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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達磨)가 부여(夫餘)로 간 까닭은

별초롱 | 2011.05.19 11:39 | 조회 3638

스님

'김호석교수지킴이' 카페지기 별입니다.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 김호석교수님에게 해임통보를했습니다
운문사에서 사실을 밝혀주셨어도 저들은 귀를 막았습니다.
학생들이 사실을 밝혔어도 저들은 귀을 막았습니다.

그들의 각본대로 밀고나간 것입니다.
눈물이납니다. 

여기 우리 홈피에 올린 시민의 글을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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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達磨)가 부여(夫餘)로 간 까닭은
|현재 진행상황

하린아빠

조회 3 |추천 0 | 2011.05.19. 10:15 http://cafe.daum.net/KimHosukJikimi/lNfG/2

달마(達磨)가 부여(夫餘)로 간 까닭은

붓을 잠시 걸어두고 부여로 간 수묵화가 김호석 교수! 그는 자신의 역사적 사명인 전통회화의 뿌리를 찾고(반구대 암각화 등 우리나라 회화미의 원형탐구) 법고창신하는 자세로 어제 선조들의 정신을 치열하게 배우고 오늘의 절박한 사람들의 문화적 갈증에 화답하는 용기있는 학자의 길을 정치롭게 걸어왔다. 그는 이 과정에서 세계문화사의 첫페이지로 내놓아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반구대 암각화의 훼손의 시급성을 논문과 전시회 기고 언론보도 등을 통해 일반 시민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그 불가역적인 훼손의 시계를 멈추어야 한다고 절규하였다. 그는 이 사실을 말하기 위해 중앙아시아 중앙기마족의 메마른 초원을 답사하고 또 답사했다. 한국인을 한국인답게 하는 그 미의 원형을 찾아나선 오디세이 여정이고 삼장법사의 목숨을 건 인도행이었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 독립운동을 하다 절명한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올바르고 똑바르게 살고자 했다. 그는 검소하고 술도 안 먹고 삿된 마음과는 거리가 먼 화가선비(Scholarly inkpainter)였다. 그는 전통의 현대화에 가장 모범적인 전형을 제시한 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매김한 거목이었다. 그런 그는 한국 미술문화의 삼학(三學)을 지켰다. 즉 계(戒, 학생과 학자로서 지켜야할 규율에 충실), 정(定, 삿된 흐름에 동조하지않고 침잠하여 바른 정도를 마음속에 지켜나감), 혜(慧, 법고창신의 전통문화의 진로 및 도달점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도달)를 지켜나가다가 여러 인간으로부터 시기와 질투와 이해관계에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이제 까지 해오던 장사수법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반격에 나섰다.

이러한 조종할 수 없는 너무나 양심적인 학자에 대한 문화재청(문화정책국 행정관료 및 전현 청장)의 위계(pre-planned scheme)에 의한 축출모의가 발단이 되고 왕꽃선녀와 그 아류, 반구대암각화보존에 지극히 편파적인 아니 부정적 시각을 가졌던 전통문화학교 동료교수 등 조연들이 준동한 날조극이 이제 한 고개를 넘어가려 한다. 징계위원회는 중징계를 결의하여 이의제기를 질의한 모양이다. 당장 이의제기를 하여야 하고 교원소총위원회 제소 등 김교수가 그 역사적 사명을 할 수 있도록 교수직과 수업권이 보장되도록 모든 조치를 다 하여야 하겠다. 그리고 관계된 학생들과 김호석 교수는 오랫동안 준비해온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공개할 때가 되었다. 이 먹먹한 느낌을 준 모든 삿된 세력이 응분의 댓가를 받는데는 시간만 필요할 뿐이다. 잠시 불편하지만 그것은 불편하지만 관통해 나가면 그뿐인 몽환포영(夢幻泡影) 즉 한갓 꿈이요 허깨비요 거품이요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다. 실체가 없는 징계가 어떻게 설 수 있겠는가?(It just cannot stand) 그렇지 않은가?

