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신중신앙과 그 변천과정-사교반 현진 스님

가람지기 | 2009.10.05 10:24 | 조회 4715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현진입니다.

저는 출가전 절이라는 곳을 처음 접했을 때, 문은 항상 열려 있고, 아파트처럼 경비원이 지키고 있는 것도 아닌데 항상 편안한 기운이 감도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궁금했었습니다. 불교 공부를 하면서 도량을 편안하게 해 주시는 분이 신중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지금 우리가 이렇게 운문사도량에서 편안하게 간경을 할 수 있는 것도 화엄신중님의 보호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신중신앙과 그 변천과정을 간략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신중탱화는 『화엄경』과 여러 대승경전에 나오는 호법선신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부처님의 정법을 수호하고 불교 경전을 수지 독송하는 사람을 외호하는 선신의 군상을 회화로 나타낸 그림을 말하며, 그 형태도 다양한 것이 특징입니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시고 3․7일 동안 『화엄경』을 설하실 때 39위 신중이 화엄법회에 동참하여 불법에 귀의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불법의 호지를 서원하였기 때문에 화엄신장, 화엄성중, 호법선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신중의 기원은 원래 불교 발생 이전의 고대 인도신화 속에 나타난 제석천이나 범천신앙 등 재래신이었지만,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감화되어 호법선신의 기능을 맡게 되었다고 합니다.

초기 경전인 『잡아함경』에서는 불법이 장차 멸망하려 할 때 석제환인, 사천왕, 팔부중 등에게 정법을 바르게 수호할 것을 부촉하시는 설법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화엄경』에서는 정각을 이룩한 부처님께서 적멸도량의 사자좌에 앉아계실 때 금강역사, 도량신, 용신 등이 항상 주위를 옹호하였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신중은 여러 경전에서 부처님의 법을 수호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신중에 대한 신앙이 시작되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불교의 수용과 함께 신중신앙이 전래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중에 대한 신앙이 본격화된 것은 삼국 통일을 전후한 시기이며, 이때는 불법에 의지하여 국난을 해결하고 예방하려는 호국 불교의 성격이 강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불법을 수호하는 신중의 힘을 빌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호국적 염원이 신중상의 조형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조선후기에 이르면 수많은 신중탱화가 조성되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고 숭유억불을 국시로 하였던 조선 사회에서는 신중이 갖고 있던 외호적 기능이 법당 안의 불보살 수호라는 내호적 신앙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즉 신중의 성격과 역할이 시대에 따라 많이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중탱화는 화엄경에 바탕을 둔 것으로 39위의 신중탱화가 그 원형입니다. 대승불교가 발달하면서 일체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많은 불, 보살들의 서원에 따라 구원의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불교가 차츰 민간신앙과 습합되어 보다 많은 신중을 수용하게 되고, 결국 일백사위의 신중탱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우리 운문사 대웅전에는 일백사위 신중탱화가 모셔져 있습니다. 탱화를 자세히 보면 눈에 띄게 광배를 두르고 있는 다섯 분과 두르고 있지 않는 한분이 있는데 먼저 중앙 윗부분에 광배를 두르고 있지 않는 분이 예적명왕입니다. 예적명왕은 부정한 것을 없애므로 예적부정 이라고도 하며, 여래의 화신이라고 해서 맨 윗부분 중앙에 모셔져 있습니다. 또 삼면의 얼굴에 각기 세 개씩의 눈을 가지고 있으며, 팔은 여덟 개입니다. 그리고 몸에는 독사를 감고, 온 몸에서는 지혜의 불길이 치솟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예적명왕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마혜수라천왕과 대범천왕이 배치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제석천왕과 자미대제가 있습니다. 자미대제를 제외한 세분은 보살상이고, 자미대제는 왕관을 쓴 성군의 모습입니다

하단 중앙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위태천존 동진보안보살입니다. 이 분은 새 깃털장식이 있는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있으며 손에는 칼을 잡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경전의 첫 장에 나오며 경전수호를 상징하는 분이기도 합니다. 또 남방증장천의 8장군 중의 한분이며, 32천의 수령이고 부처님 뜻을 받들어 출가 수행자를 보호하는 임무를 띠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위에는 사천왕, 성군, 명왕, 천녀 등이 형상화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대부분의 호법신들은 불교 고유의 신중들뿐만 아니라 인도신화에서 기원한 인도토속신과, 중국의 북두대성, 그리고 우리나라 고유의 신들이 서로 섞여 있습니다. 이것은 토속신앙의 불교적 습합을 의미하며 아울러 토착신앙에 대한 불교의 적극적인 수용의 면을 엿보게 합니다.

그리고 신중단에는 사시예불 때 상단에 올렸던 마지를 신중단으로 퇴공하여 반야심경을 봉독합니다. 그 이유는 부처님과 불보살님들이 먼저 공양을 드신 후에 그 물려받은 것으로 공양을 하겠다고 서원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또한 안으로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밖으로는 불법수호의 역할을 원력으로 삼고서, 불법을 믿고 따르는 사부대중을 보호하는 호법선신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차례법문을 준비하면서 신중신앙과 그 변천과정을 통해 제가 이렇게 무장무애로 간경을 할 수 있는 것도 바로 불보살님과 화엄신중님들의 가피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더욱 정진하고자 합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 정진여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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