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무생계경-화엄반 진정스님

가람지기 | 2021.07.28 19:13 | 조회 1057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우리나라의 불교사에서 상당히 독특하면서도 중요한 위치에 계신, 푸른 눈의 인도인 스님, 지공스님과 지공스님께서 고려에 들여온 문수사리 최상승 무생계경에 대해 소개할 화엄반 진정입니다.

 

여기서 지공스님에 대해 아시는 분 있으신가요?

저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지공스님은 대단히 중요한 분입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꼭 이 법명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한번 따라해볼까요? 지공 나옹 무학. 삼대화상. 나옹스님과 무학스님은 들어보셨죠? 이 두 분의 스승이 바로 지공스님입니다. 이 세 분은 삼대증명화상으로써 대예참이라는 예불문에 나옵니다. 또 현재 송광사에서도 조석으로 예불을 올리고 있습니다. 큰 사찰에는 대부분 세분의 진영이 함께 모셔져 있어요. 가까이 통도사 박물관에도 이 삼대화상의 진영과 통도사에서 보관하고 있는 보물인 세계에서 오직 하나뿐인 경전, 문수사리최상승무생계경이 있습니다. 이 경전은 바로 지공스님께서 소위 직수입(!)으로 고려에 들여온 경전으로 더불어 우리나라의 선율사상에서도 독특한 위치에 있는 경전입니다.

그럼 지공스님께서 어떻게 고려로 오게 되었는지, 그 행상을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

 

지공스님의 본 법명은 지공선현입니다. 이 분의 혈통이 굉장한데요, 무려 마가다국 국왕과 향지국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 왕자입니다. 향지국 들어보셨죠? 달마대사가 향지국 셋째 왕자 출신인 것 아시죠? 달마대사의 혈통을 이으신데다 아버지쪽으로는 석가족의 혈통을 이으신 분입니다. 불교계의 최고의 혈통이시죠. 무려 8세에 아버지가 아프셔서 그 병을 낫게 하고자 나란타대학으로 출가하셨습니다. 이때 처음 받은 법명이 선현입니다. 나란다대학에서 반야와 율을 10여년 수학 하고 스승의 권유로 19세에 스리랑카로 가 보명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때 지공이라는 법명을 받고 서천 108대 조사로 인가를 받습니다. 이후에 스승의 권유로 히말라야를 거쳐 티베트와 차마고도, 운남을 지나 원나라에 갑니다. 이 분의 행적이 대단한데요. 어느 구법승보다도 더 긴 거리를 다니셨는데, 이때가 아직 20대 초반이었습니다. 주지스님 말씀 따라 정말.. 소울이 다른 것 같습니다.

중국 원나라 대도에서 원의 순제를 친견하고 황제의 명으로 금강산 법기암에 향공향을 올리는 어향사 신분으로 1326, 고려에 들어가게 됩니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석가와 달마, 두 분의 혈통을 이은 분인데다 황제의 명으로 온 어향사라는 신분이 더해져 고려에서는 지공스님께 엄청나게 열광을 했답니다. 어느 기록에는 석가가 다시 태어나서 오신다, 달마의 후신이다 하여 새벽부터 남녀노소가 몰려서 그 수만 여명에 달하고 대중이 앞다투어 가르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지공스님은 매일같이 이 무생선와 무생계을 설하셨는데요, 이는 출가자나 재가자, 남녀노소 사부대중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최상승의 일승법이었습니다. 당시 고려의 대중들은 기존의 티벳불교에 영향을 받아 대처승과 부폐가 만연했던 불교계에 지쳐있다가 석가와 달마의 혈통인 인도에서 온 지공스님을 친견하고 그의 청정한 계행에 더 깊이 감화되었다고 합니다. 지공스님의 법력은 워낙 유명해서 당시 원나라 고승지인스님도 지공스님을 친견하고 감동하여 적은 글이 있는데요, 여기서 지공스님의 외모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선사는 피부가 검고 여의었다. 팔이 길어서 무릎 아래에 이른다. 눈동자가 푸르고 응시하면 깜짝이지 않으므로 달마의 모습과 같다. 밤새도록 결가부좌하고 결코 방바닥에 눕지 앉았다. 곡식 밥을 먹지 않고 간혹 과일과 차를 바치면 그것도 조금만 먹었다. 대도 법원사에서 40년 살아가는 동안 방 한곳에 조용히 참선하면서 문밖에 나가지 않았다. 왕과 귀족으로 그의 설법과 꾸지람을 들은 이가 많았고 황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면 황제뿐만 아니라 여러 대덕스님들께도 큰 신뢰를 얻었던 지공스님의 수행의 요지가 담긴 무생계경은 어떤 내용일까요?

