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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나에게 주는 졸업장

덕의동산 | 2010.01.28 09:28 | 조회 3789
 
***못난 나에게 주는 졸업장***
    내가 열두 살 때,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다. 어른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겠지만, 아이들에게 부모의 이혼은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우리 삼 남매는 아버지 슬하에서 자랐고, 나는 꽤 오랫동안 엄마를 찾지 않았다. 엄마가 없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들. 엄마가 없어도 꽤나 잘해 내고 있었기에 엄마라는 존재를 인식하지 않고 살았다. 그러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술에 취한 날, 함께 술을 마신 친구들이 이렇게 물었다“. 소연아, 어제 왜 그렇게 엄마를 찾았어?” 아마, 무의식 저 깊은 곳에 있는 나는 엄마를 잃어버린 열두 살의 아이로 남아 있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나는 취해서 그랬을 뿐이라고 애써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했다. 그러고 나서 또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엄마를 만난 것은 몇 번 되지 않았다. 대신 늘 언니한테 엄마 안부를 듣곤 했다. 그리고 욕도 많이 먹었다. 독하고 못된 계집애라고. 언니가“엄마한테 전화 한번 드려. 한번 찾아 봬.”하며 잔소리를 할때마다“알았어, 나중에.”란 소리를 달고 살았다. 한데 2년 전 어느 날, 문득 지금의 내 나이가 이혼했을 당시의 엄마 나이보다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나이의 나도 세상이 두렵고 이기적으로 여겨지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는데, 엄마는 오죽했을까. 그때 엄마는 벌써 세 남매를 낳았고, 행복은커녕 삶이 몹시 고달프고 힘들기만 했었다. 그러자 엄마는 나에게 엄마가 아니라 '나보다 어린 가여운 여자'로 다가왔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그리고 25년 만에 처음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색함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나는 엄마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졸업이다. 부모의 이혼이라는 유년의 상처에서 스스로 졸업했다. 이렇게 삶에서의 졸업장은 다른 누군가가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 수여해야 한다. 그래야 졸업이 진정한 다음 단계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삶 속에서 무수한 졸업을 해야 한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미움, 집착, 분노를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성숙시켜야 한다. 그것이 삶이라는 학교에서 배우는 진정한 졸업이다. 글/권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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