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온다_만성스님

가람지기 | 2010.10.20 11:17 | 조회 3658

안녕하십니까?
카랑카랑한 겨울 날씨입니다.

과연 배운대로 저를 실현시킬 만한 의지가 내안에 있는지, 한 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고자,
법문 제목을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온다」로 하였습니다.
공부를 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과문인지 모르나 공부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볼 때 ‘참다운 수행’을 능률 있게 많이 하기 위하여
또한 크고 어려운 일을 능히 할 수 있는 지혜와 방편을 갖추고자 연마하는 것.
이것도 저것도 어설프고 모자람이 그득한 제가 감히 대덕하신 대중스님들 앞에 있잖니 송구스럽습니다.

학인으로서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필요한 마음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강사스님께서 노고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이렇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확고한 마음가짐으로 노력해서 스스로 어떤 길을 결정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러기 위해선 치문의 한자 하나하나 뜻을 알고 외워서 문장을 통달하여야만
부처님 법 공부와 출가승의 원칙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으니
착실하게 공부해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중 스님들 앞에서 공부라는 단어로 시작한 것은 부담스럽고 진이 빠지는 일이기도 합니다만
실은, 걷는 것부터 저희들 생활 모든 게 공부 아닌 것이 없지요. 거대한 운문사 강원에서 몸과 말과 마음을 다스리는
제반 규칙대로 낑낑대면서 배우는 과정에 어김없이 요구 되는게 있습니다.
한자로 시작해서 고매한 한자로 끝나는 치문책속에 있는 난자 시험입니다.

대한민국 어디에서든지 모든 학인 스님들은 온몸으로 거부하고 싶은 것이 시험이 아닌가 합니다.
아님, 저만 그럴까요. 경청만 했던 차례법문을 직접하려하니 어느 것도 아는것이 없어서
저 깊이 마음속으로 침잠해 있는 때를 씻기고자 난자 시험에 대한 부끄러운 고백하려 합니다.

난자 시험날짜가 정해져 심한 압박감을 느끼면서 입선시간에 힘껏 책을 보노라면 스멀스멀 피로가 몰려와
공부하고자한 생각은(캐세라 캐세라~) 뒤죽박죽 어느새 느긋한 마음으로 꾸벅꾸벅 치문책님께
유연하게 연거푸 인사하다 딱! 딱! 딱! 죽비소리에 눈이 또이또이 해지면 방선시간!!
우~와아 때늦은 후회로 기막히게 마이크 실험을 합니다. 아- 아- 아아 마음은 파도치듯 방황하고 헉! 어떡하나,
어째 이럴 수가, 순간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은 “어, 그래 그래 이번만 링컨(컨닝)을 존중해야지” 해보자
양심은 흔들거렸지만 링컨을 존중해주어야 40점 밖에 안될걸 80점으로 그려야지 하자,
생각은 거기까지만 멈추었습니다. 결과는 물론 4자를 8자로 고치지도 못하고 스스로
치잔함만 오랫동안 느껴야 했답니다. 왜냐하면 가장 쉽고 편한 방법만 찾았기 때문입니다.

우선 바쁘다는 핑계로 치문책에서 수많은 수행의 바른 방정식을 공부하면서도 그것을 밖으로 표출하고
실행하는 경우는 매우 적은편입니다. 게으름 때문이지요. 이 게으름을 인정한 후에야 치문의 생활은
짜투리 시간마저도 무의미하게 흘려버리면 아니 된다는 걸 알았고 청풍료 대방 빗질하듯
몰입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치문반으로써 절반 넘게 뚝딱 지난 후에야 개미눈물 만큼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세월의 흐름과 때 늦음 그 자체가 중요 한게 아니었고 배운 대로 한자를 면밀히 쓰고 지나치기
쉬운 작은 뜻까지 포착하여 반복하니 치문책 속의 한자들이 이제는 친해져 치문책을 펼치면 알아가는 재미와
왠지 모를 편안함과 안정감을 줍니다.

孤山圓法師勉學을 배웠을 때 가슴에 새기리라 했던 글귀가 생각납니다.
凡民與賢도 猶知學인데 豈聖人이 怠於學耶라
(평범한 백성과 현자도 오히려 배움을 아는데 어찌 성인이 배우기를 게을리 하겠는가?)
聖人은 造次顚폐라도 未嘗不念正道而學之也니라.
(성인은 잠시라도 일찍이 정도를 생각하여 배우지 아니한 적이 없나니라.)
聖人은 懼夫不念正道而學之則至於狂也矣니라.
(성인은 정도를 생각하여 배우지 아니하면 즉, 광인에 이를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니라.)

아직도 선근이 없어서 인지 배우는 과정을 계획했던 대로 다 실천하기가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늘 변함없이, 부지런해야겠다고 마음을 확고하게 다 잡아도 또 한때나마 많은 시간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걸
매일 매일 반성하면서 꾸준히 해보리라 다짐 아닌 다짐을 꾹꾹 합니다.
마치 산꼭대기로 끝없이 바위를 굴려올리던 그리스 신화의 시즈프처럼 말입니다.

대중스님들이시여!
어제도 그러했고 오늘도 내일도 명심할 겁니다. “내면에 감추어진 품성과 노력하는 의지가 뒷받침되어야만
참수행인이 될 수 있고, 하루하루 시간을 아껴 진정한 마음으로 삽시다.”라고
강사스님께서 해주신 귀골스런 말씀을 말입니다.

저희들의 지표가 되어버린 낯익은 단어! ‘공부’야 말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에너지입니다.
매사에 열심히 하시는, 정해 놓은 목표를 향해 자신을 채워가는 대중스님들 마음 따스한 운문사에서
건강하시길 기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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