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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동산 양계화상 사친서에 대하여...

가람지기 | 2007.10.27 10:35 | 조회 2677

자료를 찾아보니 청암승가대학 사집과 혜법스님이 불기2544년 서기2000년 청암지 25호(봄호)에 실린 원고입니다. 제목은 효에 관하여입니다. 또다른 질문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게시판에 올려주세요. 최대한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Ⅰ.머리말
효(孝)!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 한 구석이 찡하고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세월의 흐름을 먹은 지금 효에 관한 참의미를 새겨보려 한다.
이 세상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을때부터 효의 역사는 진행형을 시작하였고, 그의 걸음은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다. 그 장구한 역사를 가진 효에 관해 일반적인 의미를 알고 싶어 난 사전을 뒤적였다. 그런데 사전은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이라 하여 한 귀퉁이 한 줄 밖에는 그 베품을 허용치 아니하였다. 그 허탈감이란.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효일진데 그에 대한 우리의 대우는 너무도 야박하다.
세계의 흐름과 발 맞추어 그 시선 또한 동양에 초점을 두고 있다. 서양의 열강들은 동양의 신비주의 사상과 함께 인본주의 사상의 근원인 효에도 그 중점을 두고 있다. 전에 이런 말을 들은적이 있다. '서양의 시어머니들은 특히 우리 나라의 시어머니들을 부러워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우리의 며느리들이 효로써 시부모님을 잘 모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 불가에서도 효를 행하는 것이 예외가 될 수 없다. 속세와의 인연을 끊었다 하더라도 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낳고 길러주신 인연이 아니겠는가. 가까이서 모시며 돌봐 드릴 수는 없지만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는 일이야말로 우리들이 부모님을 위해 진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특히 만인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분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 동산 양계화상과 진묵 대사를 예로 살펴보고자 한다.
세상은 점점 가족의 중요성과 그 규칙을 깨려 하고 있다. 이때 우리는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Ⅱ. 동산 양계화상·진묵 대사
앞에서도 말했듯이 두 분은 후세의 많은 사람들에게 효로써 본보기가 되는 분들이다. 동산 양계화상이 그의 어머니께 바치는 '사친서'와 이에 어머니께서 회답하신 글은 유명하다. 동산 양계화상은 부모님의 은공에 보답코자 그리고 부처님의 말씀대로 사시고저 불도의 길을 택하셨다. 어머니는 출가를 말리셨으나 그의 신념이 너무 강하여 허락하시며 지옥고에 빠져있는 어머니를 극락왕생의 길로 인도한 목련존자와 같이 대도(大道)를 성취하라고 당부하셨다. 어머니로서 아들의 출가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진대 허락하신 것을 보면 아들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깊은지 또, 이에 보답하는 아들의 마음은 어떠한지 추측하지 않아도 느껴진다. 아들의 큰 뜻을 위해 어머니는 사랑으로 이를 극복하신 것이다.
또한, 진묵 대사가 어머니의 49제를 모실때 지은 글을 보면 그 효성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그 글은 이러하다.

열달 동안 태중의 은혜를 무엇으로 갚으리요.
슬하에서 3년 동안 길러주신 은혜 잊을 수 없습니다.
만세 위에 다시 만세를 더하여도
자식의 마음은 그래도 부족하온데 백년 생애에
백년도 채우지 못했으니
어머니의 수명은 어찌 그리도 짧습니까?
한 표주박을 들고 노상에서
걸식하는 이 중은 이미 말할 것이 없거니와
비녀를 꽂고 규중에 처하여 아직 출가하지 못한
누이동생이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단(壇)에 올라 불공을 마치고 단을 내려와 파하자
중들은 제각기 방으로 찾아 들어가고
앞산 뒷산만 첩첩한데
영령(英靈)은 어디로 떠났습니까?
아! 애닲도다.

열달 동안 배불러 낳아서 사람되게 길러주신 은혜가 하늘에 닿고 땅에 닿으나 사람의 목숨이라는 것은 한정되어 어머니는 기다려 주시지 않으니 이 어찌 서럽지 아니하겠는가. 진묵 대사의 글을 일고 모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그 어디를 둘러봐도 어머니의 '영령'은 어딜 가서 편안히 쉬실지, 살아 계시는 동안 정성을 다하여 모셔도 후회됨은 효일진대 가까이서 모시지도 못하였는데 일찍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슬프고 애닯았겠는가. 이처럼 진묵대사의 어머니에 대한 효가 지극하였으니 현세에까지 귀감이 되는 것일게다

