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지헤로운 삶 _ 도준스님

가람지기 | 2010.11.11 07:09 | 조회 3692




지혜로운 삶

운문텃밭에는 가을걷이가 한참이며, 배추와 무가 겨울 김장을 위해 잘 자라고 있으며, 선선한 바람이 청풍료 안으로 들어옵니다.

많은 대중스님들 앞에서 지혜로운 삶이란 주제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사집반 도준입니다. 대중스님들! 행복하십니까?

예전에 어떤 스님께서 저한테 물으셨죠. 왜 출가를 하며, 그리고 행복하냐구?

하지만 선뜻 행복에 대해서는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과연 내가 지금 이 순간 행복한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 이길래.

“행복이란-순수한 마음, 행동, 지혜 속에서 나오는 삶, 즉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를 말하는데 과연 나는 그러한가 해서요.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매순간 조금씩 행복을 맛봅니다.

새벽 도량석 소리, 바루시간, 수업시간, 운력시간.... 등.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니까요.

불교사전에서 잠시 지혜에 대해 살펴보면- 지혜롭다. 지혜라는 것은-사물(事)의 도리(道)나 선악(善) 따위를 잘 분별(分)하는 마음의 작용(作), 슬기이며, 불교(佛)에서는 미혹(迷惑)을 끊고 부처의 진정(眞正)한 깨달음을 얻는 힘을 이르는 말로써 6바라밀중의 하나입니다.

지식과 지혜와는 무관한 것이 아니며, 사상 특히 인간적 사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이는 참다운 지혜가 있을 수 없고, 또 반대로 지혜에 의하여 표시되는 구극(究極)의 목적에 대해서 수단으로서의 위치가 주어지지 않는 지식은 위험한 것이며, 참된 지식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우며, 지혜란 모든 지식을 통할하고,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들며, 구애받지 않는 뛰어난 의미로서의 감각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일정한 지식내용으로 고정되거나 전달할 수 없습니다.

처음 바랑을 매고 운문사에 들어와 여러 대중 스님들과 낮선 생활은 잠시, 지금은 가족같은 마음, 행동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은사스님의 말씀처럼 친할수록 예의를 지키고,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씀도 지금껏 잊지 않고 있지만 몸을 잘 챙기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것 모두 정신상태의 문제이니 잘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치문 첫 철 종두소임을 살게 된 덕분에 온 도량을 알게 되었으며, 도반스님을 도와 열심히 뛰어다닌 결과 오지랖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습니다. 누가 누구를 돕는다는 생각보다는 우린가족이고 내 일이다 라는 생각이 많았기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일을 할 수 있었고, 마음도 편안하고, 늘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사집이 되어 이젠 육지랖이 되었습니다. 오지랖이니 육지랖이니 이런 말들이 처음엔 너무 싫었습니다,

왜냐 오지랖이란 뜻이 우리말로서 윗옷의 앞자락을 말하는데 즉 오지랖이 넓다는 것은 옷의 앞자락이 넓다는 뜻으로서 무슨 일이나 말이든 간에 앞장서서 간섭하고 참견하고 다니는 것을 비유하여 오지랖이 넓다고 합니다. 좋은 의미보다는 나쁜 의미로 쓰이니 그리고 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 . . 동기보다는 일단 결과가 중요하니까요. 이젠 이런 별명에 기분 나쁘기보다는 흔연한 마음으로 받아드리며, 무작정 도와준다는 것이 또한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 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흔히 도반스님들끼리 이런 말들을 하죠. -너나 잘해, 나 자신만 잘 챙겨도 반을 위하고 도반을 위한다고.., 끝까지 책임질꺼면 도우고 아님은 그냥 모른척해, 그냥 지켜봐... 등

처음엔 참으로 이기적, 개인적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틀린것 또한 아니구나 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지금은 조금 힘들지만 방관하기보다는 지켜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냐, 오히려 도와준다는 것이 도반을 힘들게 만들거나, 도반이 다른 도반스님들에게 자꾸 의지하려하고.. 홀로서기에 조금 문제가 되며, 좋은 일은 말이 없어도 잘못된 일에는 ‘너 때문이야’ 라는 탓이 돌아오고 저 자신에게도 상처가 돌아오니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일어남을 보게 되었지요. 이건 모두 오늘의 법문주제인 제 자신에게 지혜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대중스님들 앞에서 얘기한다는 것이 부끄럽지만 제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여겼기에, 또 다른 대중스님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때문입니다.

얕은 지식이 지혜인양 착각하고 행동한 것이 도반을 도와주기 보다는 오히려 제자신이 도움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어찌 보면 모든 것이 소극적이라 할 만큼 도반을 보면서 제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어떤 말이나 행동에는 몇 번이고 생각하며, 도반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죠.

기본천성 밑바탕에 깔려있는 본성은 어찌할 수가 없나봅니다. 언제 어디서나 저의 도움을 청하는 도반이 있으면 달려가니 . . . 계산적이거나 이기적이지 못한 제자신을 미워하지만 또한 사랑합니다.

물은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그 본성만은 잊지 않듯이 저 또한 부처님의 제자로써 지혜의 삶을 실천 수행할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끝으로 육조단경에 혜능스님의 말씀을 인용하면

"만약 참으로 도를 닦는 사람이라면 세간의 어리석음을 보지 않나니
  만약
 세간의 잘못을 보는 것은 자기의 잘못이니 도리어 허물이로다.
 
남의 잘못은 스스로 죄 지음이니오직 스스로 잘못된 생각 버리고
 
번뇌를 물리쳐 부수는 도로다."

모든 대중스님들! 날마다 행복하시길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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