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선지식_덕우스님

가람지기 | 2010.12.29 18:43 | 조회 4472



선 지 식



선지식이 나를 깨웠습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벌떡 일어서는데는 아직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중입니다. 졸린 눈을 자꾸 비벼봅니다. 초롱초롱한 눈동자의 광명이 청정의 허공에 빛을 드리우기 시작합니다. 환한 그 빛은 태양보다 뜨겁고 빛나는 것 같습니다. 지금 행복합니다.

고마워요. 선지식!

안녕하십니까? 화엄반 덕우입니다.

여자애가 말합니다.
“제가 미쳤어요? 제가 왜 산에 들어가 중이 돼요? 싫어요.”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산중 절 큰 방의 제일 높은 단상 위에 앉아 삭발염의하고 200명 가까이의 대중스님들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아이가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왜 여기있냐구요?

선지식이 제 뺨을 세게 때렸습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거든요. 그리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대중스님 여러분들은 평소에 자신의 선지식은 누구라고 생각하며 사십니까? 아니면 내게 선지식은 없다고 말하시렵니까?

출가하기 전 동생의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어떤 스님이 말했습니다. “동생은 큰 선지식이예요. 언니 출가시키려고 먼저 세상 떠난거야. 그러니까 자꾸 괴로워만 하지말고 공부해야 돼.”

동생은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아이였습니다.

그렇게 영원한 이별이 될 거라고 귀뜸도 해주지 않고, 한줌재가 되어 바람결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슬펐습니다. 허공을 하염없이 바라 보면서 물었습니다.

“너는 어디로 갔니? 이 세상에서 아주 없어진거야?” 이건 꿈일거라며 제 얼굴을 마구 꼬집어보았지만 아픔을 느끼고 있는게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이후로도 그 현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동생의 영혼이 어디에 있을거라고 생각하면서 죽음의 비밀에 대해서 계속 물음표를 던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집 서고에서 무심히 지장경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책표지의 보살님을 바라보다가 책장을 건성으로 넘기고 또 넘겼습니다. 빠르게 넘기기만 하던 손이 그만 멈추었습니다. 제 두 눈동자가 고정되었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하더니 소리내어 흐느껴 울었습니다.

‘지장보살님께서는 지옥문전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계신다. 고통스러워하는 저 지옥중생들이 모두 성불하기 전에는 나는 성불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목숨이 붙어있는게 생지옥이었던 저는 마치 그분께 구제된 지옥중생같았고, 원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자비로운 지장보살님. 당신을 스승으로 모시고 당신의 제자가 되어 저처럼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당신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인생이 무상함을 알았고, 지장보살님을 만나게 되어 제 인생의 원을 세우고, 출가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동생은 정말 제 인생의 큰 선지식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쯤이면 여러분들의 선지식이 떠오르십니까?

그런데 명심하십시오. 흔히들 말하는 성불. 도통의 길을 설명해주시는 분만이 큰 선지식이라는 집착을 내려놓으셔야만 할 겁니다. 그래야만 조용한 침묵 속에서 때로는 운문사의 활발한 일상생활 속에서 항상 선지식들이 ‘저 중이 언제쯤 나를 알아볼까?’ 눈웃음치면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대로 멈췄다!’ 노래하고 있었음을 깨달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출가 후에도 많은 선지식들을 만났고, 지금은 학장스님, 주지스님, 강주스님 그 외 어른스님들 저의 애도반 55명 화엄반 스님들, 상반스님들에게 불만 있어요 하고 뚱한 표정 짓고 다녀도 소중한 아랫반 스님들, 그리고 운문사의 일체 유정무정의 영혼들이 저의 모든 선지식입니다. 너무 많다구요?

기억나십니까? 올 여름철 설우스님께서 육조단경 법을 설하실 때 반복하고 반복하셨던 이름이 있었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진리 그 자체여서 그 눈부시게 밝고 청정한 허공이 공공적적하게 본래 구족되어 있거늘, 우리들은 무명번뇌의 집착으로 겹겹이 쌓여있어 깨닫고 있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간절하게 크게 부릅뜬 그 초롱초롱한 눈동자들이여
운문사 천지 사방의 허공을 응시하십시오.
그러면 그 눈부신 진리의 광명이 보이실겁니다.
그 이름은 선지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끝으로 화엄경 입법게품에 나오는 선재동자의 찬탄게송으로 차례법문을 마칠까합니다.

선지식을 보기만 하면 그지없이 깨끗한 법을 모으며
여러 가지 죄를 없애고 보리의 열매를 이루리라

대중스님여러분 정진여일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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