Ⅲ.「효경」에서 본 孝
「효경」을 저술한 작가에 대한 자료는 분명치 아니하다. 공자의 저작이라는 설, 증자의 저작이라는 설, 공자와 증자의 문답을 다른 문인이 기술하였다는 설, 아니면 다른 사람의 저작이라는 설 등, 이에 관한 설은 다양하고 그 진위가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그 연대 또한 분명치 아니한데 진나라의 시황제(始皇帝)가 정책에 대한 비판을 금지 시키고자 책을 불사르고 학자들을 구덩이에 생매장한 분서갱유 때 사라진 「효경」은 한나라 때 이르러 협서(挾書)의 율(律)이 제거되었을 때 다시 세상에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 후「효경」은 고문과 금문의 두 가지로 만들어져서 양문의 시비가 논쟁의 쟁점이 될 만큼 쌍방의 지지자가 나누어지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중요한 것은 둘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들이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효경」에서는 효를 덕의 근본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부모 자식간의 사랑이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하면 그것이 곧 군자의 길이며 또, 그 사랑이 나라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하면 그것이 곧 애국자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어버이를 사랑하는 자는 남을 미워할 줄 모르고 어버이를 공경하는 자 또한, 감히 남을 능멸하는 일이 없다'는 말에서 연유한 것이다.
효란 가장 쉬운 부분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그 처음이 자기 신체를 보호하고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신체는 부모가 물려준 가장 큰 재산이요, 부모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지덕을 연마하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아니되고, 멀리 나갈때는 부모에게 그 사실을 알리며, 나가서는 자신의 부모를 욕되게 하고, 근심케 하는 행동을 삼가해야 할 것이다.
「효경」의 '규문장(閨門章)'을 보면 '아버지께서 부르시거든 즉시 대답하여 머뭇거리지 말며, 입에 음식이 있거든 이를 뱉어야 한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때에는 그 뜻을 살피고, 돌아가신 후에는 3년 동안 아버지가 하시던 일을 바꾸지 말아야 비로소 효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니라'고 하였다. 이처럼 효를 행함에 있어 그 방법이 까다롭고 엄한 것을 보면 부모의 사랑과 은혜의 깊이가 얼마만큼 깊은지 가늠할 수 있으리라. 부모님 살아생전에 효를 행함에 있어 극진하였다 해도 부족함을 느끼고, 돌아가신 후 후회를 하는 것이 세상일의 다반사이니 우리 모두 부단히 애써야 할 것이다.
「효경」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돕기 위해 그 내용을 조금 소개하고자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因天之時에 就地之利하고 謹身節用하여 以養父母하니 此庶人之孝也라.(하늘의 도를 쓰고, 땅의 이로움으로써 몸을 삼가고, 쓰는 것을 절도 있게 하여 어버이를 봉양해야 하느니, 이것이 庶人의 孝이니라.)"
서인은 중민이라는 뜻으로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을 말하되 상공업자들까지 포함하는 계급의 한 종류이다. 이 시대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구성되었고 이는 두 계급에게 서로 다른 효의 가르침을 주고 있다. 선비계층에게는 보다 엄중함을 강조하였고 서인 계층에게는 덜 하였다. 그러나 서인은 빈한한 가운데 정성으로 부모를 봉양하였기에 그 가치는 높이 살 만하다. 이는 논어에 "공자께서 가라사대, 빈천한 처지에서 효양을 다하는 것은 부귀로써 효양을 다하는 것보다 몇 배의 가치가 있다.”라고 말한데서도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서인뿐만 아니라 천자에 이르기까지 효는 시작과 끝이 없다. 부모의 사랑 또한 시작과 끝이 없으니 효가 그러한 것은 당연한 것일게다. 부모의 사랑은 자식의 학식이 뛰어나거나, 모자라거나, 용모가 출중하거나, 출중하지 못하거나, 덕을 갖추었거나, 갖추지 아니하였거나 그 깊이는 한결같고 영원하다. 아래로 흐르는 사랑이 충만하고 한결같을 때, 위로 흐르는 사랑도 또한 지극하고 열렬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완전한 효(孝)가 아닐까?

