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욕심이 없는 문- 사교반 원공 스님

가람지기 | 2009.10.05 10:23 | 조회 3310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원공입니다.

기온차가 많이 나는 가을입니다. 이런 날씨에는 감기에 특히 유의 하셔야겠습니다.

이 운문사에서 유일하게 대타를 세울 수 없는 차례법문 때문에 요 며칠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살았습니다. 두통을 동반한, 치문 때의 긴장감이 다시 살아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대중 울렁증이 있거든요. 여기 올라와서 과연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법문이라는 제목보다는 제 스스로 반성과 다짐을 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고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저희 절에는 은사 스님을 포함해 노스님들만 계십니다. 그러니 운문사의 또래 스님들과 많은 대중을 만날 수 있음을 얼마나 감사해 하며 치문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처음으로 법당에서의 예불에 신심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올라갔고 신심덕분에 힘들다는 치문을 너무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여기 저기 제 손과 힘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 뛰어다녔고 오지랖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늘 높던 신심은 점점 내려와 저 은행나무에 걸려버렸습니다. 숲에 들어오면 숲을 잊는다 하더니 딱 그 얘기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을 바라만 봐도 절로 웃음이 나고 좋아서 항상 헤벌레 웃고 다녀 오죽하면 상반스님이“원공스님 뭐가 그렇게 좋아요? 입 좀 다물고 다녀요 파리 들어가겠어요.”라고 놀릴정도 였는데 이제는 싫은 사람, 주는 것 없이 미운사람, 보기만 해도 화가 나는 사람 등 사람들을 보는데도 나름의 분별이 생겨 버렸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느덧 작은 일에도‘욱’하는 마음을 내는 넓은 도량에 사는 밴댕이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정말 잘 살아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그냥 나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었던 것입니다.

수행자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바꾸고 거기에 맞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점점 작은 나무에게 햇빛을 양보하지 않는 큰 나무가 되어버린 이기적인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보시면서 얼마나 가슴 아파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자꾸만 화가 나는 나를 보다보니 저 스스로 저를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과연 정말 진실한 신심이란 뭘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배우고 있는 대승기신론 수행신심분의 4가지 믿음과 5가지 행이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섯 가지 문인 시문, 계문, 인문, 진문, 지관문 등 문을 통과해야지만 진정한 신심, 근본을 믿고 부처님께 무량한 공덕이 있음을 믿고, 법에 큰 이익이 있음을 믿고, 승보가 바르게 수행해 자리이타를 믿는 4가지 신심을 내고 대승의 올바른 법을 성취한다 했습니다.

첫째 시문을 닦는다 함은 - 와서 구하는 사람이 있거든 힘을 따라 베풀어서 스스로 간탐을 버리어 그들로 하여금 기쁘게 하고 공포가 없는 무외를 베풀어 법을 구하는 이에게는 아는대로 방편으로 설해주되 명리나 공경을 탐하지 않고 오직 자리이타로 보리에 회향함이요,

둘째 계문에는 신3 구4를 범하지 않고 번뇌를 끊고 조복하기 위해 시끄러운 곳은 멀리 떠나 고요한 곳에서 소욕, 지족, 두타 등의 행을 닦으며 스스로 참회해 고치며 중생들로 하여금 망령되이 허물과 죄를 일으키게 하지 않음이요,

셋째 인욕의 문남이 주는 고뇌를 잘 참아서 보복하는 마음을 품지 않으며 8풍에 흔들리지 않음이요,

넷째 진문모든 착한 일에 게으르지 말고 입지가 굳고 강하여 겁을 내거나 나약함을 멀리 여의며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해서 고통을 속히 여의는 것입니다.

마지막 지관문일체경계를 그쳐 쉬게 하고 인연 생멸상을 관하는 것입니다.

이상 다섯 가지가 수행자가 가야할 바른 문이건만 그중 한 가지도 올바른 마음으로 행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신심이란 놈이 하늘에 있다가 은행나무에 있다가 땅에 있다가 하는 것이겠지요.

차근차근 나를 지켜보고 관하는 것 없이 그저 붕~떠서 환경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다보니 기초가 없는 부실공사마냥 신심의 벽돌이 하나하나 무너져 버린 거죠. 소위 불뚝신심 이었던 겁니다.

 그러니 욕심내지는 않겠습니다. 이 문중 하나의 문이라도 걸림 없이 통과할 수 있도록, 그리고 강원에서 주는 배움을 100%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겠습니다. 4년의 시간은 긴 것 같았지만 벌써 이렇게 2년하고도 반이 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후회할 줄 모르고 살았던 세월입니다. 또다시 어리석음으로 후회를 만들지 않는 나머지의 생이 되겠습니다.

대중스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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