앞, 뒤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믿음은 도의 근원이며 공덕의 어머니 이고, 믿음은 능히 지혜의 공덕을 더욱 자라게 하니 천리를 가고자 한다면 일보를 처음으로 삼고, 곧 바로 위없는 보리를 취하고자 한다면 일체 시비를 상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즉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본래 부처이며 청정한 자기 마음을 써야지 시비하고 분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세속의 인연을 버리고 삭발염의하고 출가 수행자의 길을 가고 있으니 우리가 곧 부처입니다. 다만 아직 부처님의 말씀보다 마음속 경계에 흔들리며 범부의 때를 벗지 못한 것뿐입니다.

사소한 일로 도반스님과 시시비비를 가립니다.
뒤돌아서서 생각해보면 옳을 것도 없고 옳지 않을 것 도 없고 그저 알록달록한 생각일 뿐인데 다겁생 동안 익숙해져온 식정을 버리지 못한 탓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바로 서 있다면 걷고 머물고 앉고 눕는 것 과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조용 한 것이 마치 선에 안정되고 생각을 고요히 하는 것 과 같을 것입니다.

대혜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좋았던지 나빴던지 간에 지나가버린 것들을 허망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고, 현재의 일도 덜 수 있어서 덜어버린다면 미래의 일은 자연히 상속되지 않고, 남의 허물은 자주자주 드러낼 필요가 없고 자기의 허물은 도리어 빨리 제거해야한다." 하셨습니다.
또 시끄러운 현실 속 에서도 고요하게 공부할 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셨습니다.

매 순간 침묵과 분주함이 공존하는 운문사,
각각의 개성으로 섞여있는 대중 스님들...
어울림 속에 홀로서기가 공존하며 다듬어 지지 않은 원석을 연마해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듯이, 서로서로 깎고 깎이면서 하루해를 보냅니다.

오늘도 크고 작은 일에 끄달리면서 도반스님과 힘들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봅니다.
행복도 불행도 모든 시작점에는 항상 ‘나’라는 마음에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고난의 원인은 자신의 마음이 만들고 스스로 받을뿐, 누가 주는 것 이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 타인을 신뢰하는 마음, 즉 믿음은 모든 행복의 원인이 되고 자신의 마음을 선하게 만듭니다.

바른 견해로 생각하고 말하고 생활하고 정진하면서 믿음이라는 싹을 틔우고 실천 하면서 살아간다면, 살아가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일상생활의 수고로움 가운데서 힘 덜림을 깨달으니, 힘 덜림을 깨달을때 가 문득 본인의 힘을 얻는 곳이며, 부처를 이루고 조사를 이루는 곳이며, 지옥을 변화시켜 천당을 짓는 곳이며, 편안히 앉아 있는 이곳이 수행 처 입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나날이 향기로운 수행자 되십시오.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