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바라는 마음없이 보기 _ 능재스님

가람지기 | 2010.11.11 07:23 | 조회 3529





바라는 마음없이 보기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능재입니다

치문때는 그리 안 가던 시간이 벌써 사교가을이 되어 제가 법상에 올라왔습니다.

강원생활 3년째라는게 뿌듯하기도 하지만 1년 반 밖에 안 남았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누구나 낯설고 힘들기만 한 치문반 시절,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쏟아지는 인수인계사항과 지켜야할 사항들! 무엇보다도 실은 아직까지도 적응이 잘 안 되고 있는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이기만한 교과서. 다른 스님들은 잘 따라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자꾸 자신이 없어지고 소심해져만 가던 내 모습들. 9시 소등 후에는 운문사 담장을 넘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잠이 들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존경하던 스님께 조언을 구하기로 하고 나의 문제를 조심스레 말씀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조용히 제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너는 지금의 이 상황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피하려고 하는구나. 마음에서 자꾸 밀어내지 말고 너의 할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받아 들이는게 우선인 것 같다. 누구나 새로운 일을 하다보면 실수가 있는 법.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완벽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10페이지를 읽으면 11페이지를 읽듯 자연스럽게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보렴.’ 아차 싶었습니다. 난 이 상황이 싫다고 피할 방법만 찾고 있었습니다. 걱정을 듣기 싫은 욕심이 컸기에 모든 일들이 부담스러웠던 것입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도 저는 여름철이 지나서야 맘이 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로는 아..그렇다 하면서도 막상 실전에 부딫치면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더 잘할 수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이 들지만 남은 1년반은 그때를 생각하면서 더 열심히 살아볼까 합니다..

사교 여름을 다 보낸 지금 돌아보면 1학년때는 나 살기 바빠 다른 스님들의 행동이 그리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저것 다보고 척 하면 아는 지금은 스님들의 행동하나하나 말투 하나하나 거슬립니다. 왜 저럴까 하는 생각에 화가 나고 더운 날씨까지 겹쳐 열이나고 예민하고 건들기만 하면 싸움이 날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사교 여름이 힘들다더니 아..이래서 그렇구나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방학을 해서 집에 돌아가 조금의 여유가 있어 여름철을 돌아봤습니다.

작은 것에도 열 받고 흥분했던 나의 모습들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1년 소임자인 저는 다른 스님보다는 소임 뽑는 일에 신경을 덜 써도 되기에 뭐가 힘들었을까 생각이 들지만 제 자신에게는 너무 부끄러웠던 한철 같았습니다.

나라면 저렇게 안 할텐데 왜 저렇게 말하고 행동하는걸까? 정말 이해가 안돼! 라는 생각에 화가 나고 난 저 스님한테 이렇게 했는데 나한테는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화나고 정말 열이 많이 받았던 한 철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다 저한테 있었습니다. 상대가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주고 내 뜻대로 해주길 바라는 나의 욕심이었고 나의 고정관념에 쌓여 어긋나면 상대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오만한 생각들이 저를 화나게 했던 것입니다. 누구도 나에게 뭐라하지 않는데 내 스스로 내 틀에 갇혀 화를 냈던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욕심을 비우고 상대에게 바라는 마음 없이 본다면 화를 낼 일도 없고 여여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일찍 알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이라도 깨달았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운문사생활 즐겁게 살아도 모자랄 시간에 전 너무도 다른 생각들에 빠져 낭비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대중스님들!

운문사에서의 남은 시간들이 행복하고 즐거운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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