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반병이란... - 지호스님

가람지기 | 2010.06.27 16:33 | 조회 3732

 

대중 스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능엄반 지호입니다.

사교를 올라와 첫 철 작은 별좌 소임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평소 요리 하기를 좋아한다거나 잘하지는 않았지만 대중 속에 살면서 언제 이렇게 많은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고 복을 지을 기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기에 우여곡절 끝에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별좌소임은 인수인계를 받는 동안과 사집 겨울방학동안 적지 않는 걱정거리였습니다. 집에서 음식을 유심히 살피고 별좌스님과 형님들께 물어보고 메모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막상 실전에 돌입하고 보니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실수와 에피소드가 많았습니다.

한번은 야심차게 준비한 감자샐러드가 처음엔 삶다가 다음엔 찌다가 그 다음엔 급기야 압력솥까지 동원이 되어 마지막엔 감자죽이 되어서 공양목탁을 몇 분을 남기지 않고 나가게 되었습니다.

정말 식겁했습니다. 그래서 이름하여 ‘ 작은 별좌 식겁 감자죽 ’ 이 되었습니다. 죽이 된 샐러드를 맛봐달라고 했더니 반스님들이 하나 같이 맛있다고 극찬해서 모양은 이래도 맛은 괜찮은가 보다하며 그나마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잠시 뒤 맛있다는 죽은 고스란히 남아 나왔고 찬상을 내주면서 반스님들은 한결같이 맛있다고 싸인을 보내는데 웃어야할지 화를 내야할지 황당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또 한번은 떡볶이 전문인 반스님의 도움을 받아 떡볶이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물 붓고 고추장 풀고 떡을 넣고 간보기를 몇 번을 하더니 점차 음식양은 늘어만 갔고 그 스님의 얼굴색 또한 어두워져 갔습니다. 이유인즉 집에서 오인분 이상 만들어보지 못해 양과 맛이 가늠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많은 양의 떡볶이는 남아나왔고 남은 것은 고맙게도 반스님들이 참 으로 먹어줬는데 그때도 반스님들은 맛이 기가 막히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아 그때는 황당함보다는 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밖에도 항상 음식의 최종 마무리 단계쯤 홀연히 나타나서 맛과 모양이며 이것저것을 보고 전혀 도움이 안되는 코치를 하며 마음을 어지럽히곤 결근 없이 매일 출근하여 속을 뒤집어 놓는 훈수전문스님이 있는가하면 몇 일전 나간 메뉴에 대해서 자세히 분석지적해주면서 격려하는 뒷북조 스님, 뭐든지 칭찬만 하는 칭찬전문 스님, 말로만 음식을 다 만드는 아나운서 스님등 이렇게 모습은 다양하지만 제게 전해지는 그 마음은 모두 한결같이 격려와 사랑의 빛깔이었습니다. 저도 처음엔 정말 맛있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아서 정말 맛있는 줄 알았습니다. 문제는 제가 실수를 해도 음식을 잘못 만들어도 여전히 맛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번철 별좌스님에게도 정말 수식어가 모자랄만큼 맛있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는걸 보고선, 이렇게 결론 지었습니다. 정말 못 말리는 반병이구나라고 말입니다.

어쨌든 저는 이 반병이 뿜어내는 무조건적 사랑과 격려에 힘입어 음식을 맛있게 한다는 자부심, 그런 착각속에서 힘든 줄 모르고 돌리는 반찬을 만들었고 무장무애하게 회향할수 있었으며, 이 ‘ 반병 ’ 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반병이란 우리 반이 최고다 수승하다 뭐든지 잘한다는 착각에 빠진 병을 말합니다. 저는 그 반병이 저희반에만 있는 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윗반, 아랫반은 말할 것도 없고 운문사 역대이래 자기반이 최고라는 자부심이 없었던 반이 없었다는 강사스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반병은 아주 뿌리 깊은 전통과 역사성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운문사의 바쁜 일상 속에서 40-50명의 사람들이 24시간 한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울고 웃고 화내고 기뻐하며 이 모습 저 모습 다 보면서 부딪히는 가운데 힘든 강원 생활을 이겨낼수 있는 것도 서로의 허물과 잘못을 덮어주는 무조건적 신뢰와 절대적 사랑, 바로 이 반병이 뿜어내는 사랑의 에너지는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우리 반이 최고라는 의식 속에는 너와 나, 우리와 남을 가르는 차별된 분별의식과 나와 우리에 집착한 아상, 인상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 우리 ’ 라는 울타리를 쳐놓고 남을 배척하는 이기성과 배타성은 물론 경계해야하지만 적당한 반병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청량한 공기와도 같이 사랑과 믿음의 에너지로 화합의 기초가 되지 않겠는지요.

자신을 사랑 할 수 있는 사람만이 남도 진정 사랑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나 자신부터 사랑하고 반 스님을 나와 같이 사랑하며 나아가 운문사 전체 대중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며 중생을 사랑하는 자비로운 수행자가 되길 바라면 힘든 강원 생활 잘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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