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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 온누리(法界) 명성(明星) 스님 - 전국 비구니회 회장

가람지기 | 2008.11.05 11:02 | 조회 6058
[죽비] 온누리(法界) 명성(明星) 스님 - 전국 비구니회 회장
"진흙 속 뿌리 내리는 선연한 꽃 모두 그 연꽃처럼 살아 가야지요"
땀과 눈물 흘리지 않고 겉모양에 집착한다면 얻을 수 있는 게 어디 있나
부산일보 2008/04/26일자 015면 서비스시간: 16:36:33

사진 설명: 한국 비구니들의 어머니이자 엄한 스승인 전국 비구니회 회장 온누리 명성 스님. 강원태 기자 wkang@busanilbo.com
"모두가 연꽃처럼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연은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잎을 키워 맑고 선연한 꽃을 피우지 않습니까. 세상살이가 고되고 험난하다 해도 물방울에 적셔지지 않는 연잎처럼, 세찬 바람에도 흩날리지 않는 연꽃처럼 맑고 밝게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각자의 가슴 속에 한송이 연꽃을활짝 피우는 희망을 지니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경북 청도 운문사 회주이자 전국비구니회장 이신 온누리 명성(明星·77) 스님. 스님은 불교용어 법계(法界)의 우리말인 '온누리'를 당신의 법호(法號)로 쓰신다. 오늘의 운문사 대가람을 일구고 강원을 통해 1천여 명의 인재를 길러내어 운문학맥의 초석을 다진 스님은 여성출가 수행자인 비구니 스님들에게는 자상하신 어머니이자 엄하기 그지없는 스승이다.

▶명성 스님은?

1952년 출가하여 해인사에서 선행 스님을 은사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받았다. 58년 성능 스님으로부터 전강(傳講). 선암사·청룡사 강사를 거쳐 70년 운문사 강사, 운문사 주지(77~98년) 조계종 종회의원(70~98년) 구족계 별소계단 전계화상(2001~03) 역임. 현 전국비구니회 회장·운문사 회주 겸 운문승가대학원장.

자신의 노력없이 얻는 것은 없다

"무엇이든 쉽게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눈물과 땀을 흘리지 않고서 얻는 게 어디 있습니까. 우리 사회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들여야만 하는 노력과 방법의 정당성, 절차 등은 무시하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가치가 팽배하여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은 그들의 성공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번드레한 결과에 사람들은 현혹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진실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많은 경우 그것은 거짓과 타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56년을 수행자로서의 외길을 걸어왔다

스님은 1952년 해인사에서 선행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이래 반백년 넘게 출가 수행자로서의 외길을 걸어왔다. 젊은 시절 어른 밑에서 수행할 때엔 고된 생활에 혼자서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한다.

절집의 일과는 세상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한밤중 오전 3시에 시작된다. 취침은 밤 9시. 예불·강의·청소·울력 등으로 종종걸음을 치다보면 하루해가 어찌 지는 지도 모르고 나날을 지냈다고 한다. "한 30분만 더 잤으면…" 그 때 스님의 심정은 그러했단다.

스님은 지금은 대강백이시다. 불교 경학연구에는 스님만큼 해박한 분이 없다는 말을 듣고 있다. 그런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혼신을 다한 정진이 있었다.

"제가 공부할 때는 지금처럼 학교강당 같은 시설이 없었어요. 맡은 소임을 끝내고 비구 스님인 스승에게 가서 경학을 공부했지요. 공양주 소임을 보면서 밥 지어 올리고 설거지를 끝내자마자 책을 들고 스승에게 달려가는 겁니다. 절구에 벼를 넣고 찧어 쌀을 가리고 불쏘시개 하기 위해 갈비(낙엽진 솔잎)를 긁으러 산을 헤맸지요. 장마철이 되면 덜 마른 솔가지로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하니 여간 고생이 아니었습니다. 굴뚝에서 아궁이로 내려치는 바람이 불 때면 그 연기에 눈·코가 맵고 시려 눈물깨나 짰지요."

스님은 당대 고승인 성능·명봉·탄허·관응·운허 스님에게서 두루 배우고 익혔다. "초학과정인 '초발심자경문'을 일만 번 읽으라 하셨는데 3천 번 읽고 그친 게 못내 아쉽습니다."

기초에서부터 난해한 경전에 이르기까지 두루 공부한 스님은 동국대에 진학, 철학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스님이 대학에 다닐 때에는 서울 숭인동 당신의 처소에서 필동에 있는 동국대까지 수㎞ 되는 거리를 걸어 다녔다고 한다.

