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지금 여기 _ 의영스님

가람지기 | 2010.11.11 07:03 | 조회 3628




지금 여기


지금 여기... 시시때때로 펼쳐지는 뭉게구름의 향연을 보며 하루하루를 감탄의 날로 보내고 있는 치문반 의영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대중스님 여러분

저는 오늘 ‘지금 여기’라는 제목을 가지고 제 차례법문에 임하고자 합니다. 지난여름 방학에 ‘초기 경전 강의’라는 미산스님의 책에서 불교수행의 4가지 핵심원리 부분을 보았습니다.
그 네 가지는 첫째 회광반조, 둘째 여실지견, 셋째 정념정지, 넷째 즉시현금입니다.

첫째, 마음 빛을 안으로 비추는 것인 회광반조입니다. 원래 석양광선의 반사를 의미하는 반조에서 나온 말입니다. 지금까지 수동적으로 비추던 것이 스스로 비 출 수 있는 힘을 되찾아서 비추는 것, 우리의 마음이 오감을 통해 계속 밖으로만 향하는 것을 안으로 거두어 들여 자기 안을 성찰하는 것입니다.

둘째, 있는 그대로 보기인 여실지견입니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본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자기의 주관대로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느끼고 싶은 대로 느끼며 모 든 사물이나 현상을 분별해서 판단합니다. 여실지견하려면 직관의 힘인 통찰력을 키워 지혜의 눈으로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입니다.
셋째, 바른 챙김 바름 앎인 정념정지입니다. 팔정도의 7번째인 정념은 팔정도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수행기법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고, 느낌에서 느낌을, 마음에서 마음을 그리고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매 순간의 존재현상들 중에서 대상을 놓치지 않고 행주좌와(行住坐臥)와 어묵동정(語默動靜) 모든 순간에 잡념 없는 마음 챙김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가 지금 여기인 즉시현금입니다. 불교수행의 4가지 핵심원리 가운데 이 대목에서 제가 힘들어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출가하기 전 찾아 뵌 어른 스님께서 출가하겠다는 제 얘기를 들으시고 여러 말씀을 하신 후에 “중노릇 잘해야 한다. 중노릇 잘 해야 해.”라고 하셨습니다. 전 그때 모든 스님이 너무 어려웠기에 그저 “네, 네”라는 대답만 하고 나와서 “어떻게 사는 것이 중노릇 잘하는 것인가요?”라고 여쭈어 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 후 출가해 살면서 어떤 경계에 부딪혀 퇴굴심이 조금이라도 일어나면 그 일을 생각하며 ‘아! 이래서 스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구나, 깨달으신 그분들은 미래도 훤히 다 아신다고 들었는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순간 지금 여기에 저란 존재는 없고 과거의 어느 순간만 더듬고 있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습니다. 이렇듯 지금 여기란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을 잘 챙겨서 망상 속의 과거에도 가 있지 말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도 가 있지 말고, 현재의 순간순간에 머무르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든, 운력을 하든, 공부를 하든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며칠 전 배운『치문』에서는 아파서 고통을 받는 그 순간에도 ‘是誰受病(시수수병)’고 ‘이 누가 병을 받는고...’ 하고 마음을 챙기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잡고 날 잡아서 하는 기도를 많이 합니다. 백일기도든 천일기도든 모든 기도는 과거도 아닌 미래도 아닌 바로 이 순간에 하여서 그 순간이 모여 이루어진다고 하니 지금 여기 깨어있는 공부하는 스님이 되어야겠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저의 고민은 우연히 몇 년 지난 운문지를 읽다가 해결되었습니다. 그것은 ‘선사이야기’를 취재하러 간 학인스님에게 들려주신 큰스님의 한마디였습니다. “중노릇 잘해야 한다. 중노릇 잘해야 해.” 제가 출가하기 전 들었던 그 말씀과 너무나 똑같은 문구에 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 때는 제가 출가의 인연이 없어서 그런 말씀을 저에게만 하신 얘기인줄 알았는데, 모든 어른 스님들의 한결같은 격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취재한 학인스님도 그 말씀을 가슴에 다시 한번 새기는 모습에서 이제 중노릇 잘해야 한다는 뜻도 다시 제게 새로운 다짐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하신 말씀을 읽어드리며 제 차례법문을 마치겠습니다.

과거에도 매달리지 말라.
미래를 원하지도 말라.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느니라.

꿈은 여기 현재의 일에서 가져야 할 것이니
이루고자 하는 뜻에 확고부동하여
흔들림 없이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여야 하리.
오로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해
땀 흘려 노력하라.

대중스님 여러분, 성불하십시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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