무생계경의 원제목은 문수사리최상승무생계경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 경은 우리나라에만 판본이 있고요, 팔만대장경이나 신수대장경등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아주 독특한 경전입니다. 이 경을 통해 수만명의 고려백성에게 무생계를 수계하시면서 계첩도 발행하셨는데요, 계첩 역시 우리나라에서만 무생계첩이 발견되었습니다. 나옹화상계첩, 우바이묘덕계첩, 그리고 해인사 비로자나부처님복장에서 발견된 사문 각경 계첩이 있고, 주인을 알 수 없는 계첩이 또 하나 있다고 합니다. 이 무생계첩에는 왜 우리가 무생계를 지녀야 하는지 그 당위를 설명하고 마치 수행의 차제를 나타내듯이 순서대로 사귀의, 삼업참회, 육대서원, 그리고 마지막에 무생계목이 있습니다.

 

계목은 단 하나인데요, 바로 중선불수 제악부조 모든 선을 닦지 않고 모든 악을 짓지 않는다. 이 말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습니까? 제악막작 중선봉행, 칠불통계와 비슷하죠? 그런데 여기서는 중선불수. 선조차도 짓지 않습니다. 무생이란 것은 곧 선이다 악이다 하는 분별을 떠난 마음자리를 이야기 합니다. 좋다 싫다는 시비분별, 태어남과 죽음의 이분법을 초월한 우리의 본래면목이고 우리의 자성불을 뜻합니다. 지공스님은 무생계경에서 이 같은 이분법을 떠난 중도의 자리를 자각하여 자재함을 얻고, 또 자재하다는 관념마저 짓지 않는 최상승무생계법을 말하고 계십니다. 지도무난이면 유혐간택이요 단막증애하면 통연명백이라. 저도 개인적으로 이 무생계첩을 하나 만들어서 지니고 싶다는 소망이 생기더라구요. 되새김 영어처럼 이 계목을 되새기면서 이 시비분별, 관념에 속지 않는 연습을 하다보면 그것이 곧 무생의 심계를 지니는 것이 되고, 그것이 곧 선정의 힘을 키우고 지혜의 달을 띄우는 삼학의 수행으로 이어지는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시비분별, 옭고 그름, 선과 악을 떠난 그 자리가 참으로 불법의 멋이라고 생각해서 더욱 이 무생계목이 와 닿았었는데, 여러분들은 어떠셨는지 모르겠습니다. ^^; 선도 악도 짓지 말라는 것은 우리 마음자리의 계이고, 그렇다고 하여 행을 놓치지 말란 말씀이 아닌 것은 아시죠? 제악막작 중선봉행은 실생활의 계입니다. 마음으로 선을 행하면 죄가 된다는 말씀도 있답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읽고 있는 금강경에서 말하듯이 무주하는 마음, 늘 본래 그 자리로 반환할 수 있는 이 무생계화두, 중선불수 제악부조, 따라해볼까요? 모든 선을 닦지 않고, 모든 악도 짓지 않는다. 이 마음자리의 계를 오늘 각자 여러분의 마음속에 잘 지녀서 우리가 이 자기망상과 환에 속지 않는 진정한 삶을 살아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법문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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