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진심 - 서진스님

가람지기 | 2010.07.28 14:33 | 조회 3833

운문사에서는 진심이 통합니다.

언제나, 누구나, 무엇을 할 때 건, 급하면 손에서 가장 가까운 물건을 집어들 듯
제일 먼저 손쉽게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진심인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그것이 참 잘 통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 문제는 그 진자가 참 진(眞)이 아니라 성낼 진(嗔)자라는 겁니다.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서진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 대중 스님들과 함께 진심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한문은 상형문자가 아닙니까?
이 ‘성낼 진嗔’자 생긴 모양을 보면 ‘참 진眞’자 앞에 ‘입 구口’자가
붙어 있잖아요.
두 글자를 나란히 놓고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그것이 참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지언정 입 다음에 오면.
즉, 입을 지나서 나오게 되면 성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라는.

나는 참으로 상대를 위하는 마음으로 입을 열어 건넨 말이건만
돌아오는 건 상대의 성냄일 때가
있습니다.
말이라는 거. 말을 한다는 거 정말 쉽지 않아요.

치문 때 제가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저녁 예불 모시러 법당에 가는 길이었는데요,
하루 중에
유일하게 내가 스님이구나 싶은 시간이었습니다.
미친 듯이 물에 빠져서 설거지를 하고 고희에 적삼까지 다 젖은 채로
그 위에 가사 장삼을 걸치고
걸어가는 그 순간만큼은
난 정말 장엄한 스님의 위엄이기를 바랬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날엔 그 속에 최고 치졸한 놈이 들어 앉아 있기도 합니다.
하루 종일 내 마음에 진심을 불지른 모든 이들을
다 일러버리겠어- 하면서 갈 때도 있었어요.

드디어 법당 들어갑니다.
역시나 상당히 거룩하게 삼배 올립니다.
그리고 부처님을 올려다 봅니다.
‘부처님!’
‘괜찮다’

그건 분명 소리는 아니지만 마치 그 세 글자 글씨가 들어있는
공기방울이 일제히 터지듯이 너무나 또렷이 전달되는 무엇입니다.
‘저 아직 아무말도 안했는데요’
‘괜찮다’
‘그럼.. 좀.. 억울한데..’
‘괜찮다’
...
네-

한번도 기회를 주신 적이 없는 부처님이십니다.
그래서 한번도 성공적으로 일러보지 못했습니다만..
신기한 것이 그분이 괜찮다고 하시면 정말 괜찮아진다는 겁니다.
내 안에서 서로 제가 먼저라고 나가게 해달라고 아우성치던 소리들이 고요해져요.
부처님이 계셔서 참 다행입니다.
물론, 그조차도 안 되는 날도 있지요..
그런 날에 읽으면 새로운 힘이 생기는 보현행원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猶如蓮花着水      연꽃잎에 물방울이 붙지 않듯이
亦如日月住虛空   또한 해와 달이 허공에 주하지 않듯
於諸惑業魔境界   모든 미혹한 업, 마경계에 미치더라도
世間道中得解脫   세간 속에서 해탈을 얻으리라

내가 여기 왜 있어야 하는 걸까.
탐심, 진심, 치심이 치성한 이곳에서 오히려 삼독을 더욱 성케하고
삼업만 늘려놓고 이게 뭐야.
.
끈질기게 들러붙는 질문에 이 글이 답해줍니다.

나는 오직 해탈을 하기 위해서 지금 이 세간 속에 있습니다.
난 부처님이 될 거예요.
도대체 그것 말고 담아둘게 뭐가 있다고 자꾸만 뭘 채웠다 태웠다 바쁘네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님이신 ‘종’자 ‘명’자 쓰시는 우리 노스님께서 그러셨습니다.
“사람 사는 기 다 똑같다.”

운문사이기 때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나니까인 것 같아요.
다스리지 못하는 이 마음 들고 다니면서는 어디 가서 살더라도 마찬가지겠죠.
나는 그게 겁이 납니다.

앞으로 2년반. 여기서 끝내고 싶어요.
이렇게 ‘진심’에 대해서 차례법문을 준비하던 중에 여름 불교 학교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아촉반 담임입니다. 아촉부처님은 이번 준비를 하면서 처음으로 만나뵙는 부처님이신데요,

이 부처님의 서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시는 화내지 않겠다.]

이 법문을 끝내며 제가 발하려고 했던 원과 같으십니다.
이렇게 만나지는 것. 이렇게 인연 지어지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이겠습니까?
여기니까. 이 복 받은 도량이니까 겠죠.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여도
이 지긋지긋한
진심, 크고 작은 모든 고들을 다 끝내겠다는 나의 바램은 다함이 없어
생각 생각
상속하고 끊임이 없되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일에
지치거나 싫어하는 생각이 없게 하겠습니다.

대중 스님 여러분 아프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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