방석을 슬그머니 밀어주시며 거기 앉으라 하셨다. 그게 스승이 주신 전강의식이었다

1958년 27세 때 스님은 스승 성능 스님으로부터 강맥을 이어받았다. 스승이 제자의 학문 성취를 인정, 강맥을 전해주는 의식은 요즘은 성대하게 치른다. 당시에도 격식을 갖춰 법도에 맞게 행했다.

그러나 스님의 스승이신 성능(통도사·해인사 강주 역임) 스님은 제자를 곁에 앉게 하고 방석을 슬며시 건네시며 그 위에 앉으라 했다. 제자를 당신과 나란히 앉게 하신 것이다. 그게 여러 스님 앞에 당신의 제자가, 이제 한 스승으로서의 훌륭한 자격을 갖게 되어 강맥을 물려주어 이어가게 하려는 뜻임을 대중 스님에게 알린 것이다. 명성 스님은 당시의 소회를 이렇게 말한다.

"스승께서 보여주신 그 날의 전강자리는 그 어떤 호화로운 것보다 더한 것이었습니다. 내겐 그래서 더 무겁고 고귀하여 가슴 벅찬 자리였습니다."

스승의 그런 뜻을 깊게 간직한 스님은 그 이후 50년을, 스스로 더 공부하고 후학을 지도하는 데 스승의 무언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을 것을 명심하고 있다한다.

모든 일을 성실하고 진실되게 해야

스님은 늘상 모든 일을 성실히 하고 진실되게 하라고 강조한다. 즉사이진(卽事而眞)이라는 한문을 우리말로 풀어 쓴 이 말은 성심으로 하지 않은 일은 진실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일을 할 때 스스로 그 일에 마음을 다 하지 않으면 일이 바르고 잘 되지 않음은 물론이요, 또한 진실되지 않음은 당연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성심을 다해 진실되게 하는 일이야말로 스스로를 만족시키고 다른 이에게도 감동을 주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겉모양만 번드레해서는 그 실속 없음이 이내 드러나게 되고 그렇게 된 일은 하등의 이익을 자기나 남에게 줄 수 없다는 말씀이다.

비구니 위상을 국내 외에 드높이다

스님은 내전(內典:절에서 공부하는 불교전통과정)을 두루 거쳤고 외전(外典:사회의 일반 대학의 전공 과정)까지 겸수했다. 지난 해 조계종 사상 처음으로 열린 '비구니 법계 품서식'에서 비구니 최고의 법계에 해당되는 '명사'에 품서되어 존경받는 큰 어른이 되셨을 뿐 아니라 해외에까지 알려져 한국 비구니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스님은 부산에서 제정된 '일맥재단 사회봉사상'을 지난 2004년 수상했고 올해에는 운문사 승가대학과 중국 명문대인 칭화(淸華)대학교와 학술교류 협정을 맺었다. 이로써 운문사 승가대학을 졸업한 스님은 칭화대 대학원에 우선적으로 입학이 허락되게 했다.

칭화대는 베이징에 있으며 1911년 개교했다. 중국관리과학연구원이 발표한 2006 중국대학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대학이다. 현재 국내 승가대학은 비정규 교육기관으로 졸업을 해도 국가로부터 학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따라서 승가대학을 졸업한 비구니스님들은 국내 대학에 진학함으로써 학력을 인정받아왔다. 그런 상황에서 운문사승가대학과 중국 칭화대와의 이번 학술교류협정은 비구니 학인들을 크게 고무시킬 뿐 아니라 국내 승가대학의 위상을 한결 돋보이게 한 일이다.

스님은 19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종교지도자대회에 참석했으며 2001년엔 스리랑카 'Sasana Kirthi Sri' 공로상을, 올해는 지난 3월 태국 방콕에서 UN 국제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지위 향상을 위한 협회(Association for the Promotion of the Status of Women)가 수여하는 '탁월한 불교여성상(Outstanding Women in Buddism Awards)을 받았다.

자기 행동보다 말이 지나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스님은 '자기 행동보다 말이 지나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라(恥其言過其行)'는 글귀를 후학들에게 늘상 말씀하신다. 말부터 앞세우거나 스스로의 실적을 부풀리는 일, 사실보다 과장되게 포장된 말들이 많이 나도는 우리 사회에 스님의 이 말씀은 출가수행자만이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따끔한 한마디다.

이진두 객원기자 bibbab@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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