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아는 것이 힘? No! 내려놓음이 진정한 힘 - 사교반 인성

가람지기 | 2025.12.20 17:12 | 조회 99

저는 MZ세대와 알파세대, 특히 인터넷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혼란과 외로움을 겪고 있는 저를 비롯한 모든 분들에게, 제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와 함께 내려놓는 힘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혹시 여러분, 데이터, 정보, 지식, 그리고 지혜의 차이를 아십니까? 데이터는 가공되지 않은 사실들이고, 정보는 이 데이터를 목적에 맞게 정리한 것들입니다. 지식은 정보를 이해하고 연결한 것이고, 마지막으로 지혜는, 지식을 넘어 현실에 맞는 올바른 판단과 실천으로 이어지게 하는 힘입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혜겠지요. 그 이유는, 지혜만이 단순한 앎을 넘어 실천으로 나아가게 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불교에서는 지혜를 어떻게 볼까요? 부처님께서는 지혜를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깊은 통찰력, 즉 반야般若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성제四聖諦와 연기법緣起法을 깊이 통찰하고, 수행을 통해 직접 체득하여,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불교의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본질적으로 신심을 바탕으로 계와 정을 닦음으로써 생겨나며, 이 중 정, 즉 참선을 통해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혔을 때, 그 고요함 속에서 피어납니다. 불교와 세속의 지혜는 지식을 바탕한 실천이라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세속의 지혜가 사회적 성공이나 물질적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불교의 지혜는 고를 멸하는 것, 즉 해탈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실천보다 더 많이 아는 것에 집중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중독성 강한 디지털 기기, 인터넷, 그리고 AI분석을 통해 전 세계의 뉴스와 다양한 콘텐츠를 즉시 알 수 있고,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전문가처럼 말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도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역사상 어느 때보다 세계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정보의 접근성은 삶의 질을 높이는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더 많이 알고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행복지수는 그만큼 증가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디지털 플랫폼들이 보여주는 세계는 현실보다 이상화된 현실이고,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는 시간보다 외부 정보에 의존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즉 채움에 집중할수록, 갈애渴愛를 충족시키려는 마음을 내려놓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다시 말해, 콘텐츠 소비가 많아질수록 실천할 시간은 줄어들고, 무기력과 나태함이 자라납니다. 또한 누구나 쉽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엔, 대다수의 정보들이 그 순간의 목적, 조건 그리고 개인의 감정이 실려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진짜 정보와 가짜 정보를 명확히 구별하기가 어려워지고, 특히 알고리즘은 각자의 관심사에 맞춰 정보를 보여주며, 왜곡되고 과장된 콘텐츠는 현실의 자신과 비교하게 만들며, 자괴감과 열등감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괴로움을 잊기 위해 또 다른 콘텐츠를 소비하며, 이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삶의 방향은 점점 더 흐려집니다.

 

법구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수송습다의雖誦習多義

방일부종정放逸不從正

여목수타우如牧數他牛

난획사문과難獲沙門果


많은 가르침을 외우고 공부하더라도 방일하여 바르게 실천하지 않으면, 마치 남의 소를 세는 목동과 같아서, 사문의 과를 얻기 어렵다(Dhp 19). 즉 아무리 많이 알아도 내면화하여 체험하지 않으면, 진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가르침입니다. 이렇듯 무명無明과 갈애渴愛 속에 머무를수록 깨달음의 길은 멀어집니다.


저 역시 출가 전, 정보의 홍수 속에서 방황했습니다. 여덟 살 되던 해, 아버지의 이집트 발령으로 가족과 함께 해외로 나가, 미국식 국제학교를 다니며 세계 각국의 친구들과 자랐습니다. 글로벌 시대에 성공하려면 다양한 정보와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믿음은 자연스럽게 제 안에 자리를 잡았고, 저는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했습니다. 겉으로는 글로벌 시대의 현대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쌓았지만, 내면에는 불안과 불만이 자리 잡았고, 내면의 근력을 단련시키지 못한 채 성장했습니다. 고등학교 이후, 혼자 미국과 캐나다 등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다양한 문화를 접했지만, 그 다양성이 오히려 저를 더 큰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외부로부터 끊임없는 자극과 비교에 시달렸고, 도덕적 기준마저 흐려졌습니다. 그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저는 인터넷 세계로 도피했습니다. 소셜미디어, 영화, 드라마, 독서, 쇼핑, 검색 등 원하는 콘텐츠로 감정을 달래는 데 익숙해졌고, 그렇게 소비한 수많은 정보들은 저의 상에 살()이 되었고, ‘나는 이런 사람이야또는 이 정도는 기본 아닌가?’라는 고정관념의 레시피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 정보조차도 괴롭게 느껴졌고, 무언가 본질적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은 저를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끌었습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는 왜 이런 성격과 성향을 가지고 있을까? 나는 왜 나일까? 혼란스러운 세상 속 세계평화는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질문들은 자연스럽게 자기계발서, 영적 탐구, 그리고 불교의 가르침으로 이어졌습니다. 명상을 통해 저는 처음으로 알음알이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고요함을 찾기 위해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스승 없이 혼자 하는 수행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곧이어 여러 인연들이 겹겹이 이어지면서 저는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한국 불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오직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실천하고자 운문사 행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운문사에서의 생활은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기준과 습관을 내려놓게 했습니다. 처음엔 괴로웠지요. 특히 묻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기는 저에게 매우 낯설고 도전적인 일이었습니다. 모르면 당연히 물어야 했고, 더 나은 방법이 있으면 제안해야 한다는 저의 고정관념을 내려놓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불법에 대한 신심을 잃지 않고 틈틈이 참선과 회광반조回光返照를 통해 점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운문사의 교육 시스템은 단순히 복종을 요구하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된 견해를 내려놓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을 빚어내는 훈련소였습니다. 오직 모를 뿐(Dont know mind)의 자세로 계정혜戒定慧를 닦아나가다 보니, 세상의 문제라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제 안의 판단과 기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외부 대상에 의지하려는 습관과, 앎과 상에 집착하는 마음을 하나씩 내려놓으니, 이젠 제 마음에 평화가 서서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때로는 모른다는 것, 그리고 의지할 수 있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사실은 저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하지만 무명無明에 머무르면 스스로를 쇠사슬로 괴로움에 묶어 버리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고정된 관념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끊임없이 내려놓고, 열린 마음으로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낙처落處를 살피는 것이 조건생() 조건멸()의 진리를 실천하는 삶이며,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용기이자 수행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진여심眞如心을 깨닫고 팔정도八正道와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실천한다면, 우리 모두가 누군가에게 작은 안식처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모든 교육과 사회가 불교의 가르침의 가치를 인지하고, 참선과 내면 탐구가 자연스러운 교육과 삶의 일부가 되기를 발원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정보 중심의 경쟁 속에 지쳐 있는 청소년들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어른들이, 몸과 정신, 그리고 마음이 조화를 이룬 진정으로 건강하고 지혜로운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내려놓는 힘, 이것이 바로 21세기의 진정한 힘입니다.


저의 법문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 자신을 화나게 했거나, 슬프게 했거나 혹은 짜증나게 했던 대상이 있으셨습니까? 그 마음을 일으킨 것은 대상이 아닌 이제까지 쌓아왔던 자신의 고정관념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괴로움은 결국 스스로의 분별심에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만약 일상 속에서 부딪히는 경계가 자주 있다면, 상을 내려놓고 저와 함께 매일 틈틈이 참선을 통해 지혜를 키우는 것은 어떤지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어떠십니까? 저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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