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84,000법문, 하루 5편 그리고 지심귀명례-사집반 서묵스님

가람지기 | 2021.10.11 20:13 | 조회 687

84,000법문, 하루 5편 그리고 지심귀명례

 

서묵/사집과

 

안녕하십니까? ‘84,000법문, 하루 5편 그리고 지심귀명례라는 제목으로 차례법문 발표를 하게 된 사집반 서묵입니다.

 

새벽예불을 은해사에서 참석했을 때 울었습니다. 이근에 스치는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처음 들었고 뜻도 모르면서 앞에 계신 스님 목소리와 주변 일행들이 송하는 소리를 들리는 대로 어쭙잖게 따라 하고 있었습니다. 절도 따라 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그냥 눈물이 났습니다. 아주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눈물이었습니다. 귀의한다? 무얼? ? 어디에? 궁금했습니다.

 

치문반 수업 때 주지 스님께서는 그 뜻을 자세히 풀어 주셨습니다. , 기도합시다!

至心歸命禮’ :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 바쳐 돌아가 의지하고 예배합니다.

 

첫 예불 후 제가 알던 것보다 더 깊은 뜻이 있음을 듣게 되었고 수업 시작 때마다 주지 스님의 선창을 듣고 도반들과 합송하면 귀의심 시작되었던 그 새벽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초중등 시절 일요일마다 캔디 같은 TV만화도 못보고 내키지 않는 몸짓으로 몇 년간 교회를 다니다보니 나신교를 신봉할 만큼 종교가 싫었는데 지심귀명례는 자발적으로, 기쁘게 새벽예불을 다니게 했습니다. 산사 법당과 너무 틀린 도심 법당은 충격 그 자체여서, 잘못 왔나, 사이비 집단은 아닌가 하여 멈칫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도 장중한 합송 7정례가 좋아 하루하루 참석이 늘어갔고 시간이 흘러 이제는 출가해서 장중하게 예불합니다. 기적 같은 변화입니다.

 

그럼 목숨 바칠 각오가 되었다는 걸까요? 아닙니다. 새벽예불 다니던 한 날, 지금 무얼 하고 있지? 이렇게 살려고 태어난 게 아닌데……. 라는 울림에 또 다시 이유를 모르는 눈물이 났습니다. 지금은 공룡도 없고 신석기인도 없고, 아틀란티스 문명도 없듯 미래에 태어나면 이 시대 모습은 흔적도 없을 텐데……. 무엇을 위해 이토록 바쁘게 사는가. 윤회법이 맞다면 진리만을 익히자. 육신 살려가기에 투철하지 말자! 세세생생 변함없는 천진만을 찾자. 마음속에서는 돌아갈 수 있고 예배하기는 하겠는데, 목숨을 바친다? 이 귀한 목숨을 어떻게? 싫은데, 할 수 없는데, 난 결코 죽지 않을텐데……. ‘목숨바쳐 돌아가리라가 삶의 화두처럼 되었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을 찾아야 했습니다. 일단 마음을 알아야 했습니다.

 

몸뚱이를 나로 아는 이 탐진치가 놓아지지 않아 경전을 찾다보니 상징적이기는 하나 법문이 무려 84,000가지였습니다. 언제 이렇게 많은 법문을 설하셨을까. 탐정 셜록 홈즈처럼 아주 심도 있는 산수로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 29세에 출가, 35세에 깨달음을 얻으시고 80세에 열반, 8035=45, 설법하신 기간 45년 그러니 45년에 365일을 곱하면 = 16,425, 84,000을 하루 단위로 분배하면 약 5편인 계산이 되었습니다. 석가 세존께서는 뜨거운 땅을 45년간 맨발로 다니시면서 고통 해방 법을 알려주셨는데, 찾아내는 것도 아니고 주어진 것을 하루에 100편도 아니고 5편만 접해도 될 텐데, 부처님의 자상한 안내에도 게으름으로 살아가고 있음이 반성되었습니다.

