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법문

아름다운 회향

가람지기 | 2007.04.20 13:35 | 조회 5295

“매화꽃 한 송이 피어남에 온 세상에 봄이 오는 줄 알고, 오동잎 한 잎이 떨어짐에 천하가 가을이 된 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梅枝片白 足知天下春 梧桐一葉 可知天下秋)

유난히 무더워 힘들어하던 여름철이 지나갔습니다. 지구 한 쪽에서는 거대한 홍수와 태풍으로 소중한 생명과 막대한 삶의 터전을 잃기도 했던 여름이었습니다. 이제 완연히 서늘해졌고 훌쩍 높아져버린 하늘은 한층 더 투명해졌습니다. 가을은 유난히 귀가 민감해지는 계절인 것 같습니다.

한결 맑아진 공기 덕분에 먼데 소리도 가까이 들리고 깊숙한 내면의 소리에도 귀 기울여지는 계절입니다. 저녁 예불 길에 발끝에 차이는 후박나무 잎은 가벼운 바람에도 서걱거리며 풍요로웠던 여름철의 풍모를 안으로 거두어들입니다.

이렇게 그것이 무정물이든 유정물이든 자신의 무게를 헤아려 보며 안으로 향하게 하는 이즈음,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回向이라는 말과 그 행위에 대해 더 생각나게 합니다. 회향이란 廻轉趣向의 준 말로, 자기가 닦은 선근 공덕을 다른 중생이나 자기의 佛果에 향하게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보통 세 종류의 회향이 있는데 첫째, 衆生回向은 자기가 지은 선근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이고, 둘째 菩提回向은 자신의 선근 공덕을 회향하여 깨달음의 덕을 성취하려고 趣求하는 것입니다. 셋째, 實際回向 역시 자신의 공덕으로 열반을 趣求하는 것으로 보통 回向三處라고 하지요. 결국은 上求菩提 下化衆生의 自利利他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씨앗이 열매를 맺듯이 원인이 있으므로 결과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행위 하나 하나는 반드시 그 결과를 낳기 마련입니다. 농부가 갈은 땅에 사탕수수와 소태나무 씨앗을 심었습니다. 두 씨앗은 똑같은 땅에서 같은 물과 햇빛과 공기를 받으며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사탕수수는 단맛을 가진 섬유조직으로, 소태나무는 쓴맛을 가진 섬유조직으로 자랐지요. 그 원인이 자연 환경 때문일까요? 아니면 절대자의 선택 때문일까요? 그저 자연의 순리에 따를 뿐입니다. 자연은 오직 씨앗의 특질이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도왔을 뿐입니다.

가을은 열매를 맺고 회향하는 계절입니다. 가을에 영그는 모든 열매에 씨앗이 있듯, 우리 모두에게 부처의 씨앗이 있음을 압니다. 나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다른 이의 소리에도 귀 기울이며 잘 영글어 가고 있는 가을의 모든 열매들처럼, 나는 이 가을 잘 영글어가고 있습니까? 그래서 나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모든 이웃들에게 아름답게 회향하고 있습니까?

불기 2549년 가을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