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소통을 외치다 _선하스님

가람지기 | 2011.07.08 11:13 | 조회 3328



세상의 중심에서 소통을 외치다

사교반 선하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수행자가 세상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얼마전 불교신문에서 미황사 금강스님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하나 내셨더군요. 개인적 인연으로 오래전에 알고 지낸 분이긴 합니다만, 최근 그분의 행보는 저를 참 놀라게 합니다. 그 당시 미황사 불사를 위해 직접 포크레인을 운전하시던 금강스님은 늘 미소 띤 얼굴로 지내셨죠. 벌써 시간이 8여년이나 지났네요.

미황사는 이 땅 남쪽의 맨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사찰입니다. 서울에서 이른 아침밥을 먹고 출발해도 저녁 때 맞춰 그곳에 도착하긴 쉽지 않은 일이죠. 물론 그곳은 오래된 역사와 더불어 달마산을 뒤에 두고 앞으로 남해가 보이는 풍광을 가지고 있어 여느 천년 고찰의 아름다움에 뒤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황사는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폐사에 가까운, 퇴락한 ‘옛 절’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미황사를 찾는 사람은 10만명을 웃돕니다. 미황사의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연간 5000명이 넘는데요. 전라도 지역 어느 사찰도 채우지 못한 기록적인 숫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가을의 산사음악회와 괘불재는 그곳이 궁벽한 산골의 작은 절임에도 불구하고 2000명 이상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듭니다. 여름에 열리는 어린이 한문학당은 신청자가 많아 돌려보낼 정도랍니다.

그 비결이 뭘까? 과연 금강스님의 어떤 원력이 이런 성과를 이루어냈을까? 스님의 인터뷰 중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구요. 하지만 그들에게 해 준 것이라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차 한잔을 대접한 것 뿐입니다. " 또 미황사는 모든 행사에 지역민들을 주인공으로 세웠습니다. 화려한 볼거리보다는 이 행사의 주인은 누구인가에 골몰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성공요인이 아닐까요?"

금강스님을 보면 사찰은, 그리고 종교는 세상과 어떤 형태와 방법을 통해 소통해야 하는지를 깊게 생각해보게 합니다. 제가 사는 곳은 서산시 도시 중심입니다. 시민공원이 있는 곳에 위치한 절이라 등산객이나 운동하는 시민들이 참 많습니다.
걸어서도 시청에서 15분 정도 거리이니 신도님들이 오시기에 참 편리한 위치랍니다. 저희 스님께서 깊은 산골에 있는 천년고찰과 현재 저희 절을 두고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고민하실 때 문화적 여건이나 포교면에서도 도시가 낫지 않을까 하고 제가 강력히 주장해서 서산으로 왔답니다.

근데 막상 와보니 조그만 관음전 하나와 요사채 하나 덩그러니 ....
지붕에서는 비가 세고 상수도도 없어 샘물을 퍼 써야 하고, 정랑도 물이 모자라 시민들이 사용하는 공공화장실을 써야 할 때가 더 많습니다. 대처스님이 오래 계시던 절이라 절이라기보다는 일반 살림집처럼 보였습니다.

그래도 신도님들이 많이 계시니 도와주시지 않을까 했는데요. 주지스님이 바뀐 것에 불만을 품으신 신도님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은사스님과 저 둘이서 도량대청소에 들어갔습니다. 한달을 청소만 한 것 같네요. 이젠 어떻게 신도님들에게 다가 가야할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은사스님께서는 "선하야,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단다. 우리 묵묵히 기다려 보자꾸나."

그리고 첫 초파일을 맞았습니다. 신도님들의 텃세로 힘들게 준비한 초파일을 끝내고 난 저녁, 우두커니 법당 앞에 앉아계시던 저희 스님의 뒷모습을 잊을 수가 없네요. 그러나 스님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최악의 상황에도 역발상으로 저희 절의 장점을 살리시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언제라도 쉽게 올 수 있고 늘 열려있는 주지실이 그 것이었습니다. 고민거리를 들고 와도 되고 장보고 가는 길에 차 한잔 마시면서 스님과 이야기 할 수 있는 따듯한 도량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신도님들 사이에서도 점점 소문이 퍼져, 그 동안 오고 싶어도 주지스님의 시간에 맞추기 어려워 못 오던 절에 한사람 두사람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방학 때 집에 가면 쉬고 싶어도 노상 들어닥치는 손님들 덕에 쉬지 못 할 때가 더 많습니다. 밤늦은 시각에도 직장에서 퇴근하고 가는 길에 스님 보고 싶다고 오시는 분들도 많거든요.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이 시스템에 불만이 불거져 나올 때쯤 한 어린남자아이의 49재가 들어왔습니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죽은 아이의 부모님은 상담하다가 실신하기까지 하셨는데요. 아이의 엄마를 부축하시며 울고 계시는 스님을 봤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제 빰을 타고 흘러 내렸습니다. 진정으로 정성스럽게 마음으로 그들을 껴안은 저희 스님의 모습은 제 못된 마음을 박살내버리셨습니다.

그들에게 해결방안을 주진 못하지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야 말로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아니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닐까요? 아이의 49재가 끝나고나서도 그분들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져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달려와 주시는 신도가 되었습니다. 인연의 고리는 계속 이어져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36년 만에 처음으로 개금불사를 회향하게 되었습니다.

" 제가 이곳에 온지 벌써 2년이 되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십시일반으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여기서 한일은 예불하고 기도하고 도량을 청소하고 신도님께 인사를 많이 드린 것밖엔 업네요. 이 절은 바로 신도님들이 하나하나 손수 불사를 하신 절입니다. 법당에서부터 범종, 집안 가구에 이르기 까지 신도님들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습니다.

제가 언제까지 이곳에 살 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 절이 존재하는 한 이 곳은 여러분의 절이요, 쉼터요, 또 스님들은 여러분의 가족입니다. 오늘의 이 벅찬 가슴, 이것만 기억해 주십시오.
" 제 눈에 고이던 눈물과 그 곳에 있던 모든 분들의 눈물은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금강스님이 그렇게 해 오신 것처럼, 저희 스님이 지금 하고 계시는 게 다르지 않을 까 합니다. 이와 같이 누구에게나 평등히 대하고 진심으로 마음으로 세상과 소통한다면 부처님의 한없는 자비의 은혜가 만방에 드날리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 부족한 제 법문에서 작은 감동이나마 전해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더운 여름 건강히 지내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저는 이 세상 중심에서 소통을 외쳐봅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정진여일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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