지난달 나는 아랍에미리트연합국에 있었다. 두바이에는 제벨 알리라는 항구가 있고 그 옆에는 이븐 바투타몰이 있다. 그옆에 이슬람국가답지 않게 기독교인들이 예배를 볼 수 있는 연합예배당이 두바이의 귀퉁이에 모여있다. 친구 따라 그곳에 가니 마침 서울 광림교회에서 나온 목사가 예수의 부활예배를 보고 있었다. 영어성경의 누가복음(Luke)이 강론주제였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간의 목숨을 건 금식기도(마태복음 4:2) 끝에 하나님의 뜻을 확연하게 깨달았다. 이 뒤 작은 하나님 청년 예수는 3여년간 민중 계도에 나선다(2008년 가을 교직 취임). 그는 하나님과 하나가 된 것 같이 모든 사람(학생들)이 같은 기쁨의 소식을 듣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도록 길을 힘을 다해 안내했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은 자기들과 다른 새로운 성약(New Testament)을 제시하는 ‘사람의 아들’을 시간을 두고 지켜보다 자료를 축적한다(탄원서 자료 준비)그리고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자기들의 역장(field of power)에서 축출하기로 공모 결정한다. 예수님의 사역의 끝은 시기와 질투에 의한 모함이었고 형식적 재판을 거친 뒤 바로 십자가형(crucification)이었다. 예수는 한없이 같은 동족을 사랑하여 구원의 길을 제시한 죄로 유대인 공회(문화재청 문화정책국의 지시로 소집)에 불려나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의 질문(소명서제출요구)을 받고 빌라도에겨 넘겨 재판을 받는다.

누가복음 23:4을 보자

“Then said Pilate to the chief priests and to the people, I find no fault in this man."(King James Version 흠정역)

이를 듣고 난뒤 빌라도 총독은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시민들에게 말했다. 나는 이 사람(예수)에게서 어떠한 죄목도 찾을 수 없다.“

빌라도가 관할 문제로 헤롯에게 넘기고 헤롯(문화재청)은 (누가 23:11) 예수님을 멸시하고 조롱한 뒤에 화려한 옷을 입혀 빌라도(한국전통문화학교)에게 돌려보낸다. 빌라도는 또 아무런 죄목을 찾지 못하겠다고 하자 대제사장과 관원들은 십자가에 못박아라(교수직을 박탈하라)고 요구한다. 결국은 조직과 세력을 가진 집단에 굴복한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는 결정(해임)을 한다.

예수님은 범죄자 두명과 함께 골고다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한 죄수가 예수를 능멸한다. 너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라고...다른 범죄자는 그 죄수를 꾸짖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가복음 23: 40-41

But the other answering rebuked him saying, Does not thou fear God, seeing thou art in the same condemnation?

And we indeed justly; for we receive the due reward of our deeds: but his man hath done nothing amiss.

(이를 듣고) 또 다른 십자가형을 받은 범죄자는 (이 자에게) 답하면서 꾸짖었다. 당신은 같은 모두 같은 십자가 형벌을 집행당하면서도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않느냐? 우리 둘은 참으로 우리의 행위에 대한 엄정한 죄값을 받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지만 이 분(예수님)은 (그동안)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고 받는 분 아니냐(NIV 에는 he is a righteous man으로 나옴, 그는 의로운 사람이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달마대사도 아무런 잘못도 없이 온갖 고초를 당하였다. 다음의 내용은『말씀 부처가 보이신 길』(청화스님 문도회, 이fms아침, 2004, 154~156쪽) 에 나온다.

달마스님께서 중국 광주에 오실 때 이미 150세(또는 130세)였다고 기록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던히 오랫동안 사셨겠지요. 그리고 9년동안 면벽했습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범부들(같은 학교 일부 교수들)은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고 또 자기가 아는 것하고 조금 다르게 얘기하면(전통문화를 모사나 잘해야하고 法古創新하면 안된다는 고루하고 캐캐묵은 문화정책 관료적 생각)그것이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거부반응을 보입니다(탄원서 제출).

달마스님께서는 ‘불립문자 교외별전이라’ 문자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겠지만 문자의 집착을 없애기 위해서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 오직 그대 마음이 바로 부처다. 마음만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마음만 깨달으면 거기에 모두가 다 들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당시에 스님들이 아주 시기심을 많이 냈습니다. 그것도 보통사람들이 아니라, 논장(論藏)들을 보면 그 당시 가장 훌륭하다는 광통율사(光統律師), 인도에서 들어오신 보리유지(菩提流支) 같은 분들이 법집(法執, 자기들의 생각만이 바른 정통이라 생각하여 정통시하고 다른 생각을 배척)하여 시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밑에 있는 분들이 달마스님을 여섯 번이나 독살을 하려고 했습니다. 얼마나 박해가 많았던가를 짐작할 수 있겠지요.

그 어른께서(김호석 교수) 중국(한국전통문화학교 회화전공 주임교수)에 들어오신 딴 뜻이 있겠습니까? 오직 자기 생명을 모조리 바친다 하더라도 중새제도하겠다는 뜻 이외에는 다른 뜻이 없는 분인데, 그런 분을 독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섯 번째까지 몸에 독이 안 받는 것입니다. 벌써 삼명육통(三明六通)을 통달한 분들은 ‘인연이 다 됐으니까 내가 가야겠다’해서 가는 것이지 독살하려고 해서 갈 수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섯 번째 까지는 독을 먹고 바위 위에다 대변을 누면 어찌나 독한지 바위가 빠개져 버립니다.

