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대저 중노릇하는 것이....- 덕인스님

가람지기 | 2010.06.27 12:59 | 조회 3607

‘대저 중노릇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리요. 잘 먹고 잘 입기 위해 중노룻하는 것이 아니며 부처되어 나고 죽는 것 면하고자 하는 것이니...’

중노릇 하는 법 중의 한 구절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덕인입니다. 저는 오늘 대중스님들께 출가해서 조금씩 변화되고 있는 저의 생활을 들려드릴까 합니다.

운문사에서는 누구도 피해갈수 없는 차례법문이라 했던가요 반스님들이 법문을 준비할때면 ‘편하게 써어~’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예기를 했건만 막상 제 차례가 되고 보니 ‘차례법문 울렁증’이 생겨 버렸습니다. 1년 반이나 같이 살아온 반스님들 앞에서조차 발표하는 것이 떨리는데 이렇게 많은 대중스님들 앞에서야.

제가출가라는 것을 생각하고 집을 떠나올 때는 어디 잠시 여행가는 것처럼 “나 내일 출가한다라”는 말만 했습니다. 오빠 처사님은 “니가 부럽다 잘 살아라”라는 말이 다였구요 주변에서도 왜? 라는 반응보다는 다들 공부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말을 들으며 아주 씩씩하게 떠나왔습니다.

저조차 출가라는 것이 그저 길 잃고 방황하다 나의 목적지로 가는 길을 찾은 것처럼 편안했다고 할까요?

그런데 출가를 하고보니 출가라는 것이 잠시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먹고 자는 생활에서부터 익힐 것은 왜 그리 많던지요.

그 중에서도 입에 익지도 않은 ‘스타타 가토스니삼...’ 으로 시작하는 능엄주. 길고 긴 끝도 없이 넘어가는 페이지를 보면서 그걸 외우라니...스님들이 농담으로 하는 말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발음도 꼬여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그 능엄주를 한달 안에 외어서 강을 바쳐야 한다는 겁니다. 정말 머리를 얼마나 쥐어 박았는지 모릅니다. 새벽 예불 때마다 줄줄줄 외워대는 스님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제가 늦은 나이에 출가한데다가 외우는 것은 대략 난감이었거든요. 또 일곱분이나 계시는 노스님들의 얼굴 익히는 것은 또 어찌나 헷갈리던지요.조금전에 분명히 제 앞을 지나가셨는데 뒤돌아서니 똑같은 노스님께서 웃고 계시는 거예요.얼떨결에 씩 웃으면서 인사를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전혀 딴판이신 노스님들이 왜 비슷하다고 생각했는지 그저 우습기만 하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행자 생활을 거쳐 계를 받고 보니 은사스님께서 “왜 출가했어요?‘ 라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순간 전 멍했습니다. 왜??? 대답을 못했습니다. 당당하게 내가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하고 왔지만 내가 하고자 했던 중심선을 잊고 생활에 묻혀 살아가는 저를 보게 된거에요. ‘야! 이놈아 정신차려-’ 라고 호통치며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랄까요. 그 후로 전 기도하기전 제가 가야 할 길을, 하고자 하는, 꼭 해야만 하는 이 공부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지혜를 구하는 발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끔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때면 전 노스님을 찾아뵙니다. 힘들 땐 투정을 부릴 요량으로 찾아가지만 한 번도 힘들다고 말해 본 적은 없습니다. ‘노시님~’하고 문을 열면 “누꼬? 덕인이가?” 라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냥 모르게 놓아져 버립니다. 투정도, 속상함도, 미칠 듯이 솟구치던 화들도... 이상하죠? 그래서 저도 모르게 짠~ 하고 양손에 브이를 그리며 아주 어설픈 애교를 떨면 노스님께서도 어이없는 웃음을 보이시죠. 그 웃음을, 그 눈을 바라보면 한줄기 청아한 바람이 감싼듯한 평온함. 말로 표현 못할 그런 기운이 저에게 젖어 들어옵니다.

은사스님께서 ‘노스님 곁에 있을 때 잘하고 잘 배워라’ 는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노스님, 은사스님 곁을 떠나 강원에 와보니 절절히 이해가 갑니다. 평소의 생활하시는 모습들이 수행이라는 걸 떨어져 있고나서야 알게 된 거죠. 지금은 강원이라는 또 다른 대중속에서 또 다른 많은 모습들을 바라보며 좌충우돌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지금. 혼자 덩그러니 놓여져 무엇보다 나의 두드러진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금방이라도 공부가 익을 것만 같은 자만심. 공부가 절로 익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다듬질 하고 깎아내는 과정이란 걸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강원에 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잘 몰랐을 겁니다. 방학 때 집에 가면 보살님들이 “스님 참 단단해지셨으예~”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그냥 지나가면 은사스님께서 직역을 해 주십니다. 철이 들어가는 거라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제가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서서히.

그 일등 공신들이 바로 저희반 스님들이죠. 유난히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일도 많았던 ‘것’처럼 느껴지던 1년. 지금도 모이기만 하면 왁자지껄 시끌벅적하는 우리반 스님들이지만 강원에 와서 얻은 36개의 원석들이랍니다. 아직까지 모두 제 빛을 숨기고 발산시키지 못하고 있지만 그 환한 에너지들이 감춘다고 감추어지겠습니까. 제가 워낙 무뚝뚝하고 소심한 편이라 서로 챙겨주고 살펴봐 주는 것이 참으로 어색하기만 하더니 아주 쬐끔이지만 챙길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가끔 소리를 빽빽 질러대는 저를 “또 뭐야” 라는 짜증이 아닌 애교섞인 웃음들로 사오정 같은 엉뚱스런 반응들로 저를 폭소 터트리게 하죠. 그렇게 단점도 많고 까칠한 저의 성격들을 그대로 받아주고 장점으로 하나씩 고쳐주는 우리반 스님들 정말 근념하셨습니다. 스님들이 제 곁에 있어 제가 이렇게나마 강원에서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출가라는 것. 중물이 든다는 것이 과연 무엇이냐고 물어온다면 딱 꼬집어 이것이오 라고 답을 하진 못합니다. 삭발한 머리가 조금 자랐다고 덥수룩해 보이고 장삼을 수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조심스러워지는 몸가짐 이런 것들일까요? 서장에서 [함원전 안에서 장안이 어디요 ]묻는다 했습니다. 출가라는 것 떠나보고 나서야 그 가치를 알게 되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덕인이는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후덥지근한 날씨에 많이 지치시죠? 시원한 청량음료 같은 치문반 스님들을 보며 사집반 스님들의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긴 맛있는 야채들을 드시며 이 더운 여름 건강하고 알차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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