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과학적 접근-치문반 무아

가람지기 | 2026.01.11 14:40 | 조회 40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과학적 접근



일체유심조는 모든 것이 오직 마음으로 만들어진다는 뜻입니다. 이 일체유심조를 이해하기 쉽게 과학적인 접근을 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과학에서는 이중슬릿 실험 또는 관찰자 효과로 알려진 실험입니다. 이 실험은 빛은 파동인가? 입자인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입니다. 작은 구멍 2개에 전자를 통과시켜서 스크린에 비친 결과가 입자로 스크린에 나타는지 파동으로 관찰되어 파의 중첩현상이 나타나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입니다. 작은 구멍 2개에 전자를 통과시켰을 때, 스크린에 입자처럼 점들이 찍히는지, 아니면 파동처럼 간섭 무늬가 나타나는지 알아보는 실험입니다.

입자라면 스크린에 점들이 찍혀서 입자가 스크린에 부딪힌 결과가 보이고, 파동이라면 빛의 간섭 무늬가 나타나게 됩니다. 

실험 결과는 어땠을까요? 놀랍게도 관찰자의 행위에 따라서 실험 결과가 달라졌습니다. 실험 초반에는 입자의 행동으로 스크린에 점들이 찍히지만, 실험을 반복할수록 스크린에는 파동의 간섭무늬가 찍힙니다. 그리고 입자가 어떤 구멍(slit)을 통과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다시 하여 관찰자가 관찰하면 스크린에는 파동이 사라지고 점만 찍히게 됩니다. 입자가 어떤 구멍을 통과했는지 '관찰자가 측정하거나 관찰하면' 스크린에는 파동의 간섭무늬가 사라지고 점만 찍히게 됩니다. 그래서 양자역학에서는 이 실험을 관찰자효과라고 합니다.

이 실험은 관찰자와 관찰 대상이 분리되지 않고 서로 영향을 미치는 상호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과학에서는 누가 실험을 하든지 같은 절차와 방법으로 객관적으로 실험을 하면 그 결과도 같게 나와야 한다고 정해졌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과학에서조차도 관찰자의 행위에 따라서 실험 결과가 다르게 나오고 다르게 관찰되고 해석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으로 보아서 관찰자와 객관적 관찰 대상인 물질도 서로 상호 연기적 관계를 갖고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심리학이나 교육학에서의 심리적 행동입니다. 교사가 학생에게 거는 기대, 즉 학생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에 따라서 학생의 성적과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교사가 학생을 대할 때 모범적으로 보고 칭찬과 격려로 대하고 잘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면 학생은 성적이 오르고 행동이 모범적으로 되며 교사가 아이를 문제아로 보고 낙인을 찍어서 대하면 아이는 성적이 떨어지고 문제행동을 보입니다. 이것은 교사의 관점과 태도, 즉 마음과 의도가 학생의 학업과 학교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또 플라시보 효과 또는 위약 효과로 알려진 심리 실험이 있습니다. 이것은 실험 참가자들이 비타민(위약)을 병을 고치는 약으로 알고 복용했을 때 실제로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암의 첫 번째 원인도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물론 유전과 인과적 요인이 작용하겠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의 면역력이 약해지면 암세포가 빠르게 증식합니다. 면역체계가 약해지면 암의 번식속도가 무섭게 빨라진다고 합니다. 플라시보 효과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병이 더욱 악화되게도 할 수도, 병을 낫게 할 수도 있다는 심리적 실험입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 공부에 적용할 수 있는 글귀를 소개합니다.

치문에는 고산지원법사孤山智圓法師 면학勉學

등산즉사학기고登山則思學其高 하고, 임수즉사학기청臨水則思學其淸 하며

좌석즉사학기견坐石則思學其堅 하고, 간송즉사학기정看松則思學其貞 하며

대월즉사학기명對月則思學其明 하노니

만경萬境이 삼렬森列에 각유소장各有所長

가 실득사이학지悉得師而學之 하노라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산을 오를 때는 그 높음을 생각하고 물을 만나면 그 맑음을 생각하며

바위에 앉을 때 그 견고함을 생각하고 소나무를 볼 때는 그 곧음을 생각하며 달을 보면 그 밝음을 생각하니

모든 경계가 각기 장점이 있어서

내가 그 장점들을 스승으로 삼아서 배우노라

라는 뜻입니다.

이 구절은 만물을 스승 삼아 배우라는 의미입니다. 저에게는 만물을 대할 때 그 본래 성품을 보고 대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래서 일체를 그 성품으로 대하면 만물에서 배울 바가 있어서 스승으로 삼을 수 있기에 이 구절을 마음에 담아 두며 새기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오락가락하며 아침에 했던 생각이나 굳은 결심이 오후에는 변덕을 부려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한 바른 생각과 좋은 결심이 요술처럼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마음이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마음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마음의 힘 즉,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합니다. 그를 위한 수행방법들을 부처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끝으로 제가 겪었던 간단한 경험을 소개하겠습니다. 강원에 와서 치문 첫 철인 봄철에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그 날은 배가 아파서 저녁 취침시간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하다고 급기야는 고요한 새벽에 정막을 깨고 정랑으로 가야했습니다. 아픈 배를 움켜잡고 정랑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양이가 계속 야옹야옹하며 구슬픈 소리로 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양이도 아파서 처량하게 우는구나' 하는 생각에 걸음을 멈추고 고양이를 달래려고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고양이가 뭔가를 만지고 있는 행동이 느껴졌습니다. 호기심이 들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여 더 가까이 다가가 보았습니다. 아니 이럴수가! 고양이는 아파서 우는 것이 아니라 기분이 좋아서 기쁜 의사표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포식자로서 먹잇감을 사냥한 후에 만족스러워서 야옹야옹거렸던 것입니다. 그 순간 강한 알아차림이 생겼습니다. 내가 낀 안경으로 내 방식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구나. 내 생각과 감정을 내려놓고 바로 보도록 노력하며 수행정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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