이렇게 독을 다 안 받았지만(명예를 회복하고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의 소명이 다할때까지는 달마와 같이 사역을 다해야함) 여섯 번째는 ‘중국에 와서 내가 할 일은 다 했으니 이제 인연이 다 됐다’하시고는 독을 그대로 받고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래서 입권하여 웅이산(熊耳山)에 묻었습니다.

그 뒤에 위(魏)나라의 송운(宋雲)이라는 사람이 사신으로 인도까지 갔다가 중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총령(蔥嶺), 지금의 파미르 고원을 넘어오는데 수염이 털털하고 늙수그레한 스님이 주장자를 어깨에다 척 걸쳤는데 집세기 한 짝이 걸려 있는 것입니다. 사람도 없고 반갑기도 해서 수인사를 하고 물으니까 달마라고 합니다.

송운이 위나라로 돌아와서 말을 들어보니까 달마스님이 이미 돌아가셔서 관에 넣어 매장했다고 합니다. 그가 이상하게 생각해서 달마스님 묘소를 파서 보니까 관 속의 시체는 간 곳이 없고 집세기 한 짝만 남아있는 것입니다.

예수만 부활한 것이 아니라 달마스님도 그야말로 부활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또 달마만 부활한 것이 아니라 우리 생명도 원래는 죽음이 없는 것이니까 사실은 다 부활입니다. 그네들이 저승세계를 잘 모르니 예수의 부활설만 말씀을 했겠지요.

이 뿐만 아닙니다. 완전무결한 인간이셨던 부처님 또한 온갖 고초를 다 당하였다. 다음의 내용은『마음, 부처가 사는 나라』(청화스님 문도회, 이fms아침, 2004, 13~14쪽) 에 나온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부처님같이 그렇게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이른바 삼아승지겁(三阿僧祗劫)을 닦아오신 성자는 아무런 고통없이 평생 잘 지내신다,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아요. 부처님 같으신 분도 당신 평생에 열 번이나 곤란한 경우를 겪으셨습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삼아승지겁을 닦아오신 분이기 때문에 아무런 허물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부처님을 가장 시달리게 한 사람이 자기 친종제 제바달다(提婆達多) 아닙니까? 제바달다는 종제이면서도 심지어 부처님의 생명까지 빼앗으려 한 아주 표독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의로운 사람, 타인의 삶을 축복하겠다는 큰 원력을 세우고 올바르게 사는 사람에게는 온갖 핍박이 달려든다. 그러나 시간은 모든 것을 바로 세운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말은 위로하는 말이 아니라 진리이다. 김교수님의 한국사회의 회화사와 암각화 연구에 남긴 족적에 시기심을 일으킨 사람들은 언젠가 다 자기가 그대로 받게될 것이다. 자작자수라 하지 않는가? 같이 해쳐먹는데 동참하지 않은(동업자 의식부족이 김교수의 죄목) 김호석 교수는 끼리끼리 짬짜미를 거부한 죄(정보공유를 할 수 없는 올곧은 사람이라는 인식으로 걸림돌이 됨)로 이 고초를 당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법은 법대로 가지만 우리 시민들은 이러한 부당함을 그냥 좌시하지 말고 세금을 내는 시민으로 공직에서 이런 부조리한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을 모두 자리를 내놓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 하나도 바로 잡지 못하면 우리 한국사회는 어디로 가겠는가?

불교에서는 정(定)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러면 정은 무엇인가? 정은 그 자리를 지속적으로 간단(間斷)없이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청화스님 말씀 P.241)

이렇게 균형잡힌 판단력이 부족하고 인물을 스스럼없이 조작하여(manipulation) 죽이는 학교를 운영하는 한국전통문화학교의 총장 및 교직원은 도대체 무엇을 믿고(문화재청 문화정책국?) 준동을 서슴지 않는가? 이번 MB정권이 가장 썩었다는 비판이 헛된 말이 아님을 믿게 하지 말라. 부분을q보면 전체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부분은 전체보다 조금도 작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썩었는가 문화재청이 한국전통문화학교가 썪었는가? 속이 곪으면 바람이 불면 넘어져 사람을 다치게 한다.

재학생 및 졸업생여러분! 자기가 배울 제대로 된 훌륭한 선생하나 지켜내지 못하고 뺏기고 휘둘리게 하는 학생집단이라면 앞으로 어떤 선생에 기대어 살려고 합니까? 부처님도 여섯분의 스승을 찾아 나선 끝에 결국은 스스로 득도하였습니다. 이제 길은 삼거리에 다다랐다.

In deep indignation

As you sow(자작), you shall reap(자수). You guys make it happen, then you will get the reward.

2011/5/19

하린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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