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보살의 서원 _ 종욱스님

가람지기 | 2010.11.11 07:28 | 조회 3855




보살의 서원


사교가 되어 금당에서 발우를 펴니 하루하루가 새삼 다르게 느껴집니다. 금당 바깥채 쪽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비로전과 오백전이 가장 매력적이죠. 대웅전과 또 다른 풍경을 가진 비로전.
작년까지 멀게만 느껴졌던 비로전이 지금은 마치 인법당처럼 친근하기까지 합니다.

비로전에 계신 또 다른 보살님.. 다들 아시죠?

천장에 외줄을 타고 대롱대롱 매달린 악착보살. 그 악착보살을 보고 있자면 저는 몽실몽실 떠오르는 한사람이 있습니다. 악착같고 억척스런 저희 보살님인데요 보살님과 저의 이야기를 조금 해드리겠습니다.

저희 보살님은 소위 말하는 치맛바람 일으키고 다니는 엄마였습니다.

귀한자식 공부 좀 시켜볼라하던 애살이 불법을 만나면서 기도에 대한 욕심으로 바뀌어 저를 피곤하게 만들었습니다.

왜그리 싫던지 보살님이 기도하러 가자하면 약속있다 피곤하다는 둥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요리조리 빠져나가기 일쑤. 속된말로 저는 뚜껑열리게 하는 재주를 부리곤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출가해서 지금까지 저의 보살님의 공덕이 참 크고, 또 감사한 마음이 무량하지만 그 당시에는 보살님의 집요한 욕심 때문에 “사는 게 참 피곤하구나.”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결국 저는 보살님의 소원대로 산사람 소원한 번 들어주자는 마음에서 기도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절에 찾아가 만난 주지스님과의 첫 만남.

마치 무엇에 홀린 것 마냥 대뜸 “삼천배 기도 할께요.”라고 대답해버리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주 많은 후회를 했습니다.

헌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여태껏 살면서 진짜 뭔가를 열심히 최선을 다했던 적이 없었다는 생각과 이번에 한 번, 후회없이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절기도.

처음엔 적응기간이라며 천배부터 시작하라고 주지스님께선 부담을 덜어주시는 듯하더니 500배씩.. 1000배씩 엄한 스님의 지도아래에서 소심한 저는 반항 한 번 하지 못한 채 절의 수량을 늘려 나갔습니다. 아무런 반항도 못한채..

하루, 이틀... 사흘, 나흘... ,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감으로 시작된 기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보름정도 지난날의 이른 새벽이었습니다.

매일 같이 필사적으로 귀를 틀어막고 들으려 하지 않았던 보살님의 말들이 귀에 환청으로 들려왔습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 그러면 정말 감사할 일이 생겨.. 일체 중생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고, 부처님 시봉 잘하고 항상 제일 낮은 사람 되겠다고 발원하며 기도해라.”

순간 제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이 기도는 누구를 위한 기도인가..’ 그날부터 시간의 흐름을 잊고 한 기도는 순식간에 지나갔고 기도 회향을 원만히 했습니다.

이 기도를 계기로 제 심경에 많은 변화가 생겼음은 물론이지죠.

하지만, 기도의 회향을 기뻐할 새도 없이! 보살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출가를 강요하며 저를 들들볶기 시작했습니다.

“세속에 살아봐도 별거 없다. 출가만이 살길이다.” 라면서 저를 옥죄었습니다. 숨이 막혔습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보살님의 ‘속득출가’를 내걸은 용맹정진!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다고 귀에 딱지 앉도록 출가권유를 계속 듣다보니 부담을 느끼면서도 저도 모르게 차츰 출가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가을 어느 날에 갈대처럼 흔들리던 마음을 정리하고 저는 지금의 은사스님을 찾아가 출가를 하였습니다.

저는 이렇게 출가를 했습니다.

부처님께선 깊은 밤 자신의 성을 뛰어넘어 야반도주의 결연한 발심출가를 하셨고, 여타 스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나름의 뜻을 세워 출가하였다는데, 오히려 저는 기도 안하겠다고 뻐팅기다가 기도하고, 출가 안하려고 도망다니다 결국 출가를 했습니다.

부처님을 연모하며, 못난 자식이 부처님과 같이 되길 바라는 보살님의 큰 서원에서 시작되어 또 악착같은 보살님의 기도 덕분에 결실도 맺었습니다.

철이 조금 들었나봅니다. 이제는 보살님께 마음깊이 감사하며, 저 또한 저와 같이 불법을 등진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는 보살이 되겠다는 큰서원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출가 전, 시간을 아껴가며 신심나게 했던 기도가 이제는 퇴색되어 타성에 젖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다시금 첫 발심의 마음을 되짚어보니, 느껴지는 것이 많습니다.

“나의 처음 마음은 어디로 갔나?”

새순이 돋고, 낙엽이 떨어지고, 눈이 내리고..

해를 거듭할수록 크고 또 작게 알아지는 것이 많습니다.

이 몸 받게 해준 부모님의 은혜, 또 큰 서원과 지극한 기도 앞에서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 없다는 것.

부처님께서는 절대적으로 기도에 감응하신다는 것! 그 가피는 저와 같이 어리석은 중생을 구제한다는 것!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 200여명이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삭발염의를 하고 이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여러분과 또한 저 자신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봅니다.

우리는 무엇을 구하고자 합니까? 어떤 서원을 품고 계십니까?

저마다 어렵게 선택한 길. 우리는 지금 순간을 열심히, 더욱 정성스럽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대중스님 여러분 삶 속에서 열심히 기도 정진합시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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