Ⅳ.「부모은중경」의 孝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왕사성의 기원정사에서 큰 비구 삼만팔천인과 보살마하살들과 함께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대중을 거느리고 남방으로 가시다가 마른 뼈 한 무더기를 보시더니 오체를 땅에 엎드려 마른 뼈를 향하여 절을 하셨다. 이에 아난과 대중이 부처님께 "만인의 공경을 받는 위대하신 세존께서 어찌 마른 뼈에 절을 하시나이까?"하고 사뢰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한 무더기의 뼈는 혹 전생의 조부모나 오랜 세월에 걸친 부모의 뼈일 수도 있을 것이니 내 지금 예배하였느니라."하고 다시 아난에게 이르셨다.
"네가 한 무더기 마른 뼈를 가지고 둘로 나누어 보아라. 만일 남자의 뼈이면 희고 무거울 것이며, 만일 여인의 뼈이면 검고 가벼우리라."
아난은 이에 의문을 품고 부처님께 다시 여쭈었다.
"죽은 후의 백골은 다를 바가 없사온데 제자로 하여금 어떻게 알아보라고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남자라면 세상에 있을 때 절에 가서 법문도 듣고, 경도 외우며, 삼보께 예배도 하며 부처님의 이름도 생각하였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 사람의 뼈는 희고 또, 무거울 것이며, 그러나 반대로 여인은 세상에 있을 때 정욕에 뜻을 두며, 아들을 낳고 딸을 양육함에 있어 한번 아이를 낳을 때마다 서말 서되나 되는 많은 피를 흘리며 여덟섬 너말이나 되는 젖을 먹여야 하느니 그런 까닭으로 뼈가 검고 가벼우니라.
" 이 말씀처럼 생명을 낳아 기르는 일은 힘들고 고된 일이다. 여인으로 태어나 어머니로 바뀔 때, 그들이 가질 수 있는 힘과 능력은 대단한 것이다. 서말이나 되는 피와 여덟섬 너말이나 되는 젖을 먹여야지만 온전한 생명인 인격체가 된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Ⅴ.「실화·설화」의 孝
옛부터 우리 나라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강조하고 중시하였으며 이는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이야기들 중에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효녀 심청이'를 들 수 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시대적 발상 착오로 현실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의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부모에게 효도를 행할 때 어느만큼의 정성으로 행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그리쉽게 판단할 수 만은 없다.
'효녀 심청이'는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하나 백범 김구 선생님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효는 현 시대를 살아 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큰 교훈이 되고 있다. 백범 김구 선생님외 많은 선인들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적은 글귀들을 접할 때마다 자신이 그러한 양 같이 슬프고, 기쁜 사랑을 느끼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있다. 그는 쉰 하나를 넘긴 조그만 가게의 주인으로 자녀 둘을 둔 한 집안의 가장이다. 만 16세가 되기도 전에 일손을 놓으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생업에 뛰어 들었다고 한다.
밑으로 5남매의 동생을 둔 그는 그때부터 금가공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당시는 기술을 배우려면 숙련공들의 잔심부름부터 그들이 시키는 것은 다 해야만 했다. 추운겨울, 더운 물 한 바가지도 없이 그들의 빨래를 하여 손은 부르트고 심지어 동상에 걸리기도 하였다. 제대로 된 담요 한 장 없이 콘크리트 바닥에서 자기가 일쑤였고 끼니는 선배들이 남긴 음식 찌꺼기가 전부였으나 부모님과 동생들에게는 제대로 된 옷과 음식을 먹였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지금도 변함없이 한결같다고 한다. 이렇게 주위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효행담을 접할때면 마음이 훈훈해 지기도 한다.
산업화와 분업화로 인해 우리나라의 대가족제도는 핵가족제도로 변하였고 이는 가족중심이던 우리의 사고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로 인해 자연히 부모에 대한 사랑은 사그라들고 자식에 대한 사랑은 지나칠 정도로 넘치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다.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더니 그 말을 반영하기라도 한 것인가.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Ⅵ.맺음말
앞에서 여러 형태의 효孝를 부족하나마 살펴보았다. '어느것이 더 진실되고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서 논의할 필요는 없다. 그 가치를 평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없다. 다만 얼마만큼 생활속에서 실천을 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불길속에서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들쳐업고 빠져나온 며느리의 이야기는 가뭄의 단비마냥 사람들의 가슴을 적셔주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운만큼, 어느새 불연佛緣을 맺은지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 바람만 불어도 달무리에 별빛만 가려도 어머님의 얼굴이 눈에 어린다. 스치는 풍경 소리에 눈물 짓고 뒤돌아 본 내 그림자가 작아 보이는 이유는 정성을 다 하지 못한 효孝때문이 아닐까? 산사의 해는 어느덧 저물고, 어머님 품속 같은 부처님의 세계로 매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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