 

몇 박 몇 일 많은 양에 집중기도 보다는 매일 꾸준함이 더 어렵고 좋은 수행법이라 했으니 경전 접하기 하루 5편 실천해보자. 예불마다 법구경 한 구절을 읽고, 환희로운 반야심경도 읊조렸습니다. 메일 속 경전, 손닿는 곳의 경전, 영상법문 보고 듣기 생활을 하다가 제행무상이라고, 눈 오는 날도 무장하고 첫차 타며 다니던 그 열정은 시나브로 줄었습니다. 목숨 바쳐보겠다는 목표는 있었지만 간절함의 농도는 업력과 목숨 값보다 적었던 것입니다. 못 일어 날까봐 날을 새고 예불 다닌 공덕으로 그 때 습기를 많이 조복 받는 가피는 있었습니다. 마을 일을 줄여가던 중 묘법연화경 기도 동참을 접하였는데 최고의 경전이면 하루 5편 독경보다 좋지 않겠는가! 자야하고, 먹여야하고 입혀야 하고, 놀아주어야 하는 몸의 속박에서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며칠을 날밤을 새며 완파한 법화경은 영험이 크다더니 역시, 뜻을 잘 모르는데 얼굴 가득 잔잔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불법의 꽃이었습니다.

 

모기 침 한 방에 살심이 손으로 오고, 칼에 손이 베일 때 온몸이 고통으로 전율하고, 밤에는 부시럭 소리에도 온 살이 떨리고, 무릎이 시리고 아플 때 밤새 신음하고, 공양간 입구에서 식탐님이 강림하실 때는 불법은 저 언덕으로 날라가고 등등 몸에 대한 수많은 끄달림들이 이전보다 많이 해소 되었습니다. 전생에도 독경했던 인연도 느꼈습니다. 상불경 보살처럼 마음속으로나마 주변인들을 바라보고 수기를 주는 재미를 도반과 같이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언젠가는 겁을 넘어 팔을 태우는 공양을 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안식으로 보이지 않을 뿐 수많은 불보살님이 육이 아닌 다른 형태의 몸으로 같이하고 계시고, 글을 넘어선 항상恒常하는 불법이 있다는 사실은 시야를 넓게 해주었습니다. 진리는 바른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확고한 마음이 생겨 남섬부주를 떠나는 불안도 서서히 줄었습니다. 몸을 버릴 수 이유가 더 생겨가는 겁니다.

 

사집이 되며 원묘교수사 스님께서 내주신 여름방학 숙제로 천태종발표를 준비하게 되면서, 체화의 경험을 바탕으로 불교 핵심사상을 설명하는 교학을 접하게 되어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천태지의대사께서 교상판석敎相判釋하고 지은 천태삼대부天台三大部에서는, 부처님 45년 법문을 가르침에 따라, 설하신 순서에 따라, 내용에 따라, 가르침 형식에 따라 오시팔교五時八敎 아주 간략하게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 망망대해 같은 84,000 법문에서 지극히 귀의하게 하고 목숨 값을 줄여줄 법문을 쉽게 찾게 된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고려 제관 스님께서 중국에 건너가 꺼져가는 천태학의 핵심을 되살리고 지으신 천태사교의는 청출어람 된 후학들의 필독서이기에 손에 들었는데. 그러나, 현실은 분명히 한글 해석인데, 불교 용어를 몰라 한바닥 넘기기가 쉽지 않아 불교사전 열고 닫기를 반복합니다. 여러 생에 쌓인 이 물질 육신이라 견고합니다.

 

두드리니 열렸고 진리를 익히겠다 마음먹으니 시나브로 삶이 펼쳐졌습니다. 버리고 싶지 않고 그러나 버려야만 하는 많을 것들과 씨름하면서 연일을 보냅니다.

정녕코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 자문에 설레설레 고개 짓는 모습을 보며 목숨내기가 두렵지 않기 위해 아침, 저녁으로 지심귀명례 올립니다.

 

장군평에 번개 울력 하고 나오다가 전날 원법교수사 스님의 도서 수업 시간 중 내용이 연상되면서 아래 시구가 떠올랐습니다.

 

흘러가는 물 속 풍경! 흐리디 흐리게 따라 흐르네!

고요함 머금은 물 속 풍경 맑고 선명하기가 그지 없어라!

이 마음은 언제 청정풍경 담을꼬!

그 때엔 이 육신 사라져도 두렵지도 않으리.

 

마지막으로 치문반 시절 주지 스님께서 선창해 주시던 지심귀명례와 뜻풀이가 그리워 감히 이 자리에서 청을 올려봅니다. 저희 학인스님들이 따라 송하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至心歸命禮:지극한 마음으로 목숨바쳐 돌아가 의지하고 예배합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옴 아 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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