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너 뭐하니? _ 도우스님

가람지기 | 2010.11.11 07:14 | 조회 4003



너 뭐하니?



지금 이 자리에서 생각해보면 저의 출가는 너무 즉흥적이였습니다.

저에게 출가를 권하셨던 스님께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드린 후에 제가 드린 질문은 “절에 다니지 않아도 스님이 될 수 있나요?”였습니다. 그 때의 제가, 불교와 스님, 대중생활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태로 출가를 감행했던 것이 얼마나 단순, 무식에, 용감한 행동이었는지를 지금까지도 절감하고 있는 사집반 도우입니다.

제가 출가하고 처음으로 한 운력이 잡초뽑기였습니다.

같은 꽃임에도 화단 안의 꽃에게는 기쁨과 기대감으로 정성을 다 해 사랑을 주고 화단 밖의 꽃은 잡초라하여 꽃도피우지 않은 걸 뽑아 내면서 ‘제 자리에 있어야 제 구실을 한다’라는 말이 문득 떠오르는 동시 ‘나의 갑작스런 출가 또한 이러한 연고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요즘도 온 대중의 사랑을 받는 고양이(설현이와 청풍이)에게 운문사 내에 금지구역이 있음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가를 되세겨 봅니다.

오늘 제가 준비한 법문은 “너 뭐하니?”입니다.

출가하기 전 제 스스로에게 자주 자문하던 말입니다.

작년 가을 어느날, 도반스님의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라는 후회의 말에 저는 “그러니까 본인이 뭘 하는지 가끔은 생각해 봐야지”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 ‘너 뭐하니?’라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저의 목소리가 다시금 제게 반문을 합니다.

“넌 지금 뭐하니?”

갑자기 혼란스러워 졌습니다 “그러게... 내가 지금 여기서 뭘하고 있는거지?”

지나간 시간들이 부정적인 생각들과 하나가 되어 바람개비 돌 듯 휙휙 날아다닙니다.

문화체험과 같은 강원의 강압적인 생활방식과 과중한 운력과 상하반간의 힘든 관계형성이 유지되는, 또 작은 일에도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소란스러운 이 곳에서,

“나는 왜 이런곳에 있는거지?”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일어났고 종국에는 극단적인 결론에 까지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 망상의 회오리는 실날같던 저의 초심까지도 어디론가 날려버렸고 “그렇다면, 어디로 가지?”라는 생각에만 머물러 뱅뱅돌뿐이었습니다.

지난 가을의 휴강일은 제겐 짧기도 하고 길기도 했던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마당의 애꿏은 낙엽만 북북쓸어대며 얻은 결론은 , 이 망상의 원인이 저의 갑작스러운 출가도 아니고, 적응하기 힘든 절집생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매순간 나를 돌아보지 않았던 저의 나태함과 겸손하지 못한 마음으로 인연의 법칙, 인과의 법칙을 망각한데에 있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대한민국 이 나라에 태어나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기에 출가하여 여기 제49회 운문사의 학인이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이력은 제가 저의 자리를 찾아가는 걸음 걸음일 것입니다. 또 제가 도반스님들의 일그러진 단면을 보면서 내심 불편해 했던 것 역시 제가 그들과 별반다르지 않은 그들의 한 조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네가, 내가 다르지 않은 우리라는 인연선상에서, 너는 어떻고 나는 어떻다라고 분별하는 날카로운 말들은 그저 뿌리없는 나무에 불과합니다.

저는 다시 생각해 봅니다.

제가 ‘이런 곳’ 이라고 말하는 이곳에서 마음공부 하는 자로써의 나의 마음은 어떠했는지... 결국은 하심하지 못한 마음과 회광반조하기를 게을리한 안일함이 있을 뿐입니다.

치문의 가을이 저물 때 쯤이면, 하나, 둘씩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몸 힘든건 참아도 사람 힘든건 못참겠다.”라는 마음이 아파하는 애절한 소연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제 자리를 찾아 이곳에 모였지만, 아직은 다 제 각각이라 나보다는 남을 먼저 분석하고 분별합니다. 그로인해서 상대에게 충고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 상대의 허물을 닦아주고자 했던 선한 마음을 확실히 잡고 있지 않으면, 방심하는 순간순간마다 아만심이 나타나서 본래의 마음은 쫓아버리고, 마음에도 없던 말과 감정을 일으켜 상대에게 상처를 주게 합니다.

이럴 때 저는 한마디 합니다. “너 뭐하니?” 라고요.

부처님의 전기를 기록한 《불본행집경》의 「교화병장품」에 보면 물건을 훔쳐 달아난 기녀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젊은이들에게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이여, 달아난 여인을 찾는 것과 자기 자신을 찾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라고요

저도 부처님처럼 제 자신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감히 대중스님들께 묻고싶습니다.

“상대의 티끌을 닦아주는 것과 멀리 도망가려 하는 내 자신을 붙잡는 것 중 어느것이 더 중요한가?”라고요.

대중스님 여러분
여러분이 계신 이 곳이 지금 각자의 자리이며, 각자의 가치를 다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항상 “너 뭐하니?”라는 자문과 함께 회광반조하시는 우주와 같이 무한한 청풍납자되시길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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