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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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운문사 중창주에 대해서

가람지기 | 2007.09.06 14:31 | 조회 2214

김미경님 감사드립니다.

세심하게 운문사 역사를 보시고 지적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타가 난 것을 다시 확인을 하지 않았네요. 청도문화원에서 나온 청도운문사 책을 살펴보니

운악화상은 성은 김씨이며 이름은 두안, 자는 운악이며 청도군의 신원동사람으로 기록에 의하면 어느 시기의 사람인지는 분명하지 않은데 [운문사만일회기'의 신유가 어느 때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운문사가람창건연대]에서는 운악화상이 오백전을 천보 10년(헌종5년, 1839)에 중수하였으며, 천보 11년(헌종 6년, 1840)에 응진전, 명부전,미타전, 내원암, 북대암 등을 중건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보 12년(헌종 7년, 1841)에 청신암을 창건하였고, 다시 천보 13년 즉 헌종 8년(1842)에 금법당을 중건하였다고 합니다.

이상에서 [운문사만일회기]의 신유는 철종 12년(1861)임을 유추할 수 있는데 앞의 만일회기에 나오는 오백라한당 및 종각과 전각 등은 [운문사가람중창년대]으 중건기록과 [도주지]의 응진전과도 일치함을 볼 수 있습니다. 운문사는 이처럼 조선후기 18세기 운악화상에 의해 다시 새롭게 사원을 정비하고 당우를 중건하는 등 사세를 확장하였던 것으로 기록이 되어있네요.

그러하니 운문사에 주석하였던 시기는 18세기이며, 활동시기는 1839년~1842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 김미경님이 어느 자료를 참조하셨는지 다소 기록의 차이가 있는 듯 하네요.

김미경님의 자료에 보면 운악화상의 주석시기는 19세기고 활동시기는 1860~ 80년까지 되어 있는데 다소 년대의 차이가 있는데 어느 자료를 참조하셨는지 알려주시면 확인하여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운문사에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더욱더 열심히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자